‘괜찮아’라는 건 정말 괜찮은 것이 아니다.

아직도 궁금한 이야기

by 셩혜

집(일산)-직장(충무로)-병원(고속터미널역)-집이라는 이동 경로를 한 달 넘게 반복해 다녔다. 사보 회사의 매월 15일은 매체의 마감날이다. 그날도 어김없이 진행하던 사보 세 권을 마감했다. ‘오늘은 힘든데, 그냥 집으로 바로 갔으면 좋겠다’ 혼잣말을 하며 책상 앞으로 스르르 쓰러졌다. 고작 그게 뭐가 힘들다고!


“빨리 와”라는 차분한 엄마의 목소리 뒤에 왠지 모를 불안함이 숨어 있었다. 퇴근 시간이 되려면 삼십 분이 더 남았지만, 간암 말기인 아빠를 둔 내 상황을 알고 있던 회사에서는 아무 말하지 않았다. 서둘러 나와 전철에 몸을 실었다. 퇴근 시간대여서 그런지 이미 전철도 만원이다. 병원이 있는 고속터미널역에 내려서도 마냥 걸을 수 없다. 계단을 껑충껑충 오르고 인파 속에서 요리조리 피해 가며 병실 앞까지 뛰었다. 병실 앞에 도착했을 땐 아빠는 이미 검사용 침대에 옮겨져 이동할 준비를 마쳤다. 헉-헉 가쁜 숨을 진정시켜야 하는 데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니 호흡은 오히려 더 빨라졌다. 몇몇 의사들이 아빠가 누운 침대를 둘러쌓다. 엘리베이터에 타서야 아빠 손을 잡을 수 있었다. 병원에 입원한 지 얼마나 됐다고 도톰하던 손이 몰라보게 야위었다. 그래도 따뜻한 건 여전하다. 손을 잡고 눈을 맞추며 “아빠, 나 왔어. 괜찮아?”하고 말을 걸었다. 안간힘을 다해 참았지만, 나도 모르게 두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아빠는 “울지 마. 아빠 괜찮으니까”라며 나를 토닥였다.


외래 진료가 끝난 시간, 처치실 앞은 한적했다. 아빠의 몸이 의사들 뜻대로 되지 않는지 처치실에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분주하게 열리고 닫히는 처치실 문과 새롭게 등장하는 각기 다른 과의 전공의가 상황을 말한다. 초초하지만 어떤 질문도 할 수 없다. 병원 내 다양한 소리가 대기 공간을 울렸고 다급하게 ‘코드블루! 코드블루’라고 하는 멘트가 나올 때면 심장이 덜컥했다. 간간이 처치실 안에서 웩-웩 거리는 신음이 들려왔다. 그때마다 엄마의 표정은 굳어졌고 굳게 맞잡고 기도하던 손등의 핏줄은 더 선명해졌다. 병동에 마련된 집중치료실로 돌아왔지만 자정 넘어 내 손에 들린 건 ‘연명치료 동의서’였다. 이 동의서가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의사는 다시 한번 설명했고 “꼭 봐야 할 가족이 있다면 지금 연락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하고 가운 깃을 차갑게 날리며 홀연히 사라졌다. 그 바람에 병동의 긴 복도가 더 싸늘하게 느껴졌다. 약할 대로 약해진 아빠의 몸에는 밤새 모르핀이 투약되었고, 아빠는 잠깐씩 정신을 차릴 때면 남은 힘을 다해 내 손을 꼭 잡았다. 그건 “아빠 사랑해, 다시 태어나도 아빠 딸로 태어날게.”라는 내 속삭임에 대한 대꾸였다. 아침 회진 시간이 되었지만, 주치의는 집중치료실 문을 열지 않았다. 아빠는 주치의 “괜찮습니다”라는 말 한마디를 마지막까지 듣고 싶었을지 모른다. 엄마는 그런 마음을 헤아렸는지 몇 번이나 부탁했지만, 끝끝내 주치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집중치료실에서 원래 있던 다인실이 아닌 일인실로 병실을 옮겼다. 그 상황이 무엇을 뜻하는지 그때는 몰랐다. 짐작 조차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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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시간이 다가오자 아빠는 남은 힘을 다해 어서 가서 밥 먹고 오라며 손짓했다. 밥맛도 입맛도 없었지만, 그 손길에 떠밀려 나와 지하 구내식당으로 갔다. 남편이 죽을 시켰지만 목으로 넘어가지도 않았고 병원에 오지 못한 지방의 식구들이 번갈아 가며 전화를 하는 바람에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병실로 돌아와 양치질하는데 아빠와 함께 일하던 친구 미선에게 전화가 왔다. “괜찮아? 괜찮아지실 거야”라고 했지만, 친구와 나의 바람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병원에 간 날, 나는 무척 피곤했다. 마지막까지 안간힘을 다해 버틴 아빠는 무척 힘들었을 테다. 하지만 나와 달랐다. 점심을 먹고 양치를 마치고 다시 자신의 곁으로 큰 딸인 내가 돌아올 때까지 견뎠다. 마치 나를 기다렸다는 듯. 그리고 몇 분 채 지나지 않아 아빠 얼굴 위로 새하얀 천이 드리웠다. 큰 이모는 제대로 감지 못한 아빠의 눈을 감기며 “청각이 마지막으로 닫히니 끝까지 웃어야 해.”라고 했다. 이 상황에 웃는 게 가능한 일인가. 병실 밖에 있던 가족 모두 병실로 들어왔고, 수녀인 막내 이모는 임종 기도를 시작했다. 헐레벌떡 병실까지 뛰어온 시어머니는 임종을 지키지 못해 안타까워하며 내 등만 쓸어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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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얼마나 아팠을까. 얼마나 참았을까. 왜 참았을까. 죽음 앞에 두렵지 않았을까. 왜 나를 기다렸던 걸까. 아프다고, 괜찮지 않다고, 무섭다고, 솔직하게 말해도 되었을 텐데. 나는 아직도 그날의 아빠에게 궁금한 것 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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