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 속에 담긴 당신의 진심을 보다

by 셩혜

오랜 시간 카메라를 벗으로 삼은 아빠는 난생처음 비자금이라는 걸 마련했다. 가장인 본인이 번 돈이지만, 여느 가장처럼 마음대로 허투루 쓰진 않았다. 한 푼 두 푼 모으고 모아, 카메라 렌즈를 사고, 장비를 샀다. 그러다 엄마한테 들키기 일쑤였는데 그래도 엄마는 아무 말하지 않았다. 다만 엄마는 무거운 그것들을 싫어했을 뿐이다. 항상 어딘가로 움직일 때면 그 거대한 가방을 지고 메고 다니니 마음이 안쓰러웠던 것. 그래도 아빠의 사진 찍기 취미 덕에 엄마는 모델놀이를 즐길 수 있었고, 아빠의 뮤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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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논은 이런 것이 좋고 니콘은 이런 게 아쉽고 소니는 어떤데 올림푸슨 또 뭐가 별로고 자신에게 맞는 카메라를 찾아가면서 새로운 공부를 한다는 게 신세계라고 했던 아빠에게 카메라와 사진 찍기는 분명 또 다른 즐거움이다. 언젠가부턴 집에서도 카메라, 촬영한 사진과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고 좋은 풍경을 담아오는 날이면 서둘러 보여주기 바빴다.


갑작스럽게 닥친 병을 알고 병원에 입원한 후 카메라는 자연스럽게 멀어지는 듯했다. 당시에 ‘라이카’라는 독일 브랜드의 카메라가 한국에서 입지를 넓혀가기 시작했다. 역사도 오래되었지만 또 그만큼 가격도 만만치 않은 브랜드다. 디지털로 많은 것이 변하고 있을 그즈음 라이카에서도 디지털카메라를 출시했다. 아빠는 그 소식을 놓치지 않았고, 그간 모아둔 비자금으로 단골 카메라 숍에 주문을 했다. 주문한 지 두어 달이지나 카메라를 손에 넣었지만, 사실 병원을 드나들기 시작하면서 카메라를 주문했다는 건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다. 10월 초, 주말을 이용해 잠시 집에 다녀온 엄마가 카메라를 챙겨 병원으로 왔다. 택배 상자만 버리고 카메라 박스 그대로 보물단지 다루듯 조심히 들고 왔다며 아빠에게 건넸다. 침대에 누워 아픈 모습을 우리에게 보이지 않으려 안간힘을 다해 참은 아빠였지만, 그때는 달랐다. 기다렸던 장난감을 받아 든 아이처럼 환하게 웃어댔고, 기분 좋음을 감출 줄 몰랐다. 본인 손바닥만 한 카메라였지만 얼마나 조심히 다루던지 그 모습이 아직 눈에 선하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병상 옆 서랍장에 넣어두고 며칠 내내 카메라를 잡고 이것저것 테스트해봤을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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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카메라를 다시 보게 된 건 상을 치른 후 한 달쯤 지났을 때다. 아빠는 카메라를 몇 번 사용하지도 못한 채, 유산처럼 남기고 떠났다. 그 카메라를 가장 잘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 큰 사위라고 판단한 엄마는 남편에게 카메라를 건넸다(남편은 직업 특성상 항상 카메라가 필요하다). 이게 뭐라고, 이게 그렇게 사고 싶었어 하고 속으로 말했다. 아무렇지 않게 카메라를 작동했다. 언제나 그렇듯 무심결에 버튼을 on으로 하고 이것저것 보던 중 저장해 둔 사진 있다는 걸 알았다. 분명 마음에 들지 않은 컷은 삭제를 했을 텐데, 남아 있던 사진은 삭제하는 걸 잊었거나, 본인의 마음에 들었거나 하여튼 열 장 채 되지 않은 사진이 카메라 속에 남아 있다. 아빠가 병원에서 무슨 사진을 찍었나 볼까 하며 한 장 한 장을 넘기다 보니 일출 사진이 전부다. 이른 아침 병원 뒤 작은 산 사이로 드리우는 붉은 해, 한강에서 비틀비틀 춤추는 해 사진뿐이다. 병원에서 찍을 수 있는 사진이 한계가 있었겠지만, 사진을 보고 울컥한 마음을 숨길 수가 없다. 누군가에겐 그저 매일매일 반복되는 일상 같은 일출일 뿐이다. 하지만 적어도 내겐 그 카메라에 담긴 몇몇의 컷이 아빠의 진심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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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선 치료를 받고, 약을 먹고, 링거를 맞고 모질게 아팠을 테지만 하루하루 떠오르는 둥근 해를 하루라도 더 보고 싶어 했을 테고, 그런 마음이 무심결이든, 의도되었든 카메라에 남아 있다. 안타깝게도 그 마음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짧았지만 어쨌든 아빠의 숨결을 담은 카메라는 이후로 남편의 손에서 오래도록 함께했다. 남편이 작업한 드라마에도 마치 ppl처럼 나오는 영광도 누렸다(KBS 2TV 주말 드라마 '내 딸 서영이'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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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카메라가 자꾸 말썽을 일으켜 AS를 받기 위해 라이카 매장을 찾았다. 고치고 싶었지만, 고치더라도 상당한 비용이 들고 또 다른 곳이 말썽을 부릴 것이라며 직원이 고쳐서 사용하는 걸 만류했다. 아빠가 그렇게 떠난 것처럼 카메라도 그렇게 역할을 다했다. 그러고 보니 벌써 남편 손에서 9년을 함께 일한 카메라다. 이제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지만, 참 다행이건 적어도 아빠의 취미는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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