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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셩혜 Apr 06. 2019

난생처음 꿀을 샀습니다

며칠 전 태어나 처음으로 ‘꿀’을 주문했다. 40년 가까이 살아오면서 ‘꿀’이라는 걸 돈 주고 주문한 것이 처음이다. 어디에서 사야 할지 알았으니 망정이지 그마저 몰랐다면, 아마 사지 않았으리라.  

아빠는 우리 가족이 먹을 꿀을 직접 마련했다. ‘양봉’을 취미 아닌 취미로 한 것. 언제부터였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우리 집 창고에는 항상 꿀 담긴 유리병이 있었고 봄이 되면 부모님 지인들과 동네 사람들이 꼭 한 두병씩 사 갔다. 귀하디 귀한 로열젤리는 늘 냉동실 한쪽을 지키고 있었고, 아빠는 술 마신 다음 날이면 어김없이 꿀물로 숙취를 달랬고 엄마는 나와 동생이 입병에 걸릴 때면 꼭 프로폴리스 원액을 먹였다. 어쩌다 가끔은 벌 5~6마리가 들어 있는 아크릴 투명 상자가 집에 있는 날도 있었는데 그런 날은 어김없이 누군가 벌침을 맞는 날이다(대부분 부모님이 맞는 것이다). 어찌 되었건 꿀은 우리 집 부엌 찬장에서 떨어지지 않는, 마치 곰돌이 푸에게 있어 떼레야 뗄 수 없는 꿀 같은 존재였다.  

아빠의 또 다른 자식과도 같은 벌통은 막내 고모 집에 있었다. 우리 집에서 차로 15분가량 떨어진 곳이지만 집 뒤로 작은 숲, 앞으로 마당과 텃밭이 있다. 마당을 지키던 누렁이 집 너머로 농사를 짓던 터가 있는데 그 한쪽이 벌통 자리였다. 아빠는 하루가 멀다고 가서 꼬박 한두 시간씩 일을 했고 일이 끝날쯤에 아빠가 ‘누~부’라고 불렀던 고모는 막내 동생이 애쓰는 것이 안 쓰러웠는지 시원한 미숫가루나 매실차 등을 꼭 한 잔씩 태워다 줬다. 


일 년 내내 주인이 쏟는 정성을 아는지 벌들은 분주히 움직였다. 그들이 만들어 준 자연의 선물을 찾기 위해 봄 꽃비가 내릴 시기가 되면 이른 새벽 나가 꼬박 반나절을 일해야 했다. 아빠가 가진 벌통은 20~30개 정도였다. 큰 드럼통처럼 생긴 채밀기에 벌집을 넣어 힘을 다해 채밀기를 돌리면 벌들이 십시일반 모아 온 꿀이 끈~적 끈~적 흘러내려 모인다. 거스름 망에 한 번 더 걸러 꿀벌 시체와 밀 같은 불순물을 제거한 후 유리병에 담아내는 꿀 채취 날이면 항상 엄마와 함께 대동단결되었다. 나 역시 대학교 들어간 후 몇 년은 휴일 단잠을 포기하고 따라가서 꿀 재취하는 일을 거들었다. 이날이 되면 잊지 말아야 할 게 있었는데, 바로 복장이다. 벌에 물리지 않도록 몇 겹의 옷을 겹겹이 입는데 이때 중요한 건 가장 마지막에 입는 옷은 몸에 딱 달라붙지 않은 헐렁한 옷이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얼굴·목을 모두 감싸는-마치 빨간 양파망과 비슷한-면포를 쓰고 목 부분에 달린 끈을 꼭 조아 벌이 면포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사실 뭐, 그렇게 한다고 해서 벌의 공격에서 이기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벌에 쏘이는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벌에 쏘이면 따끔하기도 하고 시간이 지나면 차츰 쏘인 부위가 부어올라 간지럽지만, 한두 번 쏘이다 보니 그 자체도, 벌도 무서워하지 않게 되었다(한 번은 입술에 쏘인 적이 있는데 하필 그날 오후에 사촌 오빠 결혼식이 있었다. 입술이 가라앉지 않아 결혼식 내내 손수건으로 입을 가리고 있어야 했다. 심지어 부은 입술 때문에 가족사진도 찍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이런 연유로 나는 돈을 주고 꿀을 사 먹어 본 적이 없다. 아빠가 돌아가신 후 지금까지도 그랬다. 아빠와 함께 양봉을 한 친구분이 있는데 그분께서 아직도 양봉업 중이다. 엄마가 그분께 조달해준다. 작년에 구해다 준 2.4kg의 꿀은 이미 바닥이고 올해 꿀은 아직 채취 전이라 급한 대로 구해야 했는데, 어쩐지 마트 앞 꿀 코너에 발길이 가지 않는다. 아빠도 가족이 먹는 꿀을 채취할 때 소량의 설탕을 쓸 수밖에 없다고 했는데, 시중에 파는 꿀은 오죽할까 싶어서다. 다행인 건 몇 해 전 한 플리 마켓에서 우연히 아빠와 딸이 함께 하는 양봉장을 알게 되었다. 경남 김해에 있는 작은 양봉장이었는데 부녀가 함께하는 양봉장이라! 먹어보지 않아도 왠지 믿음이 가는 이유는 뭘까. 암튼 이곳에서 아카시아 꿀을 주문했다. 


전국에 벚꽃이 만개하는 4월이 지나 5월이 되면 내 고향 칠곡에는 아카시아 꽃향기가 만발한다. 우리나라 최대의 아카시아 나무숲인 신동재에서 아카시아벌꿀 축제도 어김없이 열리겠지. 온 산이 눈이 온 듯 아카시아 꽃으로 뒤덮인 그곳에 아빠가 거닐고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그렇게 5월이면 아카시아 꽃향기가 온 마음에 짙게 내려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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