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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셩혜 Apr 28. 2019

손을 흔들어 준다는 것

며칠 전 박조건형+김비 작가의 북토크에 다녀왔다. 일찍 도착해 박조건형 작가가 그동안 드로잉 한 스케치북을 보는데 알 수 없는 물결이 밀려왔다. 그들 삶을 하나씩 엿보는 재미도 있었지만, 그 즐거움 끝엔 별것도 아닌 일상 속 잔향이 ‘선’이라는 언어로 이내 마음을 울렁울렁 건드리는 듯했다.

박조건형 작가의 일상이 기록된 드로잉북

여성전용 작업실 ‘씀씀’에서 진행된 북토크는 오붓한 분위기에 진행되었다. 두 사람은 오랜 시간 맞춘 호흡을 자랑하는 듯 주거니 받거니 하며 그림 속 이야기를 풀었고, 함께한 <별것도 아닌데 예뻐서>의 출판사 부장님은 출간 비하인드 스토리를 생생하게 들려줬다. 쉽게 들을 수 없는 이야기 속에 북토크는 절정을 이뤘다.

그러던 중 박조건형 작가가 그린 장인어른 드로잉이 빔 프로젝트 화면에 띄어졌다. 김비 작가가 간직한 한 장의 증명사진을 바탕으로, 몸 부분은 생각을 더해 표현한 것이라 설명했다. 그림 속 어른은 한 손을 활짝 펴 들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는데 박조건형 작가가 김비 작가를 생각하는 마음이 전해졌다. 자신이 가진 능력으로 상대를 무척이나 멋지게 위하는 일에 ‘아앗~하’ 하고 혼자 감동받다가 불현듯 아빠가 떠올랐다.

<별것도 아닌데 예뻐서> 중. 박조건형, 김비 작가, 김영사


‘우리 아빠도 항상 저렇게 손 흔들어 줬는데’하고. 아빠는 헤어질 때마다 한 손을 들었다. 그리고 다섯 손가락을 활짝 펴 손목 스냅을 이용해 좌우로 두어 번 흔들었다. 꼭 이렇게 손인사를 하며 웃었다. 다시 제 곁을 떠나 삶의 터전으로 가는 딸이, 딸내 부부가 아쉽고 서운하고 그랬을 테다. 애틋함이 배어있는 뭐 그런 마음을 웃으며 손인사로 대신한 걸지도 모르겠다. 반가운 마음에 만날 때도 할 수 있을 텐데 꼭 헤어질 때만 이렇게 인살 했다.

손짓으로 가볍게 하는 인사, 손인사는 어쩌면 그 사전적 정의와 달리 가볍지많은 않은 표현일지도 모른다.  ‘안녕’을 대신하는 동작일 수도, ‘진심’을 담은 몸짓일 수도. 김비 작가에게 그림 속 아빠의 손인사는 그동안 지녔던 아빠의 기억을 새롭게 써줄 한 페이지가 될 테고, 아빠의 손인사도 ‘어여 가’ ‘잘 가거라’만의 인사가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씨-익 웃으며 수(手) 인사를 해주는 그 모습에 마음이 짠-해지는 걸 보면 말이다.

분홍꽃내음 지나고 세상에 뿌려진 초록의 무성함이 바람결에 살랑살랑 춤춘다. 별것 아닌 그저 계절의 변화일 뿐인데 마치 아빠가 흔들던 손인사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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