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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셩혜 Apr 13. 2019

메일 쓰는 법을 배웠습니다

우리 집에 PC가 처음 놓인 건 내가 고등학교 1~2학년 때쯤인 1997년도 전후다. 천리안, 하이텔 같은 전화 회선을 이용한 초창기 인터넷 통신은 지금의 광속도와 비교할 순 없지만, 삐~삐삐~ 같은 소리를 내며 연결되는 동안 기다리는 설렘이 있었고 밤늦게 인터넷을 할 때면 혹시 접속 소리에 부모님이 깨실 까봐 노심초사하기도 했다. 1999년 대학에 입학할 때쯤엔 인터넷 통신이 활발해지고 ‘@’가 들어가는 개인 메일 주소가 유행하기도, 필요하기도 했다. 학과에서 나오는 과제나 자료, 정보를 이메일로 주고받기 바빴고 메일로 보내는 인터넷 카드도 유행이었는데 그걸 친구들에게 보내려면 메일 주소가 필수였다. 어쨌든, 그때부터 메일 계정은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주소 중 하나가 되었다. 


한글 프로그램만 주로 사용하던 아빠도 언젠가 메일 사용하는 법을 배웠다. 공교롭게도 그 시기는 내가 친구와 대학 앞에서 자취를 시작할 때쯤이다. 가족들과 매일 얼굴을 마주하며 살다가 자취를 시작하면서 1~2주일에 한 번 부모님 얼굴을 뵈었고 대학 졸업 후 상경하면서부터는 기껏해야 부모님 생일과 명절 정도 집에 내려간 것이 전부이니 얼굴 보고 대화하는 횟수가 급격히 줄어들게 된 것. 동생마저 일본으로 유학 가면서 아빠, 엄마, 나, 여동생 이렇게 넷이 둘러앉아 치킨 한 마리를 앞에 두고 도란도란 대화하는 건 손에 꼽을 정도였다.  

어쨌든 아빠가 배운 메일 사용법은 떨어져 지내는 두 딸과 손쉽게 소통할 수 있는 수단이 되었다. 지금은 흔하디 흔한 통신사 ‘가족 할인’ 카카오톡 같은 애플리케이션을 통한 ‘무료통화’는 찾을 수도 없었던 시절에 메일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어떤 구애도 없이 할 수 있는 좋은 매개체였던 셈. 거기다 사진이나 문서까지 첨부할 수 있으니 우체국이 따로 필요 없다. 아빠가 처음 나에게 보낸 메일이 언제였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가족끼리 주고받은 메일함 폴더를 보면 2002년 2월 15일, 나의 스물두 번째 생일 축하 메일이 첫 메일로 남겨져 있다. 그렇게 주고받은 수많은 메일 속에는 여러 이야기가 담겼다. 아빠 인생을 알 수 있는 이력서와 자기소개서, 곁에 없던 내게 하는 잔소리, 생전 칭찬에 인색했던 아빠가 한 진심 어린 칭찬, 사회생활에 첫발을 내딛는 딸에게 보내는 당부, 출사 다녀온 사진, 아빠의 일, 자식 걱정 등 2002~2009년까지의 우리 시간이 박제되었다. 차곡차곡 쌓인 이야기 속에 아빠가 딸에게 전하는 삶의 지혜와 태도가 담기기도 해 가끔 어쩌다 가끔 읽어보지만, 아빠가 돌아가신 지 십 년이 지난 지금도 그 메일함을 열고 메일 하나하나를 클릭하는 데는 큰 용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하루에도 몇 번이고 인터넷을 사용하고 메일 계정을 접속해야 하는 데 그 메일함을 볼 자신도, 없앨 자신도 없어서 해당 메일의 사용을 줄이고 주로 사용하는 메일 주소를 바꿔 버렸다. 

아빠와 주고받은 메일 하나하나로 그 시간을 그리고 아빠를 추억하게 될지 몰랐지만, 자식들과 소통하려 했던 아빠의 노력과 시간, 그리고 컴퓨터 앞에 앉아 있을 모습을 생각하니 가슴이 짠해진다. 내게 마지막으로 보낸 메일은 2009년 4월의 어느 날이었고, 직장이었던 문화원에서 봄 축제와 행사 준비로 여념이 없었을 아빠의 메일은 그렇게 끝이 나버렸다. 바쁜 봄이 지나 초록이 무성하던 여름날 아프다는 걸 알았고 그렇게 가을에 떠났기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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