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셩혜 Jul 16. 2019

저는 친정에서 그렇게 배웠습니다

“너는 친정에서 그렇게 배웠니?”  

   

이런 대사는 TV 막장 드라마에만 나오는 줄 알았다. 이 말을 드라마가 아닌 실생활에서 내 귀로 듣다니! 드라마는 허구가 아니었다. 결혼하고 얼마 되지 않아 시아버지와 싸울 일이 있었다. 말이 싸움이지 어디 싸움을 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지 않던가! 언성을 높였다고 하기에도 적합하지 않은 듯싶고, 대화 중 말대꾸를 했다 뭐 그 정도로 치자. 무슨 이유로 그랬는지도 기억나진 않는다. 다만 내가 또렷이 기억하는 건 “친정에서 그렇게 배웠니?” 이 한 마디뿐이다.

그때 시아버지와 나는 전혀 다른 공간에 있었다. 시아버지는 집, 나는 남편 차에 타고 어디론가 이동 중이었다. 수화기 너머로 전해지는 말 한마디, 한마디는 내가 전혀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없는 문장의 나열이었고 시아버지가 한 마디 할 때마다 나는 ‘따박따박’ 짚어가며 응대했다. 다만 내 응대가 시아버지 입장에서 그저 말대꾸에 불과했을 뿐이다. 그러면서 내뱉은 말이 “친정에서 그렇게 배웠니?”  

   

어. 내가 무슨 말을 들은거지? 당황스러웠지만, 나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네. 저희 부모님은 그렇게 가르치셨어요. 저희 아빠는 해야 할 말이 있으면 손 들고 이야기하라고 가르치셨거든요.”라고 단호하게 답했다. 그랬다. 아빠는 해야 할 말이 있으면 손을 들고 의사표현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자신의 목소리를 숨기거나 낮추지 말라고 했다. 손만 들지 않았을 뿐, 나는 시아버지의 말이 부당하다 생각하여 이에 맞서는 목소리를 냈을 뿐이다. 통화를 마칠 때쯤 수화기를 잡은 시아버지는 바들바들 떨고 있는 것 같았다.      

하고 싶은 말을 하긴 했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마음은 그리 편하지 않았다. 곁에서 듣고 있던 남편도 “꼭 그렇게 해야 했어?”라고 말했다. ‘내가 좀 심했나?’라고 생각할 때쯤 다시 울린 전화 한 통. 시어머니였다. “아버지가 좀 놀라긴 했어도 걱정 말어. 고맙다 며느리!”

시아버지에게 말대꾸 따박따박 한 며느리에게 고맙다라니! 이는 또 무슨 상황인가! 한국전쟁 때 이북에서 피난을 온 시아버지는 8남매 맏이다. 시할머니도 떠받들어 키운 장남이었고, 시어머니도 시집온 이후로 자기 의사 한 번 제대로 표현하긴 커녕 남편 말 한마디에 토시 한 번 달아본 적이 없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시아버지 말이 ‘법’이다 생각하고 사십 년 넘게 살았다. 그런데 시집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며느리가 시원하게 할 말 다해주니 시어머니 입장에서 통쾌했던 것! 나를 통해 대리만족을 느낀 셈이다.     

며칠 뒤 시아버지에게 죄송하다며 사과했다. 하지만 그 사건 이후로 시아버지는 내게 한 마디 한마디 조심스레 건넸고, 나는 시어머니의 입장을 대변하는 며느리, 제 목소리 내는 며느리가 되었다. 만약, 지금도 그때와 같은 상황이 생긴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똑같이 행동할 것이다. 그것이 내가 내 아버지로부터 배운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 중 하나이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참고 숨는 것이 아니라 소신껏 자신의 목소리를 당당하게 낼 줄 아는 것, 용기를 가지고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법 말이다. 내 생각이 무엇인지 밝히는 건 중요하지 않던가! 말하지 않으면  알 수 없으니 말이다. 다만 그 일에는 약간의 용기가 필요하고 책임이 수반되어야 한다.


근데, 궁금하다. 아빠가 이 사실을 알면 뭐라고 할까? 옳았다고 할까? 잘못했다고 할까?  


이전 16화 손을 흔들어 준다는 것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