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셩혜 May 18. 2019

그래서 당신이 더 그립다

일 년 전 내 이름 세 글자가 찍힌 책이 출간되어 서점에 깔렸다. 비록 하와이 여행 가이드북이고, 출판사가 첫 번째로 출간한 책이라 시리즈물을 자랑하는 여타 출판사의 책 사이에서 홀로 고군분투해야 했지만 그동안 쏟아낸 열정을 잘 알기에 매대 위에 놓인 그 어떤 책보다도 크고 돋보였다.    

마침 하와이 여행을 앞두고 책이 필요한 친구가 곳곳에 있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알아오던 친구 Y도 그중 하나이다. 곧 가족과 함께 하와이 여행을 떠난다고 해 만났다. 여행 준비 이야기를 한창 나누던 중 Y는 내게 뜻밖의 이야기를 건넸다. 자식 자랑은 잘하지 않은 엄마가 Y엄마에게 자랑을 했다는 것(엄마들끼리도 친분이 있었다).  

Y는 “아빠가 평소에 책도 많이 읽고 회사에서 글 쓰시는 일도 많이 하셨다며? 그걸 네가 그대로 물려받은 거라고 아빠랑 딸이 비슷한 일을 한다고 엄마가 흐뭇해하신데.” 나는 “어-어... 뭐라고?”하며 겸연쩍게 웃었다. 그게 무슨 자랑인진 모르겠지만, 엄마가 할 수 있는 나름의 자랑이었고, 엄마에게는 만족스러운 지점인가 보다 하고 여겼다. 


아빠는 나와 비슷한 일을 했다. 좀 더 정확히 따지면 나는 아빠와 비슷한 길을 걷는 중이다. 대학 전공을 정한 것도 아빠였고, 몇 안 되는 아르바이트 경험은 대부분 전공과 연관된 것뿐이었지만, 그나마 그 자리도 아빠가 마련해오곤 했다. 꿈과 상관없이 성적에 맞춰 선택한 전공이었지만, 아빠의 판단에 몇 년 후엔 ‘문화예술’ 분야가 떠오를 것이라, ‘예술학’을 전공하면 취업하기에 좋을 것이라 했다. 그 예상은 적중했다.    

아빠는 지방의 문화원에서 근무했다. 내가 때어 날 때부터 공무원은 아니었지만, 내가 고등학생 때인가 아빤 매일 아침 양복을 입고 출근하기 시작했다. 사무장으로 근무하면서 군내 전통문화를 연구해 역사서나 문집을 만들고, 군내 문화 행사를 기획하고, 군내 문화와 주민 복지를 위한 일을 했다. 자료를 찾고 글을 쓰는 일이 주되진 않았지만 상당 부분 차치하고 있었다. 그런 업무 환경 탓에 내가 쓴 원고를 항상 코멘트해줬다. 내가 쓰는 원고의 가장 첫 번째 독자는 아빠였던 셈. 대학교·대학원의 졸업 논문을 쓸 때도 마찬가지였다. 가장 큰 후원자가 되어주었고, 내가 찾을 수 없던 자료도 찾아 불쑥 내밀곤 했다. 

예술학을 전공하고 졸업할 즘 갤러리와 미술관은 우후죽순으로 생겨났고 아트페어 등 미술계는 하루가 멀다 하고 커져갔다. 큐레이터를 뽑는 곳도 늘어났다. 갤러리 큐레이터로 4-5년가량 근무하다가 글 쓰는 일을 업으로 시작한 후에는 원고를 보여주고 싶어도 봐줄 수 있는 아빠가 없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사연이 담긴 이야기를 쓰고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성과물을 만들기 시작할 때부터 아빠는 없었다. 글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 없어졌다. 남편에게도 보여줘 봤지만 사실 큰 도움은 되지 않았다. 그냥 예의상 ‘잘 썼네’ ‘어~ 괜찮은데’ 정도의 코멘트뿐. 어느 부분이 좋고, 어떤 것이 보완되면 좋을지 구체적이지 않았다. 나는 그동안 구체적인 코멘트에 길들여져 있었나 보다. 


내가 가진 재능의 대부분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것이겠지만, 그렇다고 글 쓰는 일이 나의 재능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어쩌다 이 길을 걷고 있는 것 일뿐. 어쨌든 나는 아빠와 비슷한 길을 걷고 있다. 다만 아빠가 몇 년이라도 더 살 수 있었다면 글 쓰는 기쁨과 행복 혹은 고충도 나누고, 글쓰기 책도 공유해 읽고, 좋은 문학 행사나 북 페스티벌 같은 곳에 함께 갈 수 있었을 텐데….


출간된 책을 들고 아빠 산소에 찾았다. 무덤 앞에 책을 나란히 두고 소주 한 잔을 올렸다. 볼 수도 읽을 수도 없는 책이지만, 아빠가 본다면 어떤 코멘트를 해줄까? 아빠도 뿌듯해하시겠지? 아빠도 자식이 비슷한 길을 걷고 있어 행복할까?

문득 궁금해졌다. 근데, 아빠 꿈은 뭐였을까? 내 꿈은 지금처럼 글 쓰는 사람은 아니었다. 한 때 학생기록부에 적힌 꿈은 피아니스트였고, 부모의 희망 직업은 교사 혹은 교수였다. 분명한 건 작가는 그 어느 시절에도 꿈꿔본 적 없는 일이라는 거다. 근데 뭐 꿈을 못 이뤘으면 어떤가! 어쨌든 아빠와 비슷한 길을 걷는 중이고, 엄마가 그런 모습을 흐뭇해한다. 나는 글 쓰는 일로 밥벌이를 하는 중이며 하고 싶은 이야기를 언제 어떻게든 써낼 수 있는 이 일이 좋고 여느 일처럼 힘들 때도 있지만 사보나 책을 만드는 것에 보람을 느낀다. 함께 격려하며 서로 응원해주는 글 쓰는 친구들 ‘씀씀’도 있어 즐겁다. 다만, 쓰면 쓸수록 그리움이 밀려올 뿐이다. 


이전 18화 난생처음 꿀을 샀습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