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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셩혜 Apr 20. 2019

무뚝뚝한 아빠라도, 나는 부럽다

얼마 전 남편 친구들 모임에 참석했다. 네 커플이 모이는데 그날 브런치에 연재 중인 아빠 글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모임에 참석한 언니 중 한 명이 그동안 연재한 글을 읽으면서 “아빠가 참 자상한 것 같아 좋겠어.”라고 말문을 열었고 곁에 있던 이들도 동의하는 듯 한 마디씩 보탰다. 그 말을 듣고 문득 생각했다. “아빠가 자.... 상했나?”라고. 국어사전에서 ‘자상-하다’를 검색하니 형용사로 ‘찬찬하고 자세하다’와 ‘인정이 넘치고 정성이 지극하다’라는 뜻으로 나온다. 음. 

아빠는 유교 성향이 짙은 경상도에서 9남매 막내로 태어났다. 한국전쟁이 발발했을 때 겨우 4~5살이었고 국민학교에 들어가기 전 할아버지, 즉 아빠의 아빠를 잃었다. 너무 어릴 때  일이라 할아버지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다며 말했던 적이 있다. 아빠가 자상했는지는 생각을 좀 해봐야 했지만, 아빠 없이 자란 설움을 자기 자식에게는 물려주기 싫다고 했다. 대표적인 게 공부다. 아빠 위로 네 명의 형이 있는데 다들 당시에 대학교를 졸업하고 교편을 잡았다. 막내였던 아빠만 그 혜택을 못 본 것. 그래서 나와 동생에겐 하고 싶어 하는 만큼의 공부는 모두 지원했다. 

대부분 딸이 느끼는 것처럼 내게 아빠도 자상함보다 무뚝뚝함에 더 가까웠던 사람이다. 말수도 적었고 유머는 찾기 어려웠다. 좀처럼 웃는 일도 없었다. 그렇다고 내가 애교가 많아 아빠를 즐겁게 한 것도 아니다. 참고로 내 성격도 그런 아빠를 고스란히 닮았다. 여자치곤 무뚝뚝한 편이다. 언니들이 자신의 아빠에게 느끼는 감정은 말하지 않아도 대충 짐작할 수 있다. 나도 한때 그랬으니 말이다. 가깝고 친근하게 느끼기보다 아빠에게 다가서는 게 힘들고 무서웠던 때가 있다. 큰딸이라는 이유로 내게 보이는 관심이 부담스럽기도 했고, 관심을 간섭이라 생각하기도 했다. 늘어놓는 잔소리가 귀찮았던 적도 많다. 한때 우리가 살던 집 2층에 당구장이 있었는데 그 당구장에서 주워 다 둔 당구봉으로 혼내고 때릴 땐 ‘친아빠가 맞나?’하고 생각해 본 적도 있다. 


엄마는 아빠가 정장을 입고 출근하면서부터 조금씩 변했다고 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였나,  아빠는 빳빳하게 다려진 흰색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하고 검은색 구두를 신고 매일 아침 출근이라는 걸 하기 시작했다. 누군가 추천을 받고 일련의 과정을 거쳐 지역 문화원에 출근하게 된 것이다. 그 이후로 무뚝뚝하던 아빠 얼굴에 미소가 띠기 시작했고 한 마디가 두 마디로, 두 마디가 세 마디로 늘었다. 아마 지역민이라 불리는 동네 주민, 무엇을 배우러 오는 주민, 관공서 공무원들과 소통을 해야 하는 기회가 많아지고 이 사람 저 사람 만나는 횟수가 늘어나다 보니 자연스레 변했다. 하여튼 그런 변화는 집으로까지 연결되었다. 사람이 하루아침에 변하지 않겠지만, 아빠는 조금씩 조금씩 알게 모르게 변하기 시작했다. 감수성이 예민한 여고생 시절을 보내고 대학생이 되니 변화된 아빠의 모습이 싫지 않았다. 아빠와 엄마 사이의 대화는 이전보다 늘었고, 그러다 보니 이야기할 기회가 더 자주 만들어졌다. 평일 저녁에는 아빠를 따라 운동하러 강둑에 나가기도 하고 특별한 일 없는 주말이면 등산도 따라나섰다. 내가 상경하면서 떨어져 지낸 시간이 많았지만, 한 번씩 집에 갈 때면 아빠가 뭐 하나라도 같이 하고 싶어 하는 눈치라 몸은 피곤해도 마음 편한 길을 선택했다. 그럴 때마다 아빠는 꼭 “우리가 같이 살 수 있는 날이 많이 남은 줄 아남? 몇 년 안 남았어.”라고 했다. 그땐 그저 뭘 같이 하고 싶은 핑계 혹은 투정인 줄 알았다. 

아빠 말이 씨가 된 것처럼 몇 년 지나지 않아 아빠 몸에 암이라는 손님이 찾아왔고 뭐가 그리 급했는지, 할아버지 · 할머니 품으로 홀연히 떠났다. 아빠를 떠나보낸 후 아빠와의 추억을 되짚어보니 우리 자매에게 인정이 넘치고 정성이 지극한 사람이었다. 학교를 일 년 일찍 들어간 내가 친구들 속도에 따라가지 못할까 봐 일일이 신경 쓴 것도, 초경으로 아파하던 나를 밤새워 지킨 것도 엄마가 아니라 아빠였다. 다만 그 시대 여느 아빠처럼 딸을 사랑하지만, 감정을 표현하는데 서툴렀고, 관심을 가지고 싶지만 어떻게 다가가야 하는지 그 방법을 잘 몰랐을 뿐이다. 딸에게 웃어주고 싶은데 딸은 그런 기회조차 만들지 않았을 수도 있다. 세상에 어떤 아빠가 자신이 사랑하는 자식에게 무뚝뚝하기만 할까? 다정해지고 싶어도 기회가 없어서, 방법을 몰라서, 거리가 멀어서 그런 건 아닐까? 모임의 언니들은 자상한 아빠를 가진 내가 부럽다 했지만, 나는 무뚝뚝한 아빠라도 아빠가 있는 언니들이 더 부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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