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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셩혜 Mar 30. 2019

당신의 발은 편했나요?

쇼윈도에 놓인 빨간색 운동화가 예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교복을 입은 중학생 소녀는 쇼윈도 앞에 가만히 서 온 정신을 운동화에 팔았다. 누군가 날 불렀는지, 저녁 시간 동네에서 피어나는 구수한 냄새 때문인지, 어떻게 정신이 들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분명한 건 등·하굣길마다 잘 있다고 안부를 전하는 듯 그 운동화는 며칠간 내 정신을 온전히 사로잡았다는 것. 며칠 뒤 주말이었나, 어김없이 아빠와 손잡고 집으로 들어오던 날, 나는 또다시 쇼윈도 앞에 멈췄다. 마치 빨간 운동화의 주인공은 나인 것 마냥 그 운동화는 주인을 못 찾고 있었다. “아빠 저 빠-알간 운동화 예쁘지? 내가 며칠을 봤는데 예쁜 거 같아?” 곁에 있던 아빠는 무심한 척 투박스러워 보인다면 핀잔을 줬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운동화는 스니커즈도 슬립온도 아닌 농구화 스타일이었다. 아빠 눈에 예뻐 보이지 않는 것이 당연할 수 있다. 


주말을 보낸 며칠 뒤 쇼윈도에 있던 운동화는 주인을 찾았다. 책상 위에서 ‘안녕?’하고 손 흔드는 듯 올려져 있던 나의 운동화. “아~쿠션감도 좋고, 이 신발 신으니깐 키가 더 커진 것 같아”하고 신나 하는 내게 아빠는 무뚝뚝한 표정으로 “발이 편하냐?”라고 물었다. 그때만 해도 아식스나 프로스펙스 같은 브랜드의 운동화가 전부였고 어른들도 그런 운동화가 가장 좋다고 여겼을 때다. 어쨌든 이런 브랜드만 알았던 내게 빨간 운동화는 신세계였다. 타미 힐피거(Tommy Hilfiger)라는 브랜드로 지금에야 많이 알지만, 그 옛날 나이키, 아디다스 매장도 없었던 촌에서 이 브랜드를 아는 사람은 찾기 힘들었다. 농구는 하지 않았지만 덩크슛을 할 수 있을 만큼 편했고, 두툼한 뒷 굽 덕에 키도 많이 큰 것 같아 기분도 좋았고, 빨간색이라 눈에 쉽게 띄었다. 아빠는 나를 보며 “무슨 신발이 보트 같노!” 라고 괜한 핀잔을 주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새 신발의 불편함은 크게 찾을 수 없었고 이후에도 괜찮았다.    

‘발 편한 신발’의 중요성에 대해 자주 이야기하던 아빠 덕에 중학생인 소녀가 신던 구두는 영 에이지, 무크 같은 브랜드였다. 아빠는 ‘금강’이라는 브랜드에서 나오는 신발이 세상 편한 신발이라 여겼고 덕분에 아빠 신발도 대부분 그곳 브랜드의 제품이었다. 아빠의 구두는 늘 반짝반짝거렸다. 아빠의 구두 뒤축을 보면 아빠의 걸음걸이를 알 수 있었다. 엄마는 구두 뒤축이 헤져 닳은 것을 보며 아빠에게 몇 번 잔소리를 했지만, 걸음걸이를 고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아빠는 뒤축이 닳은 것과 발의 편안함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며 몇 번 굽갈이를 하며 신었다. 발등 부분도 어떻게 구두를 신고 걸었는지 가늠할 수 있을 정도로 적당한 주름이 잡혀 있다. 어찌했건 아빠는 신발을 살 때 발이 편한 것에 대해 가장 많이 강조했다. 생각해보면 대부분의 사람이 이와 비슷한 기준으로 신발을 고를 테지만, 아빠는 브랜드에 대한 믿음이 강했고 기업 입장에서 봤을 때 충성도 높은 고객이었다. 

입관하던 날, 아빠 발을 붙잡고 하염없이 울었다. 엄마와 동생 그리고 남편은 계속해서 아빠의 얼굴을 살폈다. 잠이 들어 있는 듯 무척이나 편안해 보였지만 남은 우리는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도 그리워했다.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되어 얼굴을 흘러내려도 그게 무슨 상관인가, 가지고 있던 손수건을 꼬깃꼬깃 접어 닦고 울고 반복했다. 나는 홀로 발 앞에 무릎을 꿇고 두 손으로 양발을 쓰다듬고 가만히 감싸기를 반복했다. 왜 그랬는지 이유는 모르겠다. 그저 아빠 신체 부위 중에서 가장 고단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묵묵히 평생을 걸어오며 가족을 지탱했던 아빠의 발은 작았다. 아빠의 어깨는 항상 넓고 든든하다 여겼지만 실상 발은 무척이나 작게 느껴졌다(아마 255~260mm 정도였다). 만지고 또 만졌다. 이게 아빠를 만질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일 테니 말이다. 내게 발이 편한 신발만 신으라고 알려준 아빠도 평생 발이 편한 신발을 신었던 것 맞을까? 아무 말 없이 온기만 내뿜던 그의 발을 마주 잡으며 나는 또 궁금해졌다. 도톰하게 굳은살이 배인 아빠의 두 발 덕분에 넘치지 않지만 부족하지 않게 살 수 있었다는 생각을 하니 다시 또 가슴이 메인다.

빨간 운동화를 사주던 날 아빠가 알려준 말 덕에 나는 요즘에도 신발을 고를 때 ‘편안함’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디자인도 굽 높이도 좋지만 그것보다 발이 편안한 게 최고다. 아침에 신고 나가도 저녁에 집에 들어올 때까지 편안한 신발 말이다. 멋을 부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발이 편해야 폼도 낼 수 있지 않는가! 중학생이던 내게 아빠가 알려준 삶의 지혜는 어쩌면 삶이 녹록지 않음을 말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삶이 녹록지 않으니 신발이라도 편한걸 신어 단단히 대비해야 한다는 뭐 그런). 노란, 분홍 꽃 피어나는 봄이다. 그저 아빠 손잡고 꽃길 걸을 수 있는 그대들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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