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 조작은 인간에게 주어진 운명의 극복일까

(feat. 올더스 헉슬리 <멋진 신세계>)

by 지음


중2 아들 녀석과의 독서토론 시간. 아들은 오늘의 주제로 책 <관점 vs 관점>의 "인간 유전자 조작"에 대한 내용을 골랐어요(저는 다른 주제로 얘기하고 싶었건만. 쩝).


여러분은 "인간 유전자 조작"에 대해 생각해 보신 적이 있나요?


저는 깊게 생각해 본 적은 없답니다. 하지만 얼마 전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를 보고 리뷰하면서, 이런 세상이 올 수 있겠구나 싶어 가슴 한 켠이 서늘했어요. <관점 vs 관점> 책에서는 1998년에 나온 SF 영화 <가타카>의 이야기로 논점을 제시하기 시작해요. 에딘 호크와 우마 서먼 주연의 이 영화에서는 인간의 유전자를 분석하고 조작하는 미래 사회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주인공 빈센트는 유전자 조작 없이 자연적으로 태어났어요. 하지만 그의 유전자를 분석해 보니 향후 심장 질환에 걸리고, 범죄자가 될 가능성이 있으며, 31살에 사망한다는 결과가 나오죠. 빈센트의 운명에 좌절한 부모는 이번에는 완벽한 아이를 낳겠다는 일념으로 시험관 수정을 통해 완벽한 유전자를 가진 동생 안톤을 출산합니다. 빈센트는 완벽한 동생과 끊임없이 비교되며 가정에서 소외되고, 사회에서도 유전자에 따른 차별로 인해 원하는 꿈도 이루지 못하죠.


영화 가타카 포스터

가타카감독앤드류 니콜출연에단 호크, 우마 서먼개봉1998. 05. 02.




여러분은 자신의 아이가 빈센트와 같이

불운한 삶을 살게 된 것을 미리 알게 된다면 어떠실까요?


그리고 유전자 조작이 가능하다면 아이의 유전자 조작을 통해 주어진 운명을 극복해 보려 하실까요? 아니면 유전자 조작을 하지 않고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까요?


저희 아이는 책을 읽다가 갑자기 물어보더라고요. 자기도 유전자 분석을 다 해봤냐고요 ㅋ. 자신의 미래가 궁금하긴 한가 봅니다. 그럼 책 <관점vs관점>에 나온 유전자 조작에 대한 찬성과 반대 논점을 살펴볼게요.



유전자 조작에 대한 '찬성' 쪽 주장

유전자 조작은 주어진 운명을 극복하는 것이다: 유전성 질병의 비극은 끝나야 한다.


농구선수 한기범은 '마르판 증후군'이라는 유전병으로 평생 고통받았습니다. 이 고통을 자녀에게 물려줄까 봐 노심초사하는 심리적 고통까지 안게 되었죠. 신체적 질병뿐만 아니라 정신적 질병(예를 들어, 조현병)의 경우에도 유전적 요소가 강한 병들이 있지요. 이런 경우 유전자 조작 기술이 있다면 유전병을 자녀에게 물려주는 고통은 막을 수 있을 겁니다.


반대쪽에서는 인간 배아를 가지고 실험하는 것 자체가 비윤리적이라는 주장을 하지만, 초기에 윤리적 논란이 많았던 시험관 아기도 현재는 보편화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유전자 조작으로 장애를 없앨 수 있는데 그렇게 못하게 하는 것이 과연 윤리적이라고 할 수 있는지 질문을 던집니다. 오히려 유전자를 조작하는 것은 유전적 운명을 거부할 새로운 주체적 권리로 볼 수 있다고 말합니다(p.180).


더 나아가 유전병처럼 문제가 있는 유전자를 치료할 뿐만 아니라 지능이나 신체 능력을 향상시키는데도 유전자 기술이 활용될 수 있다면 어떨까요? 옛날 같으면 꿈도 못 꾸었을 성형수술이 보편화된 지금 유전자 조작 기술이 활용되지 못할 이유가 있을까요. 우리 사회는 건강하기만 하면 누구나 잘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아니며 매력적인 외모와 지능이 있어야 경쟁력 있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자식에게 재산을 상속해 주는 것처럼 유전자 조작 기술은 좋은 유전형질을 상속해 주려는 시도로 보아야 합니다(p.182).


따라서, 유전자 조작 기술은 인간에게 주어진 운명을 거부하고 보다 이로운 인간 사회를 만들려는 위대한 기획입니다(p.183).


유전자 조작에 대한 "반대"쪽 주장

유전자 조작은 다른 형태의 우생학일 뿐이다. 인간은 유전자 이상의 존재다.


영화 <가타카> 같은 가상 사회로 돌아가 봅시다. 그 사회에서는 배아에 대한 유전자 검사가 의무화되어 있고, 검사 결과에 따라 출산과 유전자 조작 여부를 결정한다고 가정해 봅니다. 의사가 한 배아의 유전자 검사 결과를 알려주면서, 유전자 조작을 하지 않고 자연적으로 태어날 경우 그 사람의 미래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해 줍니다.


"이 사람은 특별한 재능을 발견하지 못하여 살아 있는 동안 내내 가난뱅이로 살게 될 것입니다. 뒤늦게 예술 분야에서 일을 할 수는 있겠지만 여전히 재능을 인정받는 수준에 이를 정도는 아닐 것입니다. 그러다가 30대 중반에 정신이 쇠약해져 발작을 일으키게 되고 오래 못 가 정신병자 수용소에 들어갈 겁니다. 그리고 결국 나이 40을 넘기지 못하고 스스로 생명을 끊을 운명입니다."
-<관점 vs 관점> p.184


그의 말이 끝난 후 사람들은 여러 논의 끝에 자연적으로 태어나면 아이에게나 부모에게 "끔찍한 불행"이 될 것이며, 유전자 조작을 하기에도 유전적으로 열등한 부분이 많아 성공 여부도 장담하기 어려우니 아이를 출산하지 않기로 결정을 합니다. 이 배아를 폐기하는 것으로 결정을 한 것이죠. 그러자 의사가 모두에게 말합니다.


"이것 참 안타까운 일이네요.

우리는 지금 막 위대한 화가 빈센트 반 고흐를 잃었습니다."

<관점 vs 관점> p.184

반고흐 자화상
반고흐 <별이 빛나는 밤에>




이 이야기는 인간에게는 유전적 자질로만 평가될 수 없는 심오한 부분이 있음을 말해 줍니다(p185). 부모라 하더라도 아이의 인생을 결정할 권리가 없고, 과학자의 판단이 항상 옳은 것도 아닙니다. 유전자 검사를 통해 아이의 출산 여부를 결정하고, 유전자 형질에 따라 능력을 평가하는 사회가 온다면 그것은 더 이상 인간 사회라 부를 수 없지 않을까요?(p.186).


인간을 유전자에 따라 '불량'과 '정상'으로 나누는 발생은 19세기 후반 찰스 다윈의 사촌인 프랜시스 골턴이 창시한 "우생학"으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실제 각 국가의 정책에 영향을 미치기도 했는데 미국은 20세기 초 범죄자와 정신박약자들에게 강제 불임 조치를 시행하고, 일부 인종에 대해서는 이주를 제한하는 이민법이 제정되기도 했습니다. 우생학 열풍이 독일로 넘어가서는 혼전 건강 검사를 의무화하고 상대끼리 보건증을 교환하는 정책 운동을 낳아 인종학살까지 불러 일으키기도 했지요(p.188).


현재의 유전자 조작의 본질은 우생학의 본질과 다르지 않습니다.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좋은' 유전자와 '나쁜' 유전자를 구분하고, 유전자를 선택하는 것 자체가 우생학적입니다(p.188). 실제로 우리가 나쁘다고 생각하는 유전자가 반드시 나쁜 결과를 초래하는 것도 아닙니다. 겸상(낫 모양) 적혈구 유전자를 가진 사람은 악성 빈혈에 시달릴 수 있어도 덕분에 말라리아에 대한 저항성이 높다고 하죠. 이처럼 유전자의 기능은 복합적이기 때문에 단순히 좋은 유전자와 나쁜 유전자를 구분하는 것은 매우 편향적일 수 있습니다(p.189).


1997년 유네스코는 '인간의 게놈과 존엄성 선언'을 채택했어요. "인간의 유전정보를 근거로 차별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이죠. 그러나 학벌이나 출신 지역, 인종 차별로도 모자라 다양한 유전적 차별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유전병을 앓는 아이를 가진 부모가 직장 의료보험에 가입하지 못하고, 유전병에 걸린 부부는 입양 자격을 박탈당하기도 합니다. 15년 무사고 운전자임에도 유전병 진단 후 자동차 보험 가입이 거절당하기도 했답니다(p.191).


유전적 차별이 만연한 가운데 임신과 출산에서도 유전자 조작이 허용되면 부모들이 자식의 외모나 지능을 향상시키기 위한 유전자 조작을 시도하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입니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교육열이 과열된 사회에서는 그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 겁니다(p.192). 유전자 조작에 찬성하는 이들은 바로 이런 유전적 차별이 존재하기 때문에 주어진 운명을 극복하자는 차원에서 유전자 조작을 허용하자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이는 차별에 정면으로 맞서는 사회적 편견을 바꾸는 노력을 해야 할 일이지, 유전자 조작 기술을 허용하는 방식으로 해결할 문제는 아니며, 인간 사회에 더 큰 화를 불러올 수 있으므로, 유전자 조작 기술이 허용되어서는 안됩니다(p.193).



유전자 조작에 대한 나와 아들의 생각 : 인간의 고통에 대한 의미를 돌아보다


아들과 책을 읽으며 토론한 결과, 아들은 유전자 조작에 찬성했고, 저는 반대했습니다. 저는 내심 저 위에서 배아를 폐기하라는 결정 이후 "위대한 화가 빈센트 반 고흐를 잃었다"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아들이 생각이 바뀌었을 거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아니더라고요. 아들은 곰곰이 생각해 보더니 저에게 질문했습니다.


"엄마, 그런데 유전자 조작을 했더라면 굳이 이런 삶을 살지 않아도 됐던 거잖아요. 행복하게 살면서 그림도 그리고 더 좋은 거 아닐까요?"


아들의 질문에 저는 잠깐 머물렀어요. 그리고 생각해 봤습니다. 인간의 '고통'은 생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요. 아들과 토론을 하며 저는 내내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를 떠올렸어요. 그곳에는 결혼도, 가족도, 부모라는 개념조차 없습니다. 그런 단어는 이미 천박하고 음란한 단어가 된 시대죠. 모든 것이 유전자의 속성에 따라 계급화된 사회입니다. 자연적으로 태어난 아이들은 "야만인"이라 불리며 변방에서 원시적인 생활을 하게 됩니다. <멋진 신세계>를 이끌어가는 통제관(무스타파)과 "야만인"으로 태어난 한 인간(존)이 만나 논쟁하는 모습은 오늘의 토론과 묘하게 오버랩됩니다.


"하지만 난 불편한 편이 더 좋아요."

"우린 그렇지 않아요." 통제관이 말했다. "우린 편안하게 일하기를 더 좋아합니다."

"하지만 난 안락함을 원하지 않습니다.

나는 신을 원하고, 시를 원하고,

참된 위험을 원하고, 자유를 원하고,

그리고 선을 원합니다. 나는 죄악을 원합니다."

"사실상 당신은 불행해질 권리를 요구하는 셈이군요." 무스타마 몬드가 말했다.

"그렇다면 좋습니다." 야만인이 도전적으로 말했다.

"나는 불행해질 권리를 주장하겠어요."

"늙고 추악해지고 성 불능이 되는 권리와

매독과 암에 시달리는 권리와

먹을 것이 너무 없어서 고생하는 권리와

(虱)투성이가 되는 권리와

장티푸스를 앓을 권리와

온갖 종류의 형언할 수 없는 고통으로

괴로워할 권리는 물론이겠고요."

한참 동안 침묵이 흘렀다.

"나는 그런 것들을 모두 요구합니다."

마침내 야만인이 말했다.

무스타파 몬드가 머리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좋을 대로 해요." 그가 말했다.

<멋진 신세계> p.363



아들에게 '빈센트 반 고흐가 그린 그림들이 그 사람이 가진 고통들이 있었기에 나온 그림은 아니었을까? '라고 되물었지만 아들은 수긍하지 않는 눈치입니다. 아들을 이해 못 하는 바도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가 인간의 몫으로 주어진 고통을 거절하려 할 때마다 우리의 인간다움도 상실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그리고 여전히 고통은 너무나 아프기에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은 것도 인간의 당연한 마음이지요.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관점 vs 관점>
<멋진 신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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