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행복한 오선생 Oct 23. 2021

우리는 왜 친했을까

 오랜만에 만나도 어제 만난 것 같은 사람들.


 만나는 시간이 기다려지고, 대화에 주제가 어떤 내용이 나와도 웃으면서 말할 수 있는 사람들.


 부담 없이 술잔을 내려놓고, 다시 들어 올릴 수 있는 사람들.



 교사는 1년마다 부서가 바뀌는 약간 독특한 직업 중에 하나다. 아이들의 반이 1년마다 바뀌는 것과 비슷하게 선생님들도 부서가 바뀐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과 친해지는 시간이 짧다. 심지어 학교도 5년마다 한 번씩 옮기니까 같이 일했던 사람들과 재회하는 일이 거의 없다. 

  

 같은 부서의 모든 사람들이 몇 년 동안 같이 일을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런 불가능한 일을  경험을 했다. 작년까지 한 명도 바뀌지 않고 같은 담임 선생님들과 같은 학년 아이들이 3년 동안 같이 생활을 했다. 보통 이렇게 오래 모이면 불화가 일어날 법도 하지만 3년 동안 싸우 적도 없고 코로나 이전에는 해외도 같이 나갔다. 이런 사람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있지만 3년의 경험이 너무 즐거웠다가 기억에 남는다. 


 우리가 어떻게 친해질 수 있었을까. 


 오랜만에 사람들과 소갈비를 모여서 먹었다. 이빨을 드러내며 뼈를 바르는 모습을 보이면서 먹었다. 보통 친하지 않으면 먹기에는 부담스러운 음식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다른 부서, 다른 학교에서 근무하기 때문에 모두가 자주 모이지는 못 한다. 매번 모여야 한다고 말만 했지만 모이기 힘들었다. 사실 우리가 모일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회비인 것 같기도 하다. 

 코로나 단계가 완화되고 모두 백신을 맞고서 드디어 만났다. 회식 자리에서는 그동안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고, 힘든 일도 서로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물론 힘든 일을 말해도 서로 도와줄 수는 없지만 같이 욕은 해준다. 그래서 마음이 편한 건 가. 


 우리는 서로 왜 이렇게 친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우리만 친하다고 다른 사람들을 배척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다른 부서 사람들이 매일 자주 놀러 올 정도였다. 점심시간에는 교무실이 꽉 차기도 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성격이 좋았나라고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그것도 아니다. 다들 한 성질 머리 한다. 불공평한 일이 있거나, 안 좋은 일이 있으면 가만히 있지 않는 성격들이다. 그러면 뭘까.

 

 우리 부서에서 가장 머리가 좋은 선생님이 한 마디를 했다. 


 "우리는 신념이 없었지." 


 교사에게 신념이 없다. 어떻게 보면 불쾌할 수 있는 말이다. 신념과 교육철학을 가지고 생활하는 교사에게 신념이 없다니.  하지만 우리 반응은 참 달랐다. 


 "하하하. 맞아. 우리는 신념이 없지."


 "우리는 줏대가 없지." 


 한동안 크게 웃고 우리가 친해진 이유를 신념이 없는 교사들의 모임이라는 이상한 결론을 내렸다.

 


 6명이 50만 원어 치라는 엄청난 양의 저녁을 먹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아까 말을 다시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신념이 없는 교사일까 우리가. 학교 일과는 별도로 참석과 운영을 하고 있는 교사 수업 모임이나 다양한 교육 모임이 있다. 그 모임에서 이 말을 했다면  난리가 났을 것이다. 교사들 사이에서는 상식적인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서로 편하게 일을 했다고 했지만 아이들을 위해서 그동안 학교에서는 하지 않았던 일을 많이 했다. 아이들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게 해 주었고, 담임 선생님들 뿐만 아니라 교과로 들어오는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도와줄 수 있게 환경을 만들기도 했다. 아이들이 새로운 경험을 쌓기 위해 여러 일을 만들었고, 한 명이라도 입시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 그동안은 가지 않았던 여러 대학을 돌아다니는 일까지도 했다.

 

 신념이 없다고 말하기에는 학생 중심의 교육 신념으로 똘똘 뭉친 사람들. 하지만 우리에게 중요한 특징이 두 가지가 있었다. 그것 때문이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했다. 

 

 하나는 본인의 의견을 끝까지 주장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의견이 다르면 본인의 의견을 고민했다. 다른 의견이 좋으면 그 의견을 받아들였다. 너무 당연한 말 같지만 교사들 사이에서는 흔한 일은 아니다. 교사들 사이에서는 교육적 신념이라는 이유를 타인의 의견을 무시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틀렸다고 정의를 내린다. 그러다 보니 독설이 되는 경우가 많았고 서로 상처 받는 일도 생겼다. 그런 분들은 본인이 올바른 일을 했다고 생각한다. 우리 부서의 사람들은 그런 점이 적었던 것 같다. 


 두 번째는 소파에 많이 앉아 있었다는 점이다. 간식을 먹으려고 모였지만 자꾸 모이다 보니 서로 의견을 나누고 소통한 점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서로  의견을 조율할 수 있었다. 다른 의견을 들어보고 좋은 점을 공유해서 의견을 다듬었다. 한 사람이 의견을 냈지만 결굴에는 모두의 의견이 되었다. 



 가끔 신념이나 교육 철학이라는 이름으로 타인을 무시하는 경우가 많다. 학교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곳에서 일어나는 일이기도 하다. 요즘 들어 그게 과연 신념일까 아니고 신념이라는 이름의 아집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신념이 없지'라고 말했지만 우리는 서로 신념이 있지 않았을까. 타인의 의견을 들을 수 있는 엄청난 신념. 


 회식을 마치고 우리는 회비에 대해 서로 이야기했다. 회비를 많이 걷자고. 그래야 계속 만날 수 있다고. 하지만 회비가 없어서 우리는 만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문뜩 들었다.

 


이전 18화 밤하늘을 바라보는 이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