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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 오선생 Mar 28. 2020

평범함에 의미 부여하기

이탈리아에서 만나 석회암





영화 ‘글레디에이터’ 촬영지로 유명한 이탈리아라고 하기엔 너무 넓은 범위이지만 이탈리아 여행을 갔을 때 이야기다.     


 “여보 그걸 누가 훔쳐 가?”      


 아내는 가방 깊숙한 곳에 뭔가를 열심히 넣고 있는 모습을 보고 웃었다. 여행을 가면 여권을 제일 안전한 곳에 넣는 것처럼 이것을 가방에 숨기고 싶었다.      


 “누가 가방을 열고 가져가면 큰일이잖아.”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아내는 어이없다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름 중요하다고 샀는데.     


 “빨리 가자. 늦겠어.” 


 아내가 재촉하는 바람에 더 깊숙이 넣지 못하고 바티칸 미술관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이탈리아 여행에서 사람들이 가는 곳은 대부분 비슷하다. 콜로세움, 판테온, 피사의 사탑, 트레비 분수 등이다. 그럼 이곳의 공통점은 뭘까? 아내에게 물어봤더니 웃기지 말고 빨리 가자고 했다. 그래도 계속 답변을 해보라고 졸라 보니, 아내는 간단하게 이렇게 말했다.      


 “관광지.”      


 앗. 이것도 정답이지. 맞아. 모두 관광지야. 아내는 대답하고 시선을 스마트폰으로 향했다. 내 대답을 들으려고 하는 건 아닌 것 같다.

 사실 내가 원했던 대답은 석회암이었다. 과학에 관심 없는 아내에게는 너무 무리한 답을 원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탈리아는 세계에서 유명한 석회암 지대이다. 그다음 많은 것은 대리암이다. 석회암이 열에 의해 변성 작용을 받으면 대리암이 된다. 대리암을 건축물이나 조각에 쓸 때는 대리석이라는 용어로 바꿔서 부른다. 그래서 석회암도 석회석으로 부르기도 한다. 이탈리아에서 건축물이나 아름다운 조각을 만들 때 대리석을 많이 사용한다. 해지는 붉은 노을에 두 남녀가 떠오르는 소설 ‘냉정과 열정 사이’의 마지막 장면도 대리석으로 지어진 피렌체의 두오모 성당을 배경으로 한다. 

미켈란젤로 언덕에서 바라본 두오모 성당

이탈리아 여행을 갈 때 사람들이 조심해야 하는 것 중의 하나는 수돗물을 마시면 안 된다는 것이다. 지하수가 석회암 지대를 지나가서 수돗물에 석회가루가 많기 때문이다. 


 과학과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면 귀를 닫는 아내를 위해 석회암 이야기는 짧게 했다. 버스가 로마의 하얀 건물 사이를 지나 울창한 나무들이 있는 곳에 우리를 내려줬다. 우리는 바티칸에 도착했다. 


 입구에서 짐 검사를 하고 가이드의 안내를 받으며 바티칸 미술관을 가기 위해 성당을 지나갔다. 


 사람들이 가장 먼저 모여 있는 곳은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조각상이었다. 미켈란젤로가 20대에 처음 만든 예수와 마리아의 조각상이다. 아쉽게 지금은 방탄유리로 덮인 공간에 전시되어 있지만 그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사실 이는 신에게 바치는 조각상이다. 신이 보는 시각에서 아름답게 표현하려고 위에서 봐야 이 작품을 완전하게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정면에서 보기 때문에 이 아름다움을 느낄 수가 없다.


피에타 조각상

 “여보. 저 돌은 왜 이렇게 하얗고 매끄러워.”     

 

 오. 이럴 수가 우리 아내가 이런 과학적인 질문을 하다니. 신이 나서 이런저런 설명을 했다.  

    

 “사실 저 대리석은 불순물이 포함되지 않았어. 원래 대리석은 방해석이라는 광물이 이루어져서 만들어졌는데, 조각상으로 쓰이는 대부분 대리석은 순수한 방해석으로 되어 있어. 이 암석의 이름은 ‘카라라 대리암’이라고 해. 이탈리아에서 조각용으로 세계에 수출되고 있지.”      


 이 말을 했지만, 아내는 카메라를 들고 이미 미술관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역시. 다음에는 더 짧게 답을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스티나 성당에 들어갔을 때, 감탄했다. 천장에 그려진 그림들이 우리에게 다가오는 느낌이 받았다. 미켈란젤로가 생애 오랜 시간을 거쳐 그린 천지 창조가 있는 벽화들을 볼 수 있었다. 그 공간 안에 여러 사람이 모두 천장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200명 정도의 사람들이 있었지만 고요한 호수에 조용히 앉아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림이 참 생동감 있다. 어떻게 옛날에 그린 그림이 아직 까지 저렇게 멋있지? 어떻게 그렸는지 궁금하다.”    

  

 아내는 그림들을 사진에 못 찍은 게 아쉬워했다. 그 방은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었다.  

    

 생동감 넘치는 그림이라. 숙소에 들어와서 그림의 여운이 남아 이런저런 내용을 찾아봤다. 르네상스 시대의 그림인 천지 창조는 프레스코(fresco) 기법을 활용해서 그렸다. 화가들이 단단히 굳어지지 않은 석회석 벽면에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는 방법이다. 하지만 석회석과 화학반응을 일으키는 안료가 적기 때문에 그림을 그리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석회석은 단단해지고, 물감의 성분을 흡수한 그림은 선명한 색을 띠게 된다. 석회암의 성분인 방해석도 다양한 물질과 결합하여 화학반응을 일으킨다. 그래서 석회 성분이 많은 이탈리아의 지중해 바다도 에메랄드빛이 난다. 아내에게 기회가 되면 다음에 말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상 의자에 앉아 오전에 1유로에 샀던 물건을 가방에서 꺼냈다. 여행지 어디에나 있는 광물 가게에서 산 이탈리아 석회암이다. 난 항상 여행을 가면 그 지역을 대표하는 암석을 사서 오는 버릇이 있다. 아내는 싫어하지만. 

 사실 석회암이나 이 암석이 변성 작용을 받은 대리암은 이탈리아에 여기저기에 널려있다. 너무 흔한 암석인데 사람들이 어떻게 다루냐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지는 것 같다. 미켈란젤로는 조각상을 만드는 것이 대리석 안에 이미 있는 조각을 꺼내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의 삶도 그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냥 평범한 하루나 일인데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처럼. 오늘 주어진 하루에 나에게 주는 의미가 포함된 것처럼. 흔한 대리석이 아름다운 조각상이 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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