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제와 짧은 대화를 주고받고 스마트폰을 꺼냈다. 아내의 SNS에 글이 하나 추가되었다는 알림 표시가 있었다. 글에는 사진과 짧은 대화가 실려있었다. 사진은 바닷가 쪽으로 혼자 걸어가고 있는 내 뒷모습이었고, 짧은 대화 내용이 실려있었다.
아내의 SNS 글
짧은 글이지만 아내의 감정이 느껴졌다. 내가 많은 말을 했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어디서 찍었나 궁금해서 장소를 알 수 있는 해시 태그를 봤다. 여러 단어가 적혀 있었다. 수월봉이라는 단어를 보고 그제야 장소가 수월봉인지 알게 되었다.
SNS에 올라온 제주 바다 사진만 보면 장소가 어딘지 알 수가 없다. 제주 바다가 아름답지만, 장소의 특징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아마 수월봉 바닷가와 주변에 널려있는 현무암을 본 아내의 말에 내가 여러 가지 내용을 말했던 거 같다.
수월봉을 간 이유는 학교 자연 학술탐사 때문이었다. 현재 근무하고 있는 학교는 5월에 자연 학술탐사라는 제목으로 학생들과 수학여행을 간다. 제주도에 가서 다양한 지역을 보고 설명을 듣고 연구하는 활동을 한다. 그중에 한 장소가 수월봉이다.
혼자 가기 그래서 아내에게 가자고 했다. 하지만 지질 답사라고 하면 아내는 반드시 안 간다고 할 게 뻔하다. 어떻게 말할까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봤다. 사진을 좋아하는 아내를 꼬시기 위해서는 사진이 잘 나올 장소 이야기를 해야 한다. 결국 제주도에 유채꽃을 보러 가자고 했다. 물론 여행 중에 유채꽃은 드라이브하면서 실컷 봤다.
3월 유채꽃
수월봉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지질공원 중에 하나다. 그만큼 보존 가치가 크고 아름다운 곳이다. 물론 이 아름다움은 지구과학을 전공한 사람의 관점에서다. 아내는 아직도 수월봉이 왜 아름다운지 모른다. 그러다 보니 수월봉에 가자고 아내를 유혹하는 길이 쉽지 않았다. 수월봉 가는 길에 있는 오설록 녹차를 먹고 나서야 아내를 수월봉으로 유혹할 수 있었다.
수월봉
제주의 수월봉에 가는 사람은 많지 않다. 수월봉이라는 이름은 많이 들었지만 막상 가본 사람은 올레길의 한 곳으로 알고 있다. 그러다 보니 제주도에 가서 수월봉을 가는 사람을 많이 못 봤다.
제주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한라산이면 옛날 사람이다. 요즘에는 바다와 오름, 그리고 먹방이다. 특히 많은 SNS 사진에는 바다가 가장 많다. 과학에 1도 관심이 없는 아내도 제주 바다를 보면 나에게 질문을 한다.
“제주 바다색은 왜 이렇게 예뻐?”
“그건 석회질 성분이 바닷물과 만나서 에메랄드 빛이 되었기 때문이야. 산호나 조개가 석회질 성분으로 되어 있어서 산호섬에 가도 에메랄드 빛이지. 몰디브 같은 섬의 바다도 제주도와 같아.”
사실 그다음부터 아내는 말이 없다. 아내는 해외는 해외고 제주는 제주라고 했다. 왜 이 말을 했을까. 내 설명은 역시 완벽하다. 근데 친절하게 설명을 해줬는데 제주도를 갈 때마다 같은 걸 물어본다. 내가 잘 못 설명한 건지 모르겠다.
사람들은 수월봉에 가면 바다를 찍는다. 바다만 찍으면 사진이 허전하겠지만 수월봉 바다는 차귀도라는 섬이 있어서 찍고 보면 나름 괜찮은 장면이 나온다. 일몰을 찍으면 더 멋진 사진이 나온다. 성산 일출봉 주변 광치기 해변이 일출을 찍는 장소로 유명해서 사람들이 많이 가지만, 일몰을 찍는 수월봉 바다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물론 난 수월봉의 가장 아름다운 응회암층과 층마다 박혀 있는 암석이라고 생각한다.
수월봉은 응회암층으로 되어 있다. 응회암은 화산재가 다져지고 굳어져서 형성되었다. 화산재가 굳어 지층이 될 정도면, 화산 폭발이 가까운 장소에 이뤄져야 한다. 그리고 화산재가 쌓여서 큰 지역이 되려면 짧은 시간에 굳어져야 한다.
수월봉의 응회암층
그럼 화산 활동이 일어난 분화구는 어디에 있을까? 학생들에게 가끔 질문하면 분화구가 한라산에 있다고 한다. 그럼 한라산 주변에도 수월봉 같은 지형이 있어야겠다고 물어보면 답이 없다. 어디에 있을까 주변을 둘러봐도 분화구는 보이지 않는다. 왜 그러겠냐고 고민을 해봐도 답은 안 나온다. 답은 분화구가 우리 눈에 안 보이기 때문이다. 화산 분화구는 수월봉 앞바다 안에 있다.
출처 : 제주도 세계 지질공원
과거에 수월봉 주변의 분화구에서 현무암질 마그마가 올라오다가 물과 만나서 격렬하게 폭발을 했다고 한다. 이를 전문적인 용어로 수성화산 분출이라고 한다. 마그마가 물과 만나면 폭발이 짧은 시간에 이루어진다. 이렇게 짧은 시간에 폭발하다 보니까 엄청 많은 화산재가 분화구 주위로 날아갔고, 많은 화산재가 바로 가라앉아 평행하게 쌓였다. 이렇게 생긴 곳이 수월봉의 지층이다.
이 지층을 자세히 관찰하면 특이한 부분이 있다. 중간마다 큰 암석이 박혀 있다. 학생들과 자연 학술탐사를 하면 왜 이런 암석이 있니?라고 물어볼 때가 많다. 그때마다 원래 있었다. 날아왔다. 화산재가 단단하게 뭉쳤다는 여러 답변이 나온다. 물론 우리 아내는 한 번도 이 암석의 정체를 궁금해하지 않았다. 이 암석의 정체는 화산 폭발할 때 날아온 거대한 암석 덩어리이다. 암석에 의해서 생긴 구조를 탄낭구조라고 하는데, 암석들이 박혀서 평행하게 쌓인 지층이 휜 모양을 말한다. 지구과학 선생님과 같이 이곳에 오거나 혼자 왔을 때 이 구조를 사진으로 찍는다. 찍은 사진을 아내에게 항상 보냈다. 그럼 아내는 꼭 이렇게 말한다.
“돌 사진 보내는 사람은 네가 처음이야.”
아내에게 보낸 사진
하지만 이 곳이 나의 수월봉 사진 포인트이다. 이 지역을 감탄하는 내 모습을 보면서 아내는 웃기고 있다는 말을 하지만 이곳은 참 아름답다.
탄낭 구조를 이용하면 학생들과 여러 질문과 답을 말할 수 있다. 두 가지 정도를 서로 이야기할 수 있다. 응회암층 사이에 있는 암석의 크기가 큰 지역은 분화구에서 가까운 곳, 암석의 크기가 작은 지역은 분화구에서 먼 곳이다. 이 암석이 어떻게 박혔는지를 관찰해서 분화구의 정확한 위치를 알아볼 수도 있다. 수월봉은 우리나라의 유일한 화산 연구 장소이기도 하다.
하지만 해마다 가면, 수월봉의 지형이 조금씩 변한다. 탄낭 구조에 박혀 있는 암석들이 떨어져 있다. 오랜 세월 동안 풍화와 침식을 당하면서 암석의 크기가 작아져 땅으로 떨어진 것이다. 떨어져 나간 곳에는 구멍이 생긴다. 근데 이 구멍이 해마다 점점 많아지고 있다. 유네스코라고 지정된 이 장소가 조금씩 변하는데 안타깝고 많은 사람이 봤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SNS에 아내의 풍화와 침식이라는 말을 곰곰이 생각하게 되었다. 암석이 풍화와 침식을 받으면 둥글어져 층 사이에서 떨어진 것이 생각났다. 수월봉에 박혀 있던 암석처럼 인생을 살다가 부끄럽거나 싫은 기억이 내 마음에 박혀 있을지 모른다. 대학을 못 갔던 기억, 시험에 떨어졌던 기억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암석이 풍화와 침식을 받으면 둥글어지는 것처럼 이 기억들도 둥글어져 내 마음에서 떨어져 나갈 거라고 생각이 든다. 수월봉에 탄낭 구조에서 아래에 암석이 떨어져 나간 빈 곳이 있다. 이 곳에 가끔 예쁜 이름 모를 꽃이 피어있다. 이 꽃처럼 우리 마음에도 꽃이 필 거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