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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호박 Oct 22. 2024

상을 치우며 생각한 것들

여름의 편의점은 지저분했다.


대학 시절 카페에서, 프랜차이즈 음식점에서, 학교 조교실에서도 아르바이트를 해 봤지만 가장 재미없었던 것은 편의점 일이다. 편의점에서 홀로 카운터에서 일할 때는 시간이 그렇게 느리게 갈 수가 없었다. 동네에서 편의점 일을 하다 보면 늘 비슷한 시간에 똑같은 사람을 만나고, 똑같은 음료나 담배를 사 가는 사람들만 만나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의 대학교 첫 여름방학, 처음 하게 된 남의 돈 벌기 프로젝트의 목표가 있었으니, 바로 다음 학기에 더 신나게 놀 수 있는 돈을 모아두는 것이었다. 


남의 돈 버는 건 쉽지 않았다. 처음에 가장 어려웠던 건 담배 이름과 위치 외우기였다. 손님이 들어와 "말보루 레드요."라고 말하면 내 눈동자는 담배 진열대의 왼쪽 상단부터 오른쪽 하단까지 움직이기 바빴다. 이런 일이 익숙한 손님들은 처음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금방 눈치채고 자신이 원하는 담배를 향해 손가락을 뻗기도 했다. 내가 일하던 시간은 저녁 다섯 시부터 밤 열한 시까지였는데, 그 시간 동안 분리수거통을 확인하여 비우고, 유통기한이 막 지난 음식들을 체크하여 집에 챙겨 가기도 했다. 


진상이 많다는 소문이 자자한 편의점 일을 첫 아르바이트로 하게 되어 두려웠지만, 가장 힘든 부분은 예상 밖이었다. 10년 전 여름은, 지금의 끈적한 여름과 달리 밤공기가 사람들에게 생기를 주던 때였다. 그래서인지 밤이 오면 편의점 앞 테이블로 사람들이 모였다. 산책하러 나왔다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아이들과 엄마, 금요일 저녁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 명태 안주와 소주를 까는 사람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다. 손님들이 소주를 까기 시작하면 언제 모임이 끝날지 모르는 두려움에 겁이 나기도 한다. 거기에 손님이 취한 상태로 소주를 더 사러 들어올 때면 문에 걸려 있는 종소리에 놀란 적도 있다.


그런 술자리는 보통 열한 시 이후까지 이어진다. 내 다음 파트타이머는 종종 지각을 하거나(야간 근무를 위해 밤잠을 자다가 못 일어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미리 양해를 구하고 나와 시간을 바꾸어 근무를 하기도 했다. 그럴 때면 늘 새벽 두 시가 고비다. 새벽 두 시가 되면 각자의 여름밤을 충분히 즐긴 사람들이 슬슬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떠나는 뒷모습이 눈에 보이지 않을 때야 뒷정리를 하기 위해 문을 연다. 먹다 남은 음료, 술, 담배 비닐봉지, 안주. 그중에서도 최악인 건 남은 소스다. 설거지도 할 수 없는 환경에서 남겨진 소스를 버리는 일이란 참 찝찝한 것이었다.


이런 일을 제외하고는 편의점 알바는 나름 꿀 아르바이트였다. 유통기한이 1분 지난 삼각김밥도 까먹고, 1+1 행사 상품이면 덤으로 받은 음료수 한 병을 나에게 주고 가는 손님들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동네에 사는 사람들의 얼굴이 익숙해졌고, 그만큼 편의점 일도 더 쉬워졌다. 상을 치우는 일을 제외하면 말이다. 손님의 얼굴만 보고 어떤 담배를 사러 왔는지 외워졌을 때쯤 나의 대학 시절 첫 여름방학은 끝이 났다.


그리고 가을이 왔다. 여느 때처럼 학교에 갔다. 방학 동안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번 돈으로 친구들과 더 맛있는 음식을 먹었으며, 사고 싶은 옷도 여유 있게 샀다. 중간고사가 끝난 뒤 하늘이 아주 높아졌을 때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꽤 오랜 시간 병원에 계셨기 때문에 놀라기보다는 얼떨떨했다. 죽음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난 뒤 처음으로 가 보는 장례식이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조문객도 아니었다. 장례식장에 도착하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엄마를 어떻게 위로해야 하는지, 무엇을 도와드려야 하는지 걱정이 앞섰다.


1시간이 걸려 도착한 장례식장은 생각보다 고요했다. 오후 두 시였다. 저녁이 되자 오랜만에 보는 친척들, 할아버지가 오래 살았던 동네 사람들, 일을 함께하셨던 분들이 오갔다. 그분들은 할아버지의 영정 사진 앞에서 애도를 표했고, 식사를 하기 위해 앉은 테이블에서 우리 할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다른 테이블에서는 엄마와 이모들의 이야기가 오갔다. 할아버지가 떠나고 혼자 남은 할머니는 어떻게 지내야 좋을지, 집은 더 작은 곳으로 이사하는 게 나을지, 부조금은 할머니의 병원비에 쓰는 게 가장 현명할지. 슬퍼하기도 부족한 시간이었지만 생각보다 더 고민해야 할 것들이 많았다.


그런 대화 속에서 나는 바쁘게 움직였다. 손님이 오면 상을 차렸고, 다른 음식이나 술이 더 필요하다고 하면 가져다 드렸다. 밤이 지나면 손님들이 모두 돌아갔다. 그리고 시계를 봤다. 새벽 두 시였다. 장례식에서 상을 차리다가 알게 된 것이 있다. 상 위에 비닐을 여러 겹 덮어둔다는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기 때문에 상을 일일이 치우는 것이 번거로웠다. 사람들이 가고 나면 비닐로 종이 접시와 플라스틱 수저를 한꺼번에 싸서 쓰레기통에 버렸다. 나는 더러워진 비닐을 벗겨내다가 생각했다. 아르바이트할 때도 이렇게 쉽고 편하게 치우면 좋을 텐데. 왜 장례식장에서만 이렇게 하는 걸까? 그런 생각들이었다.


그러자 할아버지를 떠나보내는 일들이 떠올랐다. 온전히 슬퍼하지 못하고 남겨진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민하는 일. 접시에 남겨진 소스처럼 깨끗하게 잊혀지지 못한 채 할아버지를 보내야 하는 시간과 앞으로 할머니가, 그리고 우리가, 할아버지가 없는 세상에서 살아가야 하는 날들. 모두 쉽지 않은 일뿐이었다. 사람들이 모두 돌아가서야 나는 밥을 한 술 크게 떴다. 숟가락에 떠진 밥 위에 엄마가 편육을 올려놓으며 꼭꼭 씹어 먹으라고 말했다. 한동안 엄마는 내 옆에서 반찬을 올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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