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아지

by 단호박

강아지. '강아지'라는 단어를 처음 만든 사람은 누구일까? 강아지는 '송아지'처럼, 새끼를 뜻하는 '앙아지'와 '개'가 합쳐져 '개앙아지'가 되었고, 이후에 '강아지'로 굳어졌다고 한다. 단어조차도 귀여운 강아지는 나에게 무섭고도 사랑스러운 존재였다. 내가 처음 가까이 만나게 된 강아지는 큰아빠가 키우던 다롱이였다. 다롱이는 시츄였는데, 작은 오빠가 비가 내리던 날 집에 가다가 우연히 버려진 것을 알게 되어 데려왔다고 한다. 비 오는 날 다시 데리고 나가서 두고 오라고 할 수가 없어 그냥 그렇게 가족이 되었다고.


초등학교 때 만난 다롱이는 그 당시 다른 강아지처럼 강하게 키워진 아이였다. 사람 음식을 식탁 옆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먹고 어떤 날에는 어른들이 마시려고 타 놓은 믹스커피를 허겁지겁 마시기도 했다. 요즘 반려동물을 그렇게 먹인다고 생각하면 아찔한 일이다. 그래서 다롱이는 본인을 정말 사람이라고 생각했을까? 집에서 가장 어렸던 나와 동생을 무시했다. 오빠들 품에는 잘 안겨 있던 다롱이는 우리가 쓰다듬으려고 다가가면 바로 으르렁거리고, 우리집에 놀러 왔을 때는 내 방에만 똥을 싸는 등 나를 본인보다 어리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에게 강아지는 한없이 귀엽고 다가가고 싶은 생명체였지만, 다롱이를 통해 알게 된 강아지는 그만큼 어렵고 위협적인 존재가 되었다.


그렇게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강아지를 한 번도 쓰다듬어보지 못했다. 지나가는 강아지와 자연스럽게 인사하고 털을 주물주물 만지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는 학생들이 사용하는 건물에서 나와 언덕을 조금 올라가야 매점에 갈 수 있었다. 그래서 쉬는 시간을 이용해 달려가서 간식을 사오곤 했는데, 어느 날은 매점 아주머니가 갈색 푸들을 한 마리 데리고 계셨다. 반 친구들과 우르르 몰려갔던 우리는 갑자기 무슨 강아지냐고 여쭤봤는데, 앞에서 어슬렁어슬렁 다니고 있길래 우선 데리고 있다고 했다. 함께 간 친구는 그 강아지를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한참을 바라봤다. 강아지를 너무 키우고 싶었다고, 주인을 찾을 때까지라도 집에 데려가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갈색 푸들은 그 친구의 품에 안겨 우리반으로 돌아왔다.


이름을 뭐라고 지을까? 마흔 명 가까이되는 여자 아이들이 모여 갈색 푸들을 바라봤다. 푸들은 낯을 가리지도 않고 그 친구의 품에 안겨 헥헥거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수업시간에 배운 '매점매석'이라는 용어가 떠올랐다. 한 친구가 말했다. "매점에서 만났으니까 매점매석이 어떨까?" 옆에 있던 친구가 웃으며 말했다. "네 글자는 너무 기니까 매점에서 만난 강아지 '매석'이로 하자." 그렇게 그날 매점에서 처음 만난 갈색 푸들은, 매석이가 되어 주말을 보내러 친구 집으로 함께 하교했다. 종례 시간에 들어 온 털보 담임 선생님은 너희는 너무 특이해서 답이 없다며 허탈한 웃음을 지으실 뿐이었다.


우리는 그날 하교하면서 매석이의 주인을 찾는 전단지를 학교 근처 곳곳에 붙였다. 각자 다른 동네에 사는 아이들이 모였기 때문에 버스정류장도 달랐고, 각자 정류장 가는 길에 있는 전봇대마다 전단지를 붙이기로 했다. 나는 운이 좋게도 매석이를 데려가는 친구와 집이 같은 방향이었다. 그래서 친구와 매석이와 함께 갔다. 낯을 가리지 않고 사람을 좋아하는 매석이 덕분에 나는 그날 처음으로 강아지를 만졌다. 그리고 결심했다. 나는 꼭 강아지를 키워야 되겠다고. 그날부터 나는 아빠한테 종종 강아지를 키우자고 이야기했고, 할머니는 집에서 개 냄새가 날 거라며 굳건히 반대했다. 그리고 다가온 주말, 친구는 매석이의 건강검진을 위해 엄마와 동물병원에 갔다고 한다. 길을 잃은 강아지를 데려왔다고 했더니 의사 선생님은 강아지의 몸 어딘가에 있는 바코드를 찍었다고 한다. 그 강아지의 이름은 용이었고, 의사 선생님이 용이를 부르니 아이가 신나서 펄쩍펄쩍 뛰었다고 한다. 그렇게 며칠 간 매석이로 불렸던 갈색 푸들은 기쁜 마음으로 주인에게로 돌아갔다.


20살 첫 교회 수련회를 다녀오던 날, 우리집에도 푸들이 왔다. 하얀색 푸들이었다. 오랜 시간 강아지를 원하던 나를 위해 아빠가 데려 온 강아지였다. 내가 집으로 들어가자 강아지는 '너는 누구냐'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다가가서 와락 안고 싶었지만 왠지 어색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슬금슬금 다가가 강아지에게 인사했다. 안녕, 민콩아. 너 이름은 이제 김민콩이야. 민콩이의 이름은 강아지의 친오빠 이름인 '콩'이와 내 동생과 내 이름의 '민'을 합쳐서 만든 이름이다. 이제는 우리의 가족이지만, 민콩이의 피가 섞인 오빠인 콩이를 기억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지었다.


그날 나는 수련회에 다녀오느라 보지 못한 드라마 재방송을 몰아보고 있었다. 거실에 불을 끄고 앉아 혼자 집중하고 있는데, 민콩이가 나에게 조심히 다가왔다. 그리고 나에게 엉덩이를 보이며 앉아 졸고 있었다. 나는 민콩이를 조심히 들어 내 무릎 위로 올려두었다. 따뜻한 몸, 부드러운 털. 그 느낌이 내가 민콩이를 처음 만난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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