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채울 일

by 단호박

어느 경력직 이직이 그렇듯, 나도 지인의 소개를 통해 첫 이직을 준비하게 되었다. 첫 회사는 그 당시 쌓여있는 원고를 출간하는 것보다는 새로운 원고를 위해 기획하는 단계에 머물러 있었다. 그래서인지 국내서보다는 외서를 들여와 빠르게 출간하고 매출을 올리기에 급급했다. 국내서의 경우 외서보다 마케터가 해야 할 일이 많았다. 우선 국내에 있는 작가님과 바로 소통이 가능하기 때문에 도판을 보다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경우가 많았고, 작가님이 직접 마케팅에 참여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았다. 국내서 마케팅을 진행하며 더 다양한 시도를 하는 출판 업계를 보면서 '나도 하고 싶다'라는 마음이 컸다. 물론 첫 회사에서 좀 더 버티며 때를 기다리는 방법도 있었지만, 이미 그 시스템이 구축된 곳에서 무언가 시작하고 싶은 마음이 컸달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선택이 옳았다. 왜냐하면 두 번째 회사에서는 국내서가 아닌 외서로도 더 다양한 마케팅을 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인문학 위주로 출간하던 첫 번째 회사와 달리 두 번째 회사에서는 예술 책 위주로 마케팅을 하게 되었고 영화, 미술, 음악 전문가를 섭외해 관련한 책들의 강연을 준비하는 역할을 주로 했다. '브랜딩'이라는 영역 또한 이곳에서 더 깊이 배웠다. 역사가 깊은 회사였기에 브랜드가 가진 컬러와 서체, 그리고 이미지를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중요했다.


어쩌면 사람에 대해서도 많이 배웠을지도 모른다. 대표님은 어릴 적부터 영화와 음악을 무척이나 좋아하셔서 조예가 깊고, 자연스럽게도 주변 사람들도 그 영역에 속해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기존의 나였으면 만나지 않았을 문화예술 영역의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자기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일로 삼는 사람. 때때로 돈이 되지 않더라도 그걸 끝까지 밀고 나가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멋져 보였다. 그럴수록 내가 좋아하는 것이 뭔지 나를 자꾸만 들여다 보게 되었다.


다행스럽게도 두 번째 회사에서 많은 동료와 선배들이 나에게 '일을 잘 한다'라는 말을 자주 해 주셨다. 눈치가 빠르고, 책과 어울리는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면을 좋게 봐 주셨다. 어떻게 보면 마케터가 당연히 잘 해야 할 영역인데, 그걸 강점으로 봐 주는 사람들이 주변이 있다는 건 복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두 번째 회사에서 머문지 4년이 되었을 때쯤, 내가 하고 싶은 것과 회사에서 해야 하는 일 사이에 서서 고민하게 되었다. 내가 이 업무를 진짜 하고 싶은 것일까, 아니면 이것을 해 냈을 때 스스로 느끼는 성취감이나 사람들의 칭찬을 기뻐하는 것일까. 스스로 느끼는 성취감 영역이 컸다면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어쩌면 사람들이 '잘한다'고 하니까 이 일을 좋다고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까지 생각이 커지는 데는 일을 하면서 만난 '본인의 일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표정과 말이 내 마음에 너무 크게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었다.


이대로 머무를 수는 없다.

나는 내가 이 일을 진정으로 오래 할 수 있는지 알기 위해서, 이곳을 떠나야만 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지난 나의 삶을 돌아봤다. 빠른 졸업을 위해서 별 생각 없이 대학교에 갔고, 휴학했을 땐 뒤쳐질까 두려워 하고 싶었던 제주도 워킹홀리데이를 포기하고 취업에 필요한 자격증 공부를 했다. 졸업을 앞두고 혹시나 취업이 늦어질까 걱정하며 졸업하기도 전에 첫 회사에 들어갔다. 어린 시절 불안함 속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것은 확실히 알고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을 위해 내가 포기한 것이 있나? 없었다. 남편은 좋아서 회사 다니는 사람은 없지 않냐며 조금 더 고민해보자고 말했다가, 이내 결혼을 하지 않았더라면 내가 큰 고민 없이 퇴사를 선택했을 거라고 마음이 가는대로 가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직장 생활 8년차가 되던 해에, 퇴사를 결정했다. 물론 퇴사하는 과정은 마냥 쉽지는 않았다. 두 번째 회사에서도 팀장이 없는 '대리' 상태로 일을 했기 때문에 애매한 팀장 역할을 해 내며 업무를 했고, 그렇기 때문에 마케팅 관련한 자료와 프로세스들을 정확히 파악한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퇴사 발언을 부장님은 당연히 반기지 않았고, 나는 면접을 볼 때보다 더 또랑또랑하게 나의 미래를 이야기했다. 이직이 아니라 퇴사를 하는 것이라고. 그렇게 나는 그 누구도 (부모님마저) 반기지 않는 퇴사를 하게 되었다. 또래보다 취업을 빨리 해서 그런지, 덕분에 30대 초반까지 완전한 독립까지 해 낸 몸이 되었다. 앞으로 살아야 할 시간은 약 50-60년. 나는 그 시간을 채울, 나의 일들을 찾아야만 했다.


첫 번째 회사를 친정집이라고 한다면 두 번째 회사는 자연스럽게 '시가'가 되는 걸까? 요즘이야 물론 결혼을 하고 나서도 원가족(엄마, 아빠, 형제)와의 관계와 유대감이 높지만 옛날에는 그러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 엄마도 마찬가지로 그 시절을 보내 온 사람이고, 엄마는 시집을 와서 배운 것들이 더 많다고 했다. 바느질을 전혀 못 했던 엄마는 손재주가 좋은 할머니(엄마에게는 시어머니)에게 바느질을 배웠고, 칼질도 배웠다고 한다. 또 내가 좋아하는 엄마의 요리들도 모두 할머니에게 배운 것이라고. 옛말에 따르면 어쩌면 두 번째 회사는 시가가 맞을지도 모르겠다. 이곳에서 나는 더 넓은 세상을, 더 다양한 영역의 문화를 흡수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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