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집

by 단호박

첫 출근하던 날을 기억한다. 그토록 꿈꾸던 출판사, 그리고 파주출판단지. 학교를 다닐 때 출판사는 고학력자(말 그대로 서울대-연세대-고려대) 위주로 채용한다는 소문을 들었다. 고등학생 때 책상에 오래는 앉아 있었지만 다이어리를 꾸미고 책을 읽고 논술 수업만 들으며 공부하던 나는 그 말을 듣고 취업을 준비하는 동안 꽤나 위축되었었다. 그래서인지 합격하고 나서 더 들뜨고 누구보다 열심히 해야겠다는 의지로 가득찬 신입사원이 되었다.


대표가 편집과 영업을 하고 디자인을 외주로 맡기는 1인 출판사부터 사업부가 나뉘어 있는 대형 출판사까지, 출판사의 종류는 정말 다양했지만 대부분이 10인 이하의 작은 출판사다. 나 또한 처음 입사한 회사는 (입사 당시) 5인 정도의 작은 회사였다. 면접을 봤을 때를 생생하게 기억한다. 면접 제의를 전화로 받던 날, 팀장님이라고 하던 분은 평일이 아닌 토요일에 전화를 주셨다. 처음엔 토요일에 전화를 주신 것이 의아했지만, (지금이라면 면접도 가지 않았을 테지만) 팀장 직급 정도 되면 주말에 채용 전화를 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 당시 대학 마지막 학기를 다니고 있던 나는 교수님께 말씀을 드리고 면접에 갔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동기 친구들이 내가 면접을 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친구들은 나에게 면접을 잘 보라는 메시지를 남겨주었고, 나는 "잘 하고 올게!"하고 회사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1시간 30분이 순식간에 흘렀다.

이전에도 경험 삼아 교재 출판사 면접을 본 적이 있는데, 그때는 20분만에 면접이 끝났다. 그 회사는 최종 합격을 하지 못했는데, 왠지 면접을 보는 동안 이렇게까지 길게 면접을 본다면 나를 채용할 의향이 있는 것일 거라고 생각했다. 사소한 질문부터 어떤 공부를 좋아했는지, 평소의 관심사가 무엇인지 등 굉장히 깊이있는 사적인 대화를 나눈 후 회사 밖으로 나왔는데, 친구들에게 수많은 연락이 와 있었다. 이름을 알면 알 정도로 큰 회사가 아니었기에, 면접이 길게 진행되는 동안 혹시 회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나 걱정을 했던 거다. 첫 회사는 최종 합격 후 3년을 다녔는데, 알고 보니 팀장은 사장님의 아들이어서 주말에도 자연스럽게 일을 했던 거고 원래 워낙 대화를 길게 하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나는 5인 구성의 첫 회사에서 유일한 '1인 마케터'가 되었다. 80년대에 아버지(사장님)가 했던 출판 사업을 아들(팀장)이 이어 받아 새롭게 키워나갈 종합출판사의 첫 마케터가 된 것이다. 알려지지 않은 출판사였기 때문에 지원자도 많지 않을 것이고, 팀장 또한 연차가 아주 높지는 않았기 때문에 신입을 채용해 처음부터 차근차근 해 나가고 싶었던 것 같다. 첫 출근 날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을 개설하고, 무경력에 무자본(콘텐츠)으로 시작된 마케터 인생. 지금 생각해 보면 서점 영업부터 콘텐츠 제작, 이후에는 오디오북 관리와 홈페이지 제작까지. 그 중 내가 가장 좋아하던 일은 마케팅을 열심히 하는 출판사라면 모두 다 손을 떼고 있던 '블로그'였다. 초등학생 때부터 다이어리꾸미기 카페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부산에 사는 언니와 펜팔도 하며, 내 블로그에 다이어리를 소개했었다. 그리고 20살이 되어 블로그에서 매주, 매달 일기를 썼고 그곳에서 만난 (아직까지도 연락을 하는) 운명적인 친구들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블로그라는 플랫폼은 내가 평생 사랑해왔고, 영상이 차고 넘치는 세상에 내가 잘하고 싶은 플랫폼 중 하나다. 회사에서도 네이버의 영향력을 무시하지 않고 상위에 노출되는 콘텐츠를 원하셔서 매일 책과 관련이 있으면서도 검색 유입이 많은 키워드를 조사하고, 상위 노출이 되도록 콘텐츠를 구성했다. 하루이틀 지나 그 키워드가 상위로 얼마나 올라왔고, 유입은 얼마나 되었는 지 확인하고 뿌듯해 하는 것이 업무의 즐거움이었달까. 많은 일을 병행하는 '잡일 마케터'로 일했지만 다행히 회사가 생각보다 빠르고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은 덕에 2년 후에 후임이 생겼고, 1년 동안은 알콩달콩 재미있게 일했다.


첫 회사를 다닐 때는 모든 것이 처음이었기 때문에 '내가 하고 싶은 것'보다 '회사가 이 순간 꼭 해야 하는 것'에 집중했던 것 같다. 온라인 콘텐츠 기반을 쌓아가는 과정이어서 무엇보다 차곡차곡 '콘텐츠'와 '데이터'를 쌓는 일이 중요했다. 그래도 즐거웠다. 하기 싫은 과목을 꾸역꾸역 들여다보지 않아도 된다는 것, 내가 만든 콘텐츠가 어떠한 반응과 결과를 도출해 내는 일, 점심시간 식사를 빨리 끝내고 동료들과 출판단지를 걷던 시간들. 그리고 무엇보다 좋아하고 재밌게 일하고 있는데 월급이 나온다는 것. 첫 회사의 행복은 그런 마음에서 오는 것 같다. 그래서 그런가 첫 회사는 '친정집'이라고 비유한다는 걸 두 번째 회사에 입사해서야 알게 되었다.


물론 끔찍하게 싫은 일도 있었다. 작은 회사라고 서점에서 무시 받는 일, 개인적으로는 하고 싶지 않은 부탁을 누군가에게 해야 하는 일, 그리고 때때로 이유 없이 오해받는 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번째 회사도 출판사를 선택할 수 있었던 건, 어린 시절 나를 만들어 준 문장들 때문이었다. 인생 전체를 바라보면 너무 짧은 10년, 그리고 주변 환경을 고려하지 않고 남는 시간마다 좋아하는 것들을 끄적일 수 있었던 10대. 그 10년이라는 시간이 나의 세계를 평생 만들어나갈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월, 수, 금, 일 연재
이전 17화앙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