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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acegraphy Apr 05. 2022

심심한게 어때서~ 심심하려고 발리에 왔다

심심함의 미학

"나 심심해~". 10살짜리 우리 조카가 놀아 달라고 응석부리며 하는 볼멘소리다. 초딩도 심심하면 안된다는 생각이 벌써 생긴 것이다. 나도 한국에선 누구보다 바쁘게 살았다. 심심한걸 못견뎠고, 심심할틈을 만들지 않았다.


발리에 온 후 관광은 물론 요가, 서핑, 골프, 달리기, 무에타이, 테니스까지 해볼건 다하고 있지만 발리살이의 방점은 '휴식'에 찍었다.

요가나 서핑, 무에타이는 완벽한 휴식은 아니다. 새로운 걸 배우며 나를 단련하는 수련이다. 그래서 더 '쉬는 시간'을 만들려고 한다. 힘든 일을 하고 난 뒤의 휴식이 더 달콤하다.


심심함에 대한 거부감을 내려놓으려고 한다.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하루가 길다. 10시가 되기 전 요가든 달리기든 서핑이든 할 일을 마친다. 이미 하루의 숙제를 어느 정도 마친 느낌이 든다.


그 다음은 '심심한 시간'이다. 굳이 뭘 하려고 하지 않는다. 숙소에서 햇살 가득한 하늘과 구름을 바라본다. 바람을 느끼고 수영장에 몸을 담근다.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고, 심심하지만 충분히 즐길만한 심심함이다.


정말 심심할 때 오히려 난 행복을 느낀다. 이러려고 발리에 왔지. 아무것도 안하고 아무생각도 안하는 심심함을 만끽하기 위해서 말이다.

요가할 때도 심심한 시간이 있다. 명상 시간이다. 명상 중 몸은 사실상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처음엔 심심해서 이걸 왜 하나 싶었지만, 어떻게 보면 요가에서 가장 효과가 좋은 수련이 명상일지도 모르겠다.


정신을 집중하면서 심심하지 않은 시간에 살아갈 동력을 얻는다. 내가 왜 존재하는지 되새겨보고, 어떤 일을 해야 할지 마음을 다잡는다. 존재 자체에 감사함을 느끼는 법도 배운다. 심심하지만 꼭 필요한 시간이다.


요즘 인천공항에는 해외를 나가려는 사람들로 발디딜틈이 없다고 한다. 한국인의 해외여행은 짧게는 2박3일일, 길어봤자 일주일 정도다. 그 짧은 시간을 빡빡한 일정으로 꽉꽉 채워넣는게 보통 해외여행이다. 심심할 틈이 없는 설계다. 한국사람들은 좀 심심할 필요가 있다.


심심함의 어원은 알려져 있지 않지만 아마 '쉼'에서 온 말이 아닐까 싶다. 쉼과 쉼, 휴식과 휴식이 연속되는 시간에 아무것도 채우지 않고 비워두면 그게 심심함이다.


아무리 좋은 노트북이나 스마트폰도 충전하지 않으면 고철덩어리에 불과하다. 슈퍼카도 연료가 충전되지 않으면 깡통일 뿐이다. 사람도, 몸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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