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보아야지만 알 수 있는 무언가
Sahara Desert, Morocco
다섯 번째 날 ▷ Merzuga, Sahara Desert
밥을 만나다
우리는 낙타를 배정받고 사막 길을 걷기 시작했다. 나의 첫 낙타 밥. 밥은 우리 조의 리더이다. 가장 오랜 경력이 있는 낙타가 선두에 서고 그 사이에 어린 낙타를 그리고 뒤쪽에 중간 정도 경력이 있는 낙타를 배치해서 밸런스를 맞춘다. 리더답게 듬직했던 밥. 낙타를 가까이에서 본건 처음이었다. 순수하고 착한 눈망울과 참 순한 성격이다. 평생을 사막을 걸으면서 사는 낙타. 뭔가 짠하고 미안한 마음과 동시에 묵묵히 주어진일을 하며 사는 낙타의 삶에 대해서도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를 사막에서 편안하게 이동하게 해 주어서 감사하다. 사막으로 들어서 한참 걷다가 잠시 쉬어 간다. 밥과 사진도 같이 찍고 친해지는 시간. 우리의 가이드 모하가 낙타 다루는 법과 사진 잘 나오는 노하우도 알려준다. 그리고 나와 내 친구에게 모로코식 이름을 지어 주었다. 나는 아이샤 친구는 사라 그 후 모하는 우리를 아이샤와 사라라고 불렀다.
낙타를 닮은 베르베르 사람들
잠시 쉬는 타임이 끝나고 다시 길을 떠난다. 버스에서 낙타로 바뀐 어제의 반복인 듯도 하다. 낙타는 사막에서 잘 걸을 수 있는 노하우와 신체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사람이 걷기에는 보통 힘듦이 아니다. 사막 모래에서는 잠시만 걸어도 힘이 많이 빠진다. 모하는 우리와 낙타들을 이끌며 사막을 묵묵히 걸었다. 중간중간 지루하지 않게 농담도 잊지 않았다. 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을 베르베르 민족이라고 하는데 모로코 사람과 다른 소수 유목 민족이다. 언어도 다르다. 생김새도 다르고 성격도 다른 게 느껴졌다. 이 민족을 용맹하고 사나운 성격이라고 설명해 놓은 글을 본 적이 있다. 그런데 내가 만난 여기 사람들은 세상의 나쁨은 보지 않고 살아온 듯한 순수함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순수한 낙타와 사람들도 닮아 있다. 주어진 삶에 감사하며 묵묵히 살아가는 느낌이다. 적어도 우리가 만났던 사람들은 그러해 보였다. 어느새 사막 한가운데에 왔다. 주변은 모래와 우리뿐이다.
인생 사진은 나에게 맡겨라
멀리 사람들이 보인다. 사막에서 다른 무리의 사람들을 만났다. 바로 여기는 알리네 포토 스폿이다. 오전에 떠난 조 사람들과 하루 전 떠난 사람들 그리고 투어를 막 시작한 우리 이렇게 3팀이 만나게 되는 장소이다. 그리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스파르타식 포토 그래퍼이자 가이드 사이드가 있었다. 그는 사진을 잘 찍는다. 해가 지기 전에 모두에게 인생 샷을 남겨 주려니 마음이 바쁘다. 덕분에 사막에서 멋진 인생 사진을 얻을 수 있었다. 사실 사막에서 2박을 고민할 때 할 게 없어서 심심하면 어떡할까 고민을 했었다. 그래서 책도 한 권 챙겼다. 그러나 사막에서의 2박은 세상 바쁜 일정이었다. 열정 포토그래퍼의 지휘 아래 인생 샷을 남기느라 바쁜 틈을 타 어느새 노을이 지고 있다. 우린 잠시 멈춰 모두 같은 곳을 바라보았다. 사막에서의 노을. 아름답다. 참 값진 순간이다. 세상의 가장 아름다운 것들은 공평히 모두에게 나눠진다고 했다. 모든 이에게 무료로 공평하게... 그 아름다움을 더 아름답게 보기 위해서는 육체적 노력이 더 해져야 한다고 했다. 이 순간 그 책에서 봤던 문장의 의미가 떠올랐다. 그래서 내가 여기에 왔구나.
좀 더 많아진 멤버들과 함께 다시 낙타를 타고 우리의 베이스캠프로 이동했다. 이동 중에도 알리네 가이드들은 여러 개의 핸드폰을 모아서 골고루 사진을 찍어주느라 바쁘다. 그냥 걷기도 힘든 사막을 가이드들은 뛰어다닌다. 아니 날아다니는 줄 알았다. 애써준 덕분에 이렇게 멋진 사진들을 우리는 남길 수 있었다.
호텔 급이네
베이스캠프에 도착했다. 서프라이즈! 캠프장을 들어서자마자 모두 감탄사가 나온다. 바닥에 홀을 파서 초를 넣어 로맨틱하게 입구를 장식해 두었다. 그리고 상상 이상으로 좋았던 사막 숙소 컨디션에 감동했다. 아, 내 기대치가 사실 엄청 낮았던 것 같다. 바람 겨우 막아주는 텐트나 천막 침낭 속에서 잘 수도 있겠다. 정도를 상상했었다. 여행 전 너무 바쁘기도 했었고 잠자리에 대한 후기를 거의 못 찾아보고 간 사막이었다. 숙소는 돔 형태의 꽤 크고 튼튼해 보이는 천막으로 만들어져 내부에는 침대가 놓여 있다. 그리고 심지어 수세식 화장실이 있다. 물이 부족해 아껴 써야 하긴 하기만 작은 세면대도 갖추고 있었다. 식당 공간도 따로 마련되어 있다. 가끔 최악의 상상이 도움이 될 때가 있다. 상상 덕분에 이 정도의 환경은 지금 내게 최상급 사막 호텔이다. 방을 배정받고 푸짐하게 차려주는 모로코식 저녁 식사를 함께 하고 나면 캠프 밖 한편에 모닥불을 피워 준다. 옹기종기 불 곁에 둘러앉으면 가이드들이 아프리칸 노래와 악기로 파티를 만들어 준다. 영혼을 불 사르는 연주와 노래다. 같이 원을 만들고 아프리칸 춤을 배워보며 우리의 사막의 밤을 축하한다. 어둠 속의 사막, 모닥불, 음악 우린 잠시 동심의 세계로 돌아간 듯 허물없이 친해졌으며 함께 그 시간을 즐겼다. 파티가 끝나면 낮에 그 프로 사진기사 가이드님이 별 인생 사진도 찍어주고 누워서 별을 볼 수 있도록 매트도 깔아준다. 매트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며 이대로 별들과 함께 잠이 들어도 참 좋겠다고 잠시 생각했다. 그때만 해도 사막의 새벽 추위를 알지 못하고 말이다.
잘 지내시고 계시죠?
같은 시간에 같은 투어를 선택한 이유로, 사하라 사막에서 이 시간을 함께 공유하게 된 우리의 인연. 우리는 한두 병씩 쟁여온 귀한 와인과 맥주를 꺼내 나눠 마시며 서로의 이야기를 공유했다. 하늘에는 가득한 별이 주변은 모닥불에만 의지한 암흑. 처음 만나 낯설지만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낯설지 않은 우리들. 그리고 사막이란 곳에서의 특별한 만남. 진솔한 이야기들이 오간다. 다양한 삶을 다양한 시각으로 보며 살고 있는 우리들의 이야기가 흥미롭다. 함께 바라봤던 같은 하늘, 별똥별을 기다리며 여기저기 터지는 환호성. 소중한 그 찰나의 감정, 여전히 선명한 기억의 순간들이다. 다들 잘 지내고 계시죠? 잠시 사막에서 만나게 된 인연 지금은 다시 각자의 삶을 부지런히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기억 한켠 소중한 곳에 또렷이 남아 있다. 우리네 인생 좋은 추억의 한 페이지를 함께 나누었던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