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주치의는 마법사 였다
학기와 동시에 수영레슨을 시작 하면서 가장 우려했던 건 찬바람 부는 날 수영.. 과연 괜찮을까.. 였다.
아니나 다를까 찬바람 시작과 동시에 아이들은 콜록대기 시작했고 (비단 꼭 짚어 수영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는, 학교 대다수 친구들이 감기 등 여러가지 이유로 결석이 잦았다) 이 시기 기관 다니는 아이들 치고 코 찌찔이, 기침 콜록대지 않는 아이들 없다보니 자연스레 지나가는 중이라 여겼는데 좀처럼 힘도 없고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엄마! 나 아파서 학교를 못 갈 거 같아‘ 라고 하는 아이를 억지로 등원시키기도 뭣했다.
한국이었다면 당장이라도 소아과 찾아가 약 처방을 받았겠지만 이탈리아 병원 시스템은 조금 달랐다.
우선 아이가 아프면 담당 주치의에게 가야한다.
응당 주치의! 라고 하면 내가 필요할 때 언제든 나를 봐 줄 수 있는 의사.. 라고 생각하기 쉽건만 이탈리아의 주치의 개념은 나를 담당하긴 하지만 의사를 만나기 위해서는 (코로나 이후) 모두 예약제로만 가능했다. 특히나 아이들의 주치의 이건만 예약이라니.. 대체 아이가 언제 어떻게 아플 줄 알고 예약이란 말인가
물론 응급상황일 때는 별개라곤 하지만 내 아이가 아픈데 모든 상황이 응급 아닌가! 순 억지같은 시스템이다.
어쨌든, 이런 복잡미묘한 시스템으로 나를 비롯 이탈리아 살이 대부분 엄마들은 반 의사, 약사나 다름없을 지경이고 사실상 주치의에게 감기로 찾아가봤자 진료 내용 또한 단촐하기 짝이 없기에 곧장 약국으로 달려가 기침약을 사 먹인다.
일주일 꾸준히 먹였음에도 약효가 없는 듯 아이의 기침은 좀처럼 멈출 줄 몰랐고 밤새도록 해대는 기침소리에 잠을 제대로 못 잔 것보다도 이러다 (돌팔이 엄마 때문에) 괜히 애 잡는 건 아닌가, 병에도 다 시기가 있는데 놓쳐버리는 건 아닌가 별라별 생각이 머릿속을 스친다. 당장이라도 병원에 가서 폐 엑스레이라도 찍고픈 마음 간절하지만 이탈리아에 사는 이상 이탈리아 아니, 로마 법을 따라야 하기에 비록 예약하진 못했지만 무작정 주치의에게 향했다.
- 응급이예요 선생님, 아이가 기침을 너무 많이 하고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해요, 학교도 요며칠 못갔어요
기침하는 건 응급이 아니라고 단호하던 의사 선생님, 하지만 아이까지 데리고 아침 일찍 온 외국인 엄마가 가여웠을까 예약도 없이 왔기에 되돌아가라고 해도 할 말이 없는데 다행히도 한 번 봐보자는 소리에 연신 그라찌에 (고맙습니다) 만 해댔다.
- 잠을 못 잘 정도로 쉼 없이 기침을 해요, 잦은 기침에 두어번 토하기도 했고 어제 저녁부터는 콧물도 조금씩 나고요, 열이 그렇게 막 높은 건 아니지만 38도 왔다갔다도 해요, 맥박이 빠른 듯도 하고 숨소리가 거친 듯도 하고요
겁을 잔뜩 먹은 아이는 내 손을 꼭 잡았고 청진기는 꼼꼼히 구석구석 아이의 상체 앞 뒤를 오고갔다.
의사 선생님은 아이의 입 속도 보고 귀도 꼼꼼히 그리고 천천히 봐주셨다 그리고 이내 아이에게 직접 이야기 했다.
- 많이 아팠어?
그런데 선생님이 보기엔 편도도 안 부었고 체온도 나쁘지 않아, 아직은 기침 조금, 콧물이 당장 그치진 않겠지만 이만하면 이제 학교 가도 괜찮을거 같은데?
여전히 아파서 학교를 못가겠어?
당장이라도 힘없이 팩 쓰러질 것만 같던 아이에게, 밤새 해대는 기침소리에 가족 모두 제대로 잠을 못 잘 만큼 킁킁대던 기침소리가 혹여나 폐에 문제가 있을까 더 크게 병을 키우고 있진 않나 대걱정을 하던 엄마 무색하게 편도조차 붓지 않은 노르말. 평범 그 자체라고 했다.
아이의 손을 꼭 잡고 주치의 사무실을 나오면서 다행이라며 안도의 가슴을 쓸어내리는 동시에 머리를 쿵 한대 얻어맞은 것도 같았다.
몸을 베베 꼬며 겸연적은지 아이는
- 엄마, 미안해, 나 안 아파. 했다.
당장이라도 무슨일이 날 것만 같던 어젯밤과 ‘아무렇지 않은데?’ 의사선생님 한마디에 아이의 지독했던 기침감기는 마법처럼 사라졌다.
기침감기 꾀병러는 그렇게 덜미를 꽉! 잡히고 말았다.
고얀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