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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마언니 Oct 15. 2022

아빠! 그래도 울지 마!

수영레슨


9월 새학기 시작과 동시에 아이들의 수영레슨도 시작이 되었다.

화요일, 금요일 일주일 두 번의 레슨으로 9개월의 대장정이다.

유치원 초급생들의 수영레슨이야 세계 어느 나라든 대부분 비슷할테고 아직까지는 노랑노랑한 튜브 하나씩 끼고 수영레일을 이리 저리 왔다갔다만 하거나 때때로 뒤로 뉘여 배영 흉내를 내곤 한다.


만3세와 만5세 두 아이 모두 동일 클래스 수업을 신청했고 만3세 둘째는 약간 어린감이 있지만 만5세 첫째는 첫 수업부터 클래스 학생들 중 단연코 눈에 띌 만큼 썩 나쁘지 않았다.


이탈리아 여름방학은 꽤 길다.

6월에 여름방학을 시작해서 9월이 되어야만 비로소 개학이다. 평균 36도 이상, 뜨겁다 뜨겁다 할 때는 40도를 육박하는 이탈리아, 아니, 로마의 여름날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오로지 물놀이 뿐이었다.

심지어 지난 여름방학 때는 아이들과 함께 서 지중해 크루즈여행을 다녀왔었다.

크루즈여행의 여러가지 매력이 가득하지만 아이들에게 최고를 꼽으라면 당연스레 수영 했던 거? 라고 할 만큼 여름내도록 물놀이만 하고 지냈다.

그래서 였을까?

다행히 수영레슨의 낯선 수영장 물 속에 던져졌지만 두 아이 모두 물에 대한 공포는 없었다.

튜브라는 믿는 구석과 더불어 그저 신이 나고 재밌을 뿐. 아이들의 위해 학습이든 또 다른 무언가가 됐든 단 시간에 가장 잘했다고 생각한 것 또한 수영이었다.

그만큼 우리 모두에게 수영레슨은 최고의 만족이었다.


2주차가 지날 때 큰 아이의 유도 레슨도 추가했다.

수영은 요일과 시간을 선택할 수 있었건만 유도는 지정된 요일과 지정된 시간으로 월.수.금 못 박혔다.


월, 유도

화, 수영

수, 유도

목요일 하루 겨우 쉬고

금, 수영, 유도

거의 일주일 내내 유치원 하원 후 스포츠센터를 가야만 하는 스케줄이 됐다.

오후 4시 시작 수영과 5시 15분 시작 유도를 하루에 다 할 수 있는 금요일은 괜찮았지만 그렇지 않은 날은 유도 시간을 맞추기 위해 하원 후 1시간이 넘는 공백 시간도 생기고 나이가 안되어 함께 참여할 수 없는 둘 째 또한 데리고 있어야 하는 사실상 그리 좋은 조건은 아니었다.


화요일 수영을 월요일 또는 수요일로 바꿔야겠다 생각을 하니 월-목 / 화-금 / 수-토 로 요일별 타임별로 선생님이 지정되는데 월요일 또는 수요일 그리고 기존의 금요일 이렇게 하니 매 요일마다 선생님이 달라지게 생긴거다. 그럼에도 매일 스포츠센터까지 다녀오는 건 나에게도 아이들에게도 그리 좋은 대안은 아니라고 생각해서 월요일로 바꾸려하니 총 정원 9명 중 우리집 애가 벌써 둘, 나머지 5명이 학교 친구들이다. 다함께 하면 재미있고 좋은 점도 분명 있겠지만 이미 유치원 3년을 함께 하고 있는 친구들을 수영 레슨 까지 함께 하는 게 다양한 친구들을 만나게 해주고 싶은 엄마의 이기심에 썩 내키지 않아 수요일로 변경했다. 바뀐 스케줄로 또다시 2주의 수영레슨을 끝마쳤고 3주차가 되던 날, 큰 아이를 한단계 높은 클래스로 일명 월반을 시켰다. 사실상 부모에게 아무런 언급도 없었기에 그리고 초급반 시작한 지 한달도 채 안되었기에 월반 시킨 게 순간 화가 났다. 아무리 그래도 월반한 친구들은 작년 9개월을 수영을 배운 친구들이었고 이 아이는 고작 한달남짓인데 동일 클래스는 가당치 않다고 생각했다.

튜브 탄 아이들 중에 제일 쌩쌩 날아다니는 물개는 맞았지만 이미 9개월을 먼저 배운 친구들은 튜브는 커녕 맨몸으로 배영을 하는데 이걸 우리 아이가 벌써 할 수 가 있다고?? 심지어 그 반은 수영장 물 깊이도 (아이들 기준) 제법 깊어 상대적으로 키가 작고 스스로 (튜브없이) 물에 뜨는 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아이는 끊임없이 점프를 해야만 겨우 아이 목에 물이 간당 간당 버텨내는 아이를 바라보는 내내 엄마의 마음은 지옥 같았다. 혹 잘못된 선행 배움으로 한창 즐거워하는 수영수업을 무서워하면 어쩌나, 물에 뜨는 법도 제대로 배우지 않은 아이가 이미 1년을 먼저 배운 아이들과 함께 하는 것이 과연 맞는걸까?

수영 레슨이 끝나고 아이의 자초지종부터 들었다.


- 오늘 수업 어땠어? 물이 깊어서 무섭지 않았어?

갑자기 왜 그 반으로 옮긴거야?


“선생님이 더 잘하는 반으로 가는 건 어떻겠냐고 물었어, 싫으면 안가도 되는데 나는 가고 싶다고 했어,

그리고 오늘 너무 너무 재밌었어“


안도의 숨을 몰아 쉬었다.


- 재밌었으면 됐어, 다음주도 그럼 마르코 선생님이랑 수업 할꺼야? 금요일은 그대로 플라비오랑 수업해야해 괜찮겠어?


“응, 마르코 선생님도 플라비오 선생님도 다 좋아”


수영레슨 정확히 한달 째

선생님 도움은 받았지만 튜브없이 아이 스스로 물에 떠 있는 걸 성공했고 상급반으로 이동 한 세 번째 레슨만에 9개월 먼저 배운 아이들 무색하게 아이는 혼자 팔 내저으며 배영하는 데도 성공했다.

가을을 내딛고 있는 계절과 수영이라는 특성 상 특별히 집에서 예복습을 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도 레슨때마다 상향되는 아이의 실력에 부모로서 그야말로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목 까지 차오르는 깊이에 물을 먹지 않기 위해 아이 스스로 점프를 해야만 한다는 것을 알았고 튜브에만 의존해서 고작 놀이수준 정도이던 아이가 제법 모습을 갖춰가는 모습을 보는데 기분이 묘했다.


레일 처음부터 끝까지 아이 혼자 배영해 나가는 모습을 보는데 우리 부부는 눈시울이 붉어졌다.

다컸네, 정말 다 컸어


예상보다 잘 따라주는 아이가 선생님도 대견하셨는지 연신 위에서 바라보는 우리에게 눈 맞춤해주셨는데 자세 하나 하나 바로 잡고 아이가 레일 끝까지 홀로 배영해서 올 수 있도록 도와주던 마르코에게 아이가 뭐라고 이야기 했다.

잘 못 들었는지 마르코는 아이 얼굴 가까이 귀를 대더니 이내 우리를 바라보고 찡끗 웃었다.


- 아까 수영할 때 마르코 선생님께 뭐라고 이야기 했어?


“ 그냥 별말 안했는데, Molto Gentile (친절히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라고 했어


- 그런 말은 어디서 배운거야,

그리고 오늘 수영 진짜 진짜 너무 너무 잘했어

혼자서 레일 끝까지 수영했잖아 그치?

엄마 아빠 너무 기뻐서 울었어


“아빠도 울었어?”


- 응, 아빠도 울었어, 정말로 감동했거든


“나 계속 잘할건데..

아빠! 나 앞으로 너무 잘해도 그래도 아빠 울지마“


- 기뻐서 우는 건 괜찮아, 너무 잘하니까


“그래도 아빠 울지마! 내가 너무 잘해도 그래도 아빠 울지마”


아이의 말에 코 끝이 한 없이 찡해졌다.


그럼 엄마는 좀 울어도 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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