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소매치기
로마의 휴일, 즉 일요일엔 포르타 포르테제 (Porta Portese) 라는 벼룩시장이 열린다.
여러 관광 안내서에 대문짝만하게 소개되고는 있지만 사실상 크게 살 것도, 볼거리가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
흔한 유럽의 벼룩시장이라고 하면 꽤나 엔틱한 소품이나 세월의 흔적 고스란히 간직한 제품들을 떠올리지만 로마는 그렇지는 못하다.
벼룩시장이라고 하면서 주력 판매는 가격 낮고 질 또한 그다지 좋지 못한 휘뚜루 마뚜루 저렴한 값에 구입할 수있는 일반적인 가판 물품들이고 골목 한 켠에 골동품 혹은 흔히 엔틱이라고 할 수있는 물건을 내놓은 곳들이 몇몇 있긴하나 여느나라 벼룩시장과 비교할 것이 절대 못되는 듯 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웃픈(웃기기도 슬픈)건 소매치기가 활개를 치는 로마여서 일까?
약간은 장물(?)스러운 물건들을 파는 곳이 심심찮게 눈에 띈다는 것이다.
하물며 우스겟소리로 집에 도둑이 들어 몽땅 훔쳐갔는데 그 주에 포르타 포르테제 벼룩시장에 갔더니 잃어버린 물건이 다 있더라,,,고 하겠는가
올해로 로마살이 9년 차
처음엔 유명하다고 하니 몇 번 들러보았고, 아무짝에 볼거리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워낙 관광안내서에서는 유명 벼룩시장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으니 지인들이 로마를 방문하면 의례 들르는 코스같은 곳, 그 이후로는 절대 갈 의미가 없어 그동안 등한시 하다가 그날은 뜬금없이 그 곳이 왜 가고싶었던 걸까?
일요일 아침,
벼룩시장 근처에 주차를 하고 유모차에 아이를 태워 남편과 함께 벼룩시장으로 향했다.
언제 어디서 소매치기의 표적이 될 지 알 수가 없으니 경계는 어느 때보다도 철저하게, 역시나 벼룩시장은 실망적이었고 안전하게 주차도 잘해뒀겠다 평소에는 차량 진입이 어려웠던 근처 작은 골목들 사이의 레스토랑에서 점심이나 하자는의견으로 남편과 일치했다.
이동을 위해서 로마의 트램을 잠깐 탔는데 주말엔 대중교통의 배차간격도 제법 긴 편에 벼룩시장 또한 열려있던 터라 평소와 다르게 사람이 가득이었다.
네 정거장 후에 하차 예정이니 비좁지만 유모차를 끌고 남편이 먼저, 그리고 내가 마지막으로 트램에 올라탔다.
내 뒤로 트램의 문이 닫히고 옴짝달싹 어려운 공간에서 남편을 뒤에서 안다시피 안전 손잡이를 잡고 있는데 남편 대각선의 남자와 시선이 자꾸 겹치는 것이다. 딱 보기에도 소매치기 같았다. (로마살이 9년쯤되니, 대충 보기만해도 소매치기는 느낌이 온다) 자꾸만 내 주머니 속 휴대폰을 주시하는 느낌, 남편에게 말을 할까하다가 편견이 가장 무섭고, 괜한 기분 탓일거라 치부했다.
그래도 일단 조심해서 나쁠 건 없으니 주머니에 손을 넣어 휴대폰을 꽉 쥐었다.
임신 17주의 몸으로 흔들리는 트램 속에서 한 손을 주머니에 넣고 한 손으로 안전 손잡이를 잡으니 혹시나 넘어질까 불안 불안했지만 다음 정거장에서 내리자는 남편말에 남편 뒤에 딱 붙어 있다가 남편을 등지고 창가 쪽, 문이 열리는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그리고 잠시 후 트램의 문이 열리고 하차 하면서 남편은 객차 내 사람들에게 저 사람 소매치기범이니 조심하라고 큰 소리로 이야기 하는 것이다.
순간 내가 잘못 들은 줄 알았다.
뭐지? 왜?
안타깝지만 그는 편견 가득 그대로, 내가 느낀 그대로 역시나 소매치기 였던 것이다.
유모차를 끌고 객차 내에서 아이에게 온 신경이 쏠려있던 남편, 그리고 그 뒤에서 남편을 거의 안다시피 서 있던 나, 그가 처음에 노렸던 건 역시 내 주머니 속 휴대폰이었을 것이다.
헌데 내가 이상한 기운을 감지하고 주머니 속에 손을 넣어 휴대폰을 사수하고 있었으니 타켓은 자연스레 남편에게 넘어갔을 것이고 하필 나는 그 때 남편에게서 떨어져 등까지 졌으니 이 때가 기회다 싶었겠지, 때마침 문이 열리기 직전이기도 하고 얼른 훔쳐 달아나려 했을 것이다.
헌데, 남편 역시 로마생활 15년 차다.
평소 소매치기에 대해 극도로 예민한 편이기도 하고, 오늘은 더구나 한편으론 소매치기 소굴 속으로 제 발로 걸어들어가는 셈이니 그만한 준비도 안했을까, 남편의 주머니엔 양 옆으로 단추가 하나씩 있고 그걸 다 잠궈두면 성인 남성의 손이 들어가기엔 주머니 입구가 비좁다. 물론 그렇다보니 실 사용하는 남편조차 불편할 때도 많지만 주머니에 손을 넣고 빼는 것조차도 불편하기에 휴대폰 크기는 한 번에 훅 하고 빠지진 않는다. 알리가 없는 소매치기는 주머니 속에 손을 집어 넣으려고 하니 자꾸 남편 몸에 부딪힐 수 밖에 없고 이상한 느낌에 몸을 이쪽으로 돌리니 손이 따라오고 저쪽으로 돌리니 손이 또 따라오더란다.
하차 하면서 객차 내 사람들에게 이탈리아어로 조심하라고 이야기하니 그 역시 다소 당황하는 눈치였다.
관광객인 줄 알았겠지
결국 그는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했다.
하지만 우리가 현지 생활자가 아닌 단순 로마에 여행 온 관광객이었다면 어땠을까?
이 이야기의 결말은 달라졌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