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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마언니 Nov 09. 2023

화장실에서 뭘 먹었다고?

이탈리아 초등학생 A반


1학년 준비물 목록을 받았을 때 다른건 차지하고도 (bicchiere pieghevole) 접이식 컵? 내가 생각하는 그런 게 맞나싶고, 대체 그 컵으로 뭘 하겠단건지..

아마존 이탈리아에 틱 검색하니 톡하고 검색 결과가 나오는데 내가 생각하는 그 것이 맞다.


챙겨보내라니 일단 보내긴 하지만 용도가 대체 뭘까 여간 궁금한 게 아닌데 하교하는 아이 대답을 듣고선 Mamma Mia 맙소사!


컵을 가져오라니 당연히 물을 먹기 위함이겠지, 오전8시부터 오후 16:30분까지 간식도 먹고 점심도 먹고 체육시간도 있고 당연히 수분 섭취는 필수지!

보통은 물을 챙겨 보내달라고 할텐데 컵만 보내라는 건.. 이탈리아 특성상 각 학년별 또는 각 층별 정수기가 있을리는 만무하고 클라스 내 가령 1리터, 2리터 플라스틱 물병을 두는걸까? 그럴리도 없을 것 같은데..

아차차, 점심먹는 급식실이 따로 있으니 그 곳 어딘가에 식수대가 있을지도.. 라고 애써 생각하려 하지만 지금껏 내가 겪은 이탈리아에서는 그럴리가 없을 것만 같은 그 예상은 그대로 적중했다. 그럼 그렇지!


- 접이식 컵은 어떻게 사용했어?


“물 마셨어!”


- 물을 어디서 어떻게 마셨냐고? 클라스에 물 병 있었어? (적어도 유치원에서는 클라스 내에 플라스틱 물병이 늘 비치되어 있었다. 물론 물의 출처를 알 길은 없었지만..)


“화장실에서 마셨는데!”


물론 현재도 이탈리아 가정에서는 비일비재하게 수돗물을 그냥 마시는 경우가 허다한 것 알고는 있다.

유럽 수돗물은 석회 성분이 다량 함유되어 있어 설거지하고 시간이 조금만 지나도 새하얗게 석회가 끼기도 하고 일회성으로 한 두번이야 그냥저냥 넘어가겠지만 이게 일상이 된다면 건강에도 그다지 좋지 못할 거라는 것 또한 예견할 수 있기에 이탈리아 생활 십여년이 넘도록 생수를 사서 가정내에서 마시는 건 당연하고 심지어 요리할 때도 이탈리아 가정 내 모두 하나씩은 있다는 필터 정수기 (일명 브리타) 사용하지 않고 생수로 요리를 해왔다. 물론 생수 속에도 전혀 석회 성분이 없는 건 아니지만 최소화 해보려 그나마 가장 수치 낮고 덕분에 가장 비싼 물로만 태어나서 지금껏 그렇게 키워왔는데.. 최소한의 정수필터 거친 물도 아니고 별도의 식수대도 아니고 손 씻고 별별거리를 다하는 화장실에서 세면대 물을 그냥 컵에 받아 마신다고?

어쩌면 그들 또한 그렇게 자라왔을 지도 모르지만 어찌됐든 나만 그런건 아니었던 듯 나를 제외한 모두가 이탈리아인 엄마들도 당황해하며 단톡방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 내일부터는 엄마가 물병에 물을 따로 챙겨줄께! 화장실 물 마시지 말고 그거 마셔!


“ 안돼! 안돼! 엄마!

선생님이 절대 물 가져오면 안된다고 했어!


- 간식시간에 음료 (우유 또는 쥬스 팩) 가져가잖아

물이 안 될 이유가 없어! 챙겨줄테니까 가져가


“ 절대 절대 안된다고 했어!


우리 아이만 그런 것이 아니라 다른 아이들도 똑같은 대답을 했던 모양이다. 연신 단톡방은 화장실 물 음용에 대한 안건으로 시끌한 와중에 결론은 물을 가져오는 건 절대 NO


아이들은 대략 18권의 교과서를 받았고 대체로 학교에 두고 다니긴 하지만 숙제가 많은 편이라 하루에 적어도 두세권의 책과 두세권의 공책은 늘 책 가방 속에 넣어다니게 된다. 앞의 수 많은 선례로 물을 별도로 챙겨다니다가 실수로 뚜껑이 덜 닫히거나 하는 등의 문제로 책과 공책이 모두 젖을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점이라는 것이다. 미연에 방지하고자 물병을 가져다니는 것 자체를 금지하고 접이식 컵을 이용하여 학교내에서 물을 마시게 하자는 취지인데.. 선생님 또는 학교의 입장도 이해는 된다. 하필 그게 화장실 일 게 또 뭐람..


이탈리아 여행 중 변비가 심해졌다거나 할 때 우스겟소리로 수돗물을 마셔보세요. 석회 성분이 많이 함유되어있어 화장실을 가실 수 있습니다. 라고 하는데

괜스레 별다른 이유도 없이 두 아이들이 번갈아가며 엄마 그냥 배가 아파! 하면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든다

1년 먼저 아이를 입학시켰던 언니와 화장실 식수 문제로 이야기를 나눴는데 언니 또한 처음에 꽤 당황스러웠다고.. 이야기 말미에 언니는 내게 그랬다.


“우리 그냥 모른척 눈 감아요”


맞다. 방침이 그렇다고 하니 지금껏 그랬던 그렇지 않았던 현지 엄마들도 기함하지만 바꿀 수 없고 바뀌지 않는 일에 이방인 외국인 엄마는 더욱이 아무런 힘이 없다. 로마에서는 로마 법을 따라야 한다고 하니..

화장실에서 물을 마셔야 한다면.. 따라야겠지만,

아이들에게 나름 부탁아닌 부탁을 해본다


- 너무 목이 마르면 어쩔 수 없어

하지만 웬만하면 학교에서는 물을 마시지 않았으면 좋겠어, 이런 것까지 부탁해서 미안하지만 어쩔 수가 없네 에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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