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유치원
아이는 25개월이 되었다.
주변의 또래 중 빠른 친구들은 돌이 지난 무렵부터 Nido (니도, 어린이집)를 다니기 시작했고 24개월, 즉 두 돌이 된 시점부터는 대부분 니도를 다닌다.
고민을 안 했던 건 아니다.
한국도 아닌 이탈리아에서 특히나 부모가 모두 한국인 인 가정에서 아이가 이탈리아어를 듣고 자랄 확률은 현저히 떨어지기도 한다.
한국어와 이탈리아어 이중언어를 구사해야 하는 아이이기에 더욱더 어릴 때 기관을 보내어 언어에 대한 노출을 시켜볼까 생각도 해보았지만 이탈리아에서 태어나고 앞으로도 이탈리아에서 살아갈 아이이기에 이탈리아어 노출보다 어쩌면 가정 내에서는 가정을 벗어나서는 다소 습득이 어려운 한국어(모국어)만을 사용하는 것이 더 맞다라고도 생각했다.
이중언어의 아이일 경우 집에서 특히나 엄마의 경우엔 한 가지 언어에만 집중해주는 것이 좋다고 들었던지라 더욱이 나는 한국어에만 집중하여 아이와 지내왔다.
이탈리아는 9월에 학기가 시작한다.
3세 (한국 나이로 4세)부터는 유치원(materna, 마테르나)을 다니고 3세 이전엔 어린이집(니도)을 다닌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공립기관은 대기가 길고
보통 맞벌이 가정 우선이라 우리처럼 외벌이 가정은 사실상 미련을 버리는 편이 나을 정도이다.
니도 입학에 대해 고민을 안 했던 건 아니지만 니도는 스킵하고 3세에 바로 마테르나를 보내겠노라 했다. 내년 9월 입학까지는 일 년이라는 시간이 남았지만 인기 좋은 곳은 사립학교 또한 자리가 없어 대기가 긴 편이니 보통 일 년 전에 등록을 한다더라..라고들 하길래 마음이 조급했던 것도 사실이다.
집 근처 학교들을 리스트업하고 오픈데이 시기를 알고 싶어 각 학교마다 문의를 했더니 한 곳에서 방문해도 좋다는 답변을 받았다.
나조차도 이탈리아 학교는 처음이라 조금은 설레는 마음도 사실이었다. 수녀원 재단에서 운영하는 곳으로 집에서 차량으로 20분 거리이고 시설도 로마에서 이만하면 괜찮다 싶었다
내년 등록을 하고 싶다 하니 마테르나(유치원) 경우 3세부터 등록이 원칙이나 원하면 2세인 지금도 등록 가능하다고 2세인 올해 3세 반을 지내고 내년 3세엔 다시 3세 반을 지내야 한다는 생각지도 못한 제안을 받았다.
급작스러웠지만 뭔가 안 되는 걸 나만 하게 해 준다는 느낌에 단순하게 너무나 잘됐다고만 생각한 게 지금 돌이켜보면 너무나 바보 같았다.
“조금만 생각해보고 결정하자”라고 남편에게 말했지만 즉흥적인 남편은 “애 학교 보내고 나면 너도 둘째만 보면 되고 좀 더 수월하지 않겠어? 받아준다잖아, 그냥 보내” 라며 등록을 해버렸다.
내년 입학만 생각하던 나와 아무런 생각도 준비도 할 겨를 조차 없었던 아이는 그렇게 유치원 등원을 하게 됐다.
단박에 적응하리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울고불고 최소 일주일은 걸릴 거라 생각했는데 일주일이 지나가는데도 적응의 적이라고 볼 수도 없이 되려 더 엄마 껌딱지가 되어가는 모습이었다. 유치원 초입에 들어서면 눈동자가 흔들리면서 엄마 손을 더욱 꼭 잡고 지척에 널리 장난감에 잠시 잠깐 마음이 흔들려 놀다 보면 엄마가 사라질까 두려워 자꾸만 돌아보고 또 돌아본다. 잠시 잠깐 자리라도 비우면 얼마나 다급했던지 평소 결코 말하지 않던 ‘엄마! 엄마! mamma! mamma!’ 목놓아 부르는데 떼어놓고 유치원 문 밖을 나설 수가 없었다.
한 교실 내에서 4일 오전을 함께 보냈다. 어린아이에 대한 배려인지 되려 무관심인지 선생님은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 5일째 되던 날 이대로는 안될 것 같아 먼저 나가 있겠노라 했고 교실 문 밖을 나서는 동시에 아이는 엄마를 찾고 울부짖기 시작했다. 처음 얼마 동안은 선생이 달래는 듯했지만 울음이 길어지자 그마저도 하지 않는 듯 울음소리는 더 커졌고 아이는 절규했다. 가슴을 후벼 파는 아이의 울음소리였지만 마음 단단히 먹고 교실 끝 모퉁이에 숨어 있었건만 얼마 지나지 않아 선생은 아이를 안고 나와 나를 찾아다녔다.
오전 시간도 다 채우지 못한 채 아이를 데리고 학교를 빠져나왔다.
다음날, 그 이튿날은 아빠가 데리고 다녀왔다.
결정적으로 아빠가 데려갔던 둘째 날 아이 홀로 두고 아빠는 떨어져 무려 50분을 있었다 자랑스럽게 이야기했지만, 안 봐도 빤하게 아이는 50분 내도록 절규했었을 거다. 그리고 부모에 대한 모든 신뢰를 잃은 듯했다.
아이의 행동이 변했다.
매사에 불안해했고, 폭력적이었다.
물건을 던지고 깨물고, 꼬집고 사소한 일에도 주저앉아 울고 떼쓰고 무엇보다 웃음을 잃었다.
사태의 심각성을 느끼고서야 대체 아이에게 어떤 가혹한 행위를 한 건지 뼈저리게 느꼈다.
발에 맞지 않은 큰 신발을 신고 뛰던 아이는 제 발에 맞지 않은 그 신발로 인해 발이 까지고 넘어졌던 거다.
무지했다.
어린이집과 유치원의 차이, 특히나 이탈리아에서는 결코 제 나이에 걸맞지 않은 단계를 보내지 않는다는데 그만큼 그 차이가 확연하다는데 이탈리아에서 학교를 다녀본 적이 없는 부모는 차마 알지 못했다.
이 정도의 차이였다면, 제대로 아이를 케어해 줄 자신이 없었더라면 어린 이 아이를 받아주지 말았어야 했던, 안 되는 걸 나만 해준다고 좋아할 게 아니라 안 되는 걸 왜 해주는 거냐고 되려 학교 측에 반박을 해야 했을 학교가 원망스럽고 나의 무지가 원망스러웠다.
주말 그리고 부모 동반이 불가했던 평일날의 체험학습으로 3일간 학교를 쉬었다. 3일 동안 최선을 다해 놀아주었고 아이는 역시 아이답게 어느 정도 자리로 돌아오는 듯해 보였지만 자다가 화들짝 놀라며 엉엉 울면서 엄마를 애타게 찾기도 한다.
얼마나 상처를 받았을까, 저만 홀로 두고 엄마 아빠가 사라졌던 그 순간들이 얼마나 두렵고 무서웠을까, 아이가 한없이 걱정스럽다가도 새롭게 눈높이에 맞춰 어린이집을 다시 보내야 할지, 상처 받은 아이를 조금 더 보듬어 안고 품 안에서 지켜봐야 할지 앞으로 나는 과연 어떻게 해야 할지 가슴이 꽉 막힌 듯 답답하기만 하다.
엄마가 잘 몰랐어,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