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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마언니 Apr 16. 2020

맥도날드만 있다면 완벽할 텐데

이탈리아 반강제 자가격리 라이프



어떠한 확신이었는지 부활절 께에는 소멸할 줄 알았던 코로나는 연이은 봉쇄 연장으로 이어졌고 이탈리아는 5월 3일까지 외출금지령이 연장되었다.

여전히 하루에 수십 명의 확진자가 나오고 있는터라 섣부른 해제는 또 다른 확진을 양상 할 뿐이니 당연한 처사이다 싶으면서도 장기화되는 금지령에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여전히 배달 앱을 수시로 들락거리며 2주가량의 식품을 구입하고 있고 오늘도 내일도 비슷한 일상들을 살아가고 있다. 그나마 테라스와 마당 덕분에 이 위기를 견뎌내고 있는 참이다.





꽃잎이 흩날리는 봄날, 하늘이 참으로 파란 봄날 

봄바람에 엉덩이가 들썩거리는 건 어른이나 아이나 다 똑같은지 아이들은 현관문만 열리면 한달음에 밖으로 나가길 원한다.

하루의 절반을 테라스에 지낸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좀처럼 적응하지 못했던 불과 몇 달 전, 적응한답시고 울고불고하는 아이도 안쓰럽고 매번 밖에서 그 울음 듣고 있는 나도 못할 짓이다 싶어 이다지 적응하기가 힘들다면 집에서 조금 더 보육을 해볼까? 하는 생각을 가장 먼저 하게 되더라

그러다 보니 혼자서 놀아주는 것에 한계가 있고 이 것 저 것 놀이기구 몇 가지를 들였는데 그 이후 아이는 생각치도 않게 꽤 어린이집에 적응을 잘해나가면서 헛돈 썼다며 남편에게 꾸지람을 듣기도 했건만 외출금지령이 내린 이 시점에 이렇게 활용을 잘하게 될 줄은, 사람 일은 정말 한 치 앞을 예상할 수 없구나 싶은 거다.





아이의 루틴은 눈을 뜨면 씨리얼을 크게 한 그릇 말아먹고 유튜브 시청을 잠시 한 이후 곧장 테라스로 직행이다 

아이의 두 돌 생일선물로 성인용 작은 사이즈의 트램폴린을 구입했다.

점핑 효과로 아이의 키 성장에 도움이 되길 바라는 한 편 무한정 뛰어 체력 소진을 무엇보다 바랐건만, 처음 몇 번만 재미나게 놀더니 이후는 시시한 지 좀처럼 트램폴린 속에 들어가려 하질 않았다

장기화되는 외출금지령, 더 이상 놀거리는 바닥이 났고 아이는 매일 아침 스스로 트램폴린 속에서 뜀박질로 시작한다

늘 내 자리는 트램폴린 안전 그물망 밖의 의자였고 혼자 놀기 지루했던 아이는 연신 '엄마, 엄마'를 부르며 함께 놀아주길 원했다. 아무리 성인용이래도 원체 덩치가 있는 나를 감당하려나 싶어 그동안 한 번을 들어가질 않았는데 그날따라 무슨 바람인지 망설임도 없이 그 속에 들어가 아이와 함께 뛰었다


'세상에! 너무 신나!'


학창 시절 나는 여동생과 함께 트램폴린을 꽤 즐겼었다.

함께 즐겼건만 키는 왜 여동생 혼자 다 컸는지는 알다가도 모를 일이지만 우리 자매에게는 꽤 많은 추억이 있는 트램폴린인데 그 옛날의 추억을 상기시켜주는 순간이었다.

한참을 놀다 지쳐 아이를 부둥켜안고 철퍼덕하고 누웠는데 새로운 낮잠 맛집인 거다





적당히 따뜻한 햇살, 바람, 새소리 

움직일 때마다 출렁이는 트램폴린의 탄력성, 껴안고 있는 내 아이

행복이 별 거인가 싶을 만큼 마음 가득 풍요로운 기분이었다

이후 아이의 루틴에 이 순간만큼은 나도 잠시 잠깐 함께하기로 했다.

아침에 우린 함께 씨리얼을 크게 말아먹고 각자 인터넷 시청을 하고 트램폴린에서 열심히 논다, 그리고 따사로운 햇살 아래에서 잠시 잠깐 낮잠을 잔다






놀이터를 데려갔더니 한 켠에 놓인 집 모형에서 아이의 발걸음이 떠날 줄을 모른다.

만 2세쯤이면 본인만의 공간이 필요하다던데 그래서일까? 아이에게 아지트가 필요한 걸까? 여러 날을 고심하다가 아이에게 집을 사주기로 결심했다. 단순 장난감 가격으론 제법 큰 비용이라 타협점을 찾아야만 했는데 남편은 집 옆에 미끄럼틀이 갖춰진 집을 원했고 나는 작은 식탁이 딸려있는 집을 원했다. 결국 승리는 나의 몫!

미끄럼틀이 아닌 그 무엇이 되었다 해도 지금 이 시점엔 유용하게 사용했겠지만 작은 식탁은 더없이 유용해지고 있다.  점심 식사, 저녁식사, 중간 간식들까지 아이는 여전히 테라스에서 지낸다




하루의 대부분을 집 내부보다는 테라스와 마당에서 지내다 보니 점점 곁가지들을 밖으로 끌고 나오기도 하는데 테라스 바닥에 러그를 깔고 그 위에 앉아 블루투스 스피커로 음악 들으며 유유자적하던 어느 날의 햄버거 맛을 결코 잊을 수가 없다  





긴 세월 해외살이를 하다 보면 웬만한 음식들을 자급자족으로 만들어먹는 경지에 오르게 되기도 하는데 햄버거만큼은 사 먹고 싶은 일종의 고집이었다.

주문만 하면 신속배달로 오는 한국의 짜장면이 있다면 적어도 나의 이탈리아 생활에서 신속배달은 맥도날드였는지도 모른다. 임신기간 10개월 동안 가장 많이 먹었던 걸 손꼽으라고 하면 그것 또한 맥도날드일테고 아이가 태어나 31개월 곧 32개월이 되는 이 시점에서 아이가 가장 많이 접한 외부 음식 또한 맥도날드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나와 아이의 맛 8할은 맥도날드이건만, 이탈리아 전체의 봉쇄, 외출금지령으로 인해 맥도날드가 영업을 하지 않는다. 아니 영업을 한다 해도 외출금지령이니 사러 갈 수가 없다.


지속되는 봉쇄에 외출 못하는 답답함마저 무뎌지고 심지어 지금 당장 누군가가 밖으로 나가라도 한다면 그것이 더 이상하다 느껴질 만큼 금지령 속에서 우리는 매일을 웃을 수 있는 재미를 찾아가고 있다

그나마 버틸 수 있는 테라스와 마당이 있으니 철저한 집순이로 한동안은 더 버텨낼 수도 있다 생각하건만 우리의 맛 8할이 없다는 아쉬움이 이다지 크게 다가올 줄이야


이 봄날, 맥도날드만 있다면 더욱 완벽할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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