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GOING HOME 06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고래 Nov 25. 2022

진실을 마주하다.

비우기 시리즈 6.


[여기 들어오는 너희는 온갖 희망을 버릴지어다.]

-단테의 신곡 지옥 편, 지옥의 문 앞에 적힌 문구 중-



지난 시간에 짧게 언급했었던, 단테의 신곡이라는 책의 첫 도입부는 어두운 숲길 앞에 혼자 방황하고 있는 단테의 모습으로 시작했습니다. 이때 단테는 사람들이 모두 결국엔 오르고 싶어 하는 욕망과 성취의 길로는 일단 가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맹수들이 길을 막고 버티고 있었기 때문인데요, 그렇다고 해서 다른 길로 가기엔 도무지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 자체를 못 잡고 두려움에 떨고만 있었는데요.


이런 단테 앞에 베르길리우스라는 영혼이 등장합니다. 이 베르길리우스는 단테가 평소 존경하던 시인 또는 성현으로 묘사가 되는데요. 이 영혼은 그만 두려움에 떨고, 신이 진심으로 단테를 사랑하여  그에게 준 삶의 미션이 있으니, 자신과 이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여정을 떠나자고 제안합니다.


이 여정은 지옥→연옥→천국 순으로 이어지는데요.


저는 처음에 이 여정을 읽으며, 왜 굳이 힘든 지옥부터 가는가?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저의 첫 물음에 대한 답을 인간의 심리학적 관점에서 서술한 책 [어두운 숲길을 단테와 함께 걸었다_마 사백 지음]에서 굉장히 상세하게 서술되어 있었습니다.


이 책에서는 이 여정을 인간이라면 누구나 빠질 수 있는 두려움과 자기 불신의 늪에서 빠져나오기 위한 첫 번째 단계는, 막연한 희망과 삶에 대한 기대가 아닌, 자신이 그동안 굳게 믿고 있었던 잘못된 신념에서 벗어나 자신의 가장 어두운 면을 마주해야 한다고 해석했습니다.


이 여정을 거쳐야만, 비로소 신을 마주할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하는데요.



저는 그동안 자신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삶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불신을 갖고 있다가, 동료라는 길잡이 덕분에, 저 자신의 지옥으로 들어갈 문 앞에 서게 됩니다.



이때 동료는 자신의 마음을 챙기는 데 도움이 된 유튜버와 여러 서적을 추천해 주었는데요.


그 리스트에는 이미 제가 이름이 익은 유튜버도 있었습니다.


그중 한 명이 “써니즈”라는 분인데요.


저는 이분을 동료가 추천해주기 전까지는 마음 챙김 관련 유튜버가 아니라, 책을 읽어주는 목소리 좋은 ASMR 유튜버로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이 유튜버를 처음에 알게 된 건 2020. 12월 연말, 그러니까 막 불면증이 심해져서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던 시기였습니다.


새벽에  ASMR 콘텐츠를 유튜브에 검색했는데, 알고리즘의 신이 갑자기 이분을 추천해 줬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보게 된 영상은 얼굴은 안 나오고 한 남성분이 책을 읽어주시는데 목소리가 너무나 편안하고 사람의 마음을 안정되게 만드는 콘텐츠였어요.


그래서 가끔 잠이 안 올 때 그분이 읽어주는 책을 듣고 있었지요. 그런데 그 유튜버가 읽어주는 내용이 알고 보니, 마음 챙김과 관련된 책이었고, 심지어 동료가 추천한 리스트에 있었던 겁니다.


그때부터 저는 집에 퇴근하고 와서, 감정을 주체 못 하고 쏟아내는 걸 잠시 멈추고 그 유튜버가 추천해 주는 감정을 수용하는 법들을 혼자 집에서 따라 해 보게 됩니다.



그중 제일 첫 번째로 따라 해 본 콘텐츠는 미국의 유명한 영적 스승 중 한 명인 바이런 케이티가 알려준 [진실을 마주하는 법]이었습니다.



이 영상의 콘텐츠를 제가 이해한 대로 정리하면 아래와 같이 총 4단계가 나오는데요.   



1. 그동안 두려움과 불편함을 느끼던 특정 존재에 내한 내 생각들을 종이에 솔직하게 적어본다.

2. 그 문장들을 읽어보면서 정말 진실인지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3. 만약, 진실이라고 믿는다면, 그 문장들을 반대로 뒤집어 본다.

4. 문장을 뒤집어 본 후 느껴지는 감정의 변화가 있다면 그게 바로 내가 마주해야 하는 진실이다.



우선 1번부터 따라 해 보았습니다.


저의 경우 “상사를” 예로 들어보면,   

나의 상사 **은 독불장군이다. 부하 직원들이나 협력업체의 의견을 전혀 듣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밀어붙이는 사람이다.
나의 상사 **은 무능력한 사람이다. 왜냐하면 눈앞에 성과에만 급급해서 큰 그림을 읽지 못하며, 심지어 내가 하는 영역에 대한 전문 지식과 경험이 턱없이 부족하다.
나의 상사 **은 내 의견을 전혀 존중하지 않고 항상 무시한다.



또는 “동료”를 예로 들어보면   


나의 동료 **은 나를 너무 싫어한다. 왜냐하면 질투와 시기에 눈이 멀어서, 본인에게 결국 해가 됨에도 불구하고 나를 견제하고, 밀어내기에 급급하다. 나는 **이 너무 불편하다.


다른 버전으로 사람이 아닌 “세상”도 해보았는데요.   


세상은 항상 나를 가만 내버려 두지 않는다. 남들은 한 직장에서 잘 먹고 잘 몇십 년간 버티는데, 나는 안정적으로 그 자리에 잊게 두지를 않고 항상 나를 괴롭힌다.



2단계 정말 이 생각들이 진실이라고 생각하는지 스스로 되물어 봤습니다. 당연하게도 모두 진실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 뒤 3단계 “문장 뒤집기를” 아래와 같이 따라 해 보았습니다. 이때 저는 주어를 모두 “나” 로 바꾸어 보았는데요.   


나는 독불장군이다. 동료 직원들이나 협력업체의 의견을 전혀 듣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밀어붙이는 사람이다.


나는 무능력한 사람이다. 왜냐하면 눈앞에 성과에만 급급해서 큰 그림을 읽지 못하며, 심지어 내가 하는 영역에 대한 전문 지식과 경험이 턱없이 부족하다.
나는 내 의견을 전혀 존중하지 않고 항상 무시한다.
나는 나를 너무 싫어한다. 왜냐하면 질투와 시기에 눈이 멀어서, 본인에게 결국 해가 됨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을 견제하고, 밀어내기에 급급하다. 나는 내가 너무 불편하다.
나는 항상 나를 가만 내버려 두지 않는다. 남들은 한 직장에서 잘 먹고 잘 몇십 년간 버티는데, 나는 안정적으로 그 자리에 잊게 두지를 않고 항상 나를 괴롭힌다.



마지막 4단계, 대상에 대한 믿음을 뒤집어보고, 어떤 감정에 변화가 있는지 살펴보았는데요.


저는 이 문장들의 주어를 “나”로 바꾸는 순간 내면 깊숙한 곳에서 엄청난 분노가 올라옴을 느꼈습니다. 그러면서 말도 안 되는 걸 나한테 가르쳐 줬다며, 콘텐츠를 제공한 유튜버와 동료를 믿을 수가 없다고, 엉터리를 가르쳐 줬다며 방에서 길길이 날뛰었습니다.


심지어 종이도 찢어버렸어요.


그렇게 제분에 못 이겨서 날뛰다가 며칠 동안은 또 이 일을 잠시 잊어버렸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퇴근을 하고, 어두운 방안에 혼자 남겨졌을 때, 스스로는 이미 모두 알고 있었습니다.


그 말들이 전부 사실이었다는 걸 말이죠.


예전에 저를 잠시 지도해 주셨던 교수님이 저에게 해주셨던 말이 있었습니다.


내 안의 꽃이 있으면, 세상이 꽃밭으로 보이지만, 내 안의 쓰레기가 있으면 세상이 다 쓰레기로 보인다고 하셨습니다.


제가 만약 이 마지막에 “나”로 주어를 바꾼 문장들이 사실이 아니었다면, 저는 그냥 아무런 감정적 반응도 없었을 겁니다.


그런데 이미 이 문장에 감정적으로 반응을 했다는 것 자체가 진실을 알아차렸다는 신호였던 겁니다.


저는 그 사실을 인정하기엔 처음엔 너무 아파서 외면하고 싶었지만, 이 솔직한 신호에 결국 다시 책상 앞에 앉아 그 문장들을 천천히 다시 종이에 적고 진실을 마주하게 됩니다.


내가 그동안 독불장군이고, 무능력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상사는 실제 어린 나이지만 회사에서 능력을 인정받아 그 자리에 오른 사람이었고, 자기가 잘 모르는 걸 인정할 줄 아는 성숙한 사람이었습니다.


오히려 제가 그동안 갈등이 있었던 동료들의 이야기를 듣지 않았고, 더 나아가 스스로가 스스로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으며, 남들이 말하는 성취와 성공의 기쁨의 산을 오르는데 집중했던 거죠.


저와 갈등이 있었고, 저를 견제하고 질투하는 동료에 대해서는 사실 그냥 무시했을 수 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 질투와 견제를 불편하게 유독 느꼈던 이유는 제 안에 타인을 질투하는 마음이 존재했지만, 그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과거에 저도 새로 들어온 사람을 질투하고 견제했었던 경험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뭐 뭍은 개가 뭐 나무란다고, 저도 그런 경험이 있었지만, 질투하고 견제하는 태도는 수준 낮고, 미숙한 행동이라고 치부하며, 제 자신을 억누르다가, 저와 비슷한 행동을 하는 동료를 보자마자 불편해서 견딜 수가 없었던 겁니다.


나중에 그 동료와 대화를 해보니 제가 알지 못하는 다른 히스토리가 있었습니다. 제가 느끼기엔 그 동료와 전혀 포지션이 달라 협업해야  하는 대상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동료 입장에선 자기와 유사한 포지션 심지어 자기가 잘 모르는 분야의 전문 포지션이 들어오다 보니 위협으로 느껴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를 경쟁자로 인식했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습니다.


그건 그 동료의 잘못이 아니었어요. 애초에 오해가 생길만한 포지션을 회사에서 잘못 뽑은 것이었던 거죠.

더 나아가 세상이 나를 괴롭게 한다고 생각했던 것 또한 당연히 사실이 아니었어요.


이 말의 의미는 삶에서 일어났던 모든 일이 전부 제 탓이었다고 말하는 게 아닙니다. 불가항력적인 일들이 훨씬 많았어요.


다만 길을 잃은 단테처럼 방황하던 그 순간에도 저에게도 삶에 너무나 감사할만한 수호천사 같은 인연들이 많았습니다. 저는 그분들의 도움 덕분에 항상 고비를 잘 넘어가고 지금까지 살아있을 수 있었어요.


그런데 너무 막연한 두려움과 겁에 질려서 스스로를 마주할 용기가 나질 않으니, 제가 저 자신을 온전히 바라보지 못하고, 절대적인 적이 있는 것 마냥 문제의 원인을 외부로 돌렸던 겁니다.


뭐 이밖에도 수많은 잘못된 믿음들이 있었다는 걸 발견하게 됩니다.


동료가 나를 경쟁자로 생각해서 언제든 나를 공격할지 모르니, 내 약점인 감정을 드러내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태도도, 알고 보면 나 자신이 나의 연약한 모습마저도 인정하고 포용해주지 못했던 거였 거구요. 타인을 불신하거나, 평가하는 태도는 모두 제 내면 깊숙한 곳에 연결된 스스로에 대한 평가였던 겁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이상 저 자신을 어두운 숲길 앞에 던져두는 이 막연한 두려움들을 가지고 싶지 않았어요.

그러면서 매일 퇴근해서 밤에 혼자 이 막연한 두려움들을 하나씩 글로 적어보고, 다시 지켜보고, 감정이 올라오는지를 몇 개월간 반복하게 됩니다.


이렇게 조금씩 제 눈앞을 가리던 뿌연 안개 같은 두려움과 잘못된 신념들을 걷어내고 나니, 다들 그냥 그저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었을 뿐이었어요.


어느 누구도 원망하고 미워해야 할 대상이 없었습니다.


물론 그 당시 회사의 상황이 조율해야 하는 크고 작은 문제들이 혼재되어 있었던 건 맞지만, 그렇게 밤마다 우울과 비탄 애통함에 빠져서 울고 있을 정도로 제 상황이 나쁜 건 아니었던 거죠.


그러면서 문득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하게 됩니다.


-지금 당장 부양해야 하는 가족이 있는가?


아니오

-지금 당장 갚아야 할 빚이 있는가?


아니오

-지금 이곳에서 내가 반드시 쌓아야 하는 경력이 있는가?


아니오


-나는 지금 현재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즐거운가?


아니오


-내가 지금 이 자리에 굳이 있어야 하는 이유가 있는가?


답변은 정말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모두  “아니요”였습니다.



그리고 더 한 발짝 나아간 질문을 스스로에게 했습니다.


그렇다면 굳이 있어야 할 이유가 없는 자리에서 무엇 때문에, 무엇이 두려워서 나와 맞지 않는 곳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었는가?


제가 가장 처음으로 이 질문에 한 답변은


“사회적 기대에 충족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 나이대에 직장에서 어느 정도 직급과 연봉을 가지고 있어야, 나잇값을 한다고 인정받을 수 있어서, 들어온 것이었죠.


그럼 누가 그 기대를 충족했을 때 가장 기뻐할 것 었는가? 


라고 구체적으로 물어보니, 제 답변은 "부모님"이었습니다.


나이가 먹어가는 게 보이는 부모님의 걱정을 덜어드리고 싶어서, 사회적으로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고 있음을 인정받고 싶었던 겁니다.


그럼 다른 방법도 있을 텐데 왜 부모님은 내가 직장에 있기를 희망하셨냐라고 물으니, 부모님이 예전에 의류공장 하다가 망한 경험이 있었고, 또 어렸을 때부터 나는 가만히 있어도 눈에 띄는 사람이니, 사람들 눈에 드러나지 말라고 평범하게 어울려 지내라고 말씀하셨던 것이 떠올랐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그 부모님의 기대와 사랑에 충족하고 싶어서, 스스로의 일이 아니라 직장에 굳이 들어왔던 겁니다.


그리고 이 선택에는 가장 중요한 제 자신이 빠져 있었어요.


이 질문들에 스스로 답변을 하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저는 정말 제 자신을 위한 이기적인 선택을 하기로 결심합니다.


바로 퇴사를 하기로요.


아무런 사업 모델도, 뭐 모아둔 돈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일단, 있어야 할 이유가 없는 그곳에서 더는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아, 사표를 던집니다.


그러면서 제 자신에게 약속을 하나 합니다.


설사 온 세상 사람들이 내가 내린 결정으로 인해 손가락질하고 나 자신을 미워한다 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마지막에 마지막 순간까지 내가 나 자신과 함께 하겠다고 말이지요.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제가 글의 원문에서 스스로에게 왜? ~했는가를 거의 5번 이상 반복합니다.


이 방법은 자기 자신에게 솔직해 지기 위해서도 굉장히 효과적인 방법이기도 하지만, 실제 비즈니스 업계에서는 이건희 회장의 5 WHY 기법이라고 해서, 모든 문제 상황에 대해 5번만 질문하고 답변하게 되면 웬만한 문제들의 본질에 접근할 수 있는 방식으로도 유명합니다.


한번 참고하셔서 삶의 반복되는 다양한 문제에 시도해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럼 한 주간 무탈하고 평온하시길 바랍니다! 



이상입니다.



김고래 드림. 




제가 중간에 설명드린 진실을 마주하는 방법을 알려준 써니즈님의 원본 콘텐츠를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youtu.be/_82ozdWIlkY



이 이야기는 매주 토요일에 개인 이메일로도 발행해 드리고 있습니다. 혹시 이메일로 받아보길 희망하시면 아래 링크로 접속해 주세요!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208082


이전 05화 어두운 숲길 앞에서 눈을 뜨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