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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GOING HOME 0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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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고래 Dec 09. 2022

돈 뒤에 숨은 내 마음을 알아차리다.

비우기 시리즈 8.

저는 직장 생활을 하는 4년 동안 다양한 일들을 해왔지만, 주로 브랜드 기획과 연관된 일들을 담당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회사에 재직하던 작년까지만 해도 주변으로부터 굉장히 많이 듣는 이야기가 있었는데요.


“개인 사업을 하면 정말 잘할 것 같다” 또는 “돈을 투자할 테니 함께 일해보지 않겠냐”였습니다.


특히 제가 이직을 고려하거나, 실제 퇴사를 할 때 저를 긍정적으로 봐주신 협력업체 및 클라이언트 들로부터 제안을 받곤 했었는데요.


지금 생각해보면 제 가능성을 알아보고, 신뢰를 먼저 보내주신 거였기 때문에, 너무나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 몸과 마음에 여유가 없었던 저는 이런 이야기들을 들을 때마다, 거절하거나, 내가 무슨 사업이냐며 부인하기 바빴는데요.


그때 당시에 제가 가장 많이 댔던 핑계가 바로 “돈”입니다.


누군가, 저보고 이제는 내 사업을 해도 되지 않겠냐고, 말하면,


“야! 이 분야가 겉으로 보긴엔 뭔가 허울 좋아 보이고, 돈을 잘 버는 것 같지만, 그만큼의 위험부담과 리스크 주기가 얼마나 큰 줄 아냐?  최소 사업을 안정적으로 시작하면 몇억 정도 있어야 하는데, 나는 그런 돈이 없어."


라며, 제 가능성을 봐준 사람들을 되려 사업에 대해 무지한 사람 취급하거나, 허황된 말 하지 말라며 오히려 되받아 쳤고요.


반면 “그럼 내가 돈을 투자할 테니, 같이 일해보지 않겠어?”라는 식의 제안이 오면,


처음엔 너무 기뻤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시간이 조금 흐르면  이 제안을 제 쪽에서 거절하거나, 상대방과의 관계가 흐지부지 마무리되는 경우가 빈번했는데요.


이렇게 초기 미팅이 결렬되거나, 제가 제안을 먼저 반려할 때마다, 주로 했던 생각은


“애초에 신뢰할 수 없는 관계니, 이렇게 된 거야. 잘된 거야! “


라며 문제의 원인을 먼저 신뢰를 보낸 상대방 탓으로 돌리기 바빴는데요.


이런 유사한 상황들은 제가 직장 생활을 하는 내내 비슷한 패턴을 보이며 반복되었지요.


그러던 중, 과거 크라우드 펀딩이라는 플랫폼을 활용해, 제가 담당하던 브랜드들을 시장 테스트를 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이때 제 시선을 단박에 사로잡는 스몰 브랜드를 발견하게 되는데요.



저는 이 브랜드가 너무 인상 깊었어요.


우선 제가 활동하던 비슷한 시기에 동일 플랫폼에서 수많은 이들의 지지를 받으면서 등장하기도 했었고요. 무엇보다 제가 브랜드를 운영하면서, 궁극적으로 나아가고 싶어 했던 방향성과 이 브랜드의 결이 너무 잘 맞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순식간에 이 브랜드에 취향을 저격당했고, 팬이 되어버립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제가 주로 활동하던 플랫폼에서 스몰 브랜드 대표 및 기획자들을 초대하는 행사를 열었는데요. 이때 저는 이 브랜드를 운영하는 대표님을 처음으로 뵙게 됩니다.


그때 당시엔 정신이 없어서 서로 이야기를 나눌 기회는 없었어요.


하지만 속으로 “아! 저분이 기획력, 디자인력, 생산력을 모두 두루 갖춘 이상적인 스몰 브랜드를 만든 사람이구나!” 하며, 눈길을 떼지 못했었지요.


나중에 알고 보니, 제가 대학교를 처음 들어갔을 때 굉장히 좋아하고 인상 깊게 보던 브랜드의 디자인 총괄을 하시던 분이 독립해 만든 브랜드였습니다. 어쩐지 디자인이 뭔가 익숙했고, 스몰 브랜드라고 하기엔 너무나 연륜이 깊어 보였지요.



이렇게 작지만, 내공이 느껴지는 이 브랜드와는 달리, 그 당시 제가 담당했던 브랜드는 위태로웠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스몰 브랜드였지만, 속으론 수많은 이해관계와 이슈가 복잡하게 얽혀 있었는데요. 결국 이해관계를 조율하지 못하고 갑자기 운영이 중단되었습니다.


그 당시에 저는 이대로 포기하기엔 너무 아까웠어요. 왜냐하면 짧은 시기였지만, 이 브랜드를 지지해 주시던 분들의 요청도 있었고, 제가 워낙 애정을 가지고 담당하던 브랜드였기 때문입니다. 비록 상황은 열악했지만, 도저히 포기가 안돼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짧은 시간 내에 후속 연계 브랜드를 만들고자 애썼는데요.

하지만 제 노력과는 무관하게 결국 그 일에서 저도 손을 떼어야 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때 당시의 저의 충격과 분노는 스스로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컸어요. 그 상황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애초에 저는 뭐 이 일로 떼돈을 벌고 싶었거나,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싶었던 야망은 없었어요. 심지어 전 대표도 아니었고요.



다만, 아직 보여줄게 많은 제 안의 순수한 열정이, 존중받지 못한 상태로 일이 종료되었다고 느껴져  화가 났던 겁니다.



그래서 한몇 년간은 이직을 위해 포폴을 정리하려고 이 일을 들여다볼 때마다 울컥울컥 화가 올라와 괴로웠지요.


이런 저의 상황과는 달리,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이 브랜드는 혼자 운영함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탄탄한 내공과, 방향성을 가지고 꾸준히 승승장구하는 것처럼 보였어요.


저는 이 브랜드를 보며, 너무 존경스럽고, 멋지다고 느꼈습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이런 생각들이 들끓었지요.


“내가 아무리 노력했어도 주변 환경이 뒷받침되지 않아, 나는 이렇게 우울하고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데, 저 사람은 어쩜 저렇게 잘 나갈까. 어쩜 이리 멋진 제품을 꾸준히 만드는 걸까?”


“도대체 뭐가 부족했길래, 이 사람과 나는 서로 이렇게나 다른 환경에 있는걸가? “


라며, 끊임없이 이 브랜드의 대표님과 저를 비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나중엔 저 조차도 잊고 있었던 제안의 결핍과 연결 짓기까지 했는데요.


“그래! 역시 입시 미술 정규 과정을 거쳐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한 사람이라, 나와 다르긴 다르네, 기본기가 없어서 내가 이렇게 된 건가? 결국 다 내 탓인 건가? 나는 왜 이리 박복하지?”라고 자책하기에 이릅니다.


저는 과거 집안 반대로 인해, 한국에서 미대를 들어가기 위해 치르는 입시 미술 정규 과정을 밟지 못한 상태로, 대학에 입학하게 됩니다. 그런 후 그림에 대한 기본기가 부족한 상태에서 졸업 후 디자이너 생활을 시작했었는데요.


반면 이 브랜드 대표님은 저와 달리, 한국에서 미대를 가기 위 거쳐야 하는 코스를 순차적으로 밟고 디자이너가 된 그림에 대한 기본기가 탄탄한 분이었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인정하는 기본기를 제대로 밟지 못하고 시작했기에, 스스로를 은연중에 뭔가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어설프게 일을 하는 사람 같다고 느끼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다만 평소엔 저 조차도 이 사실을 잊고 지내고 있었지요.


그런데 일이 잘 안 풀리기 시작하면서, 내가 아무리 노력했어도 결국 가질 수 없었던 현실을 살고 있는 이 브랜드 대표님과 저 자신을 끊임없이 비교하는 과정에서 저 조차도 잊고 있었던 결핍과 열등감까지 마구 함께 튀어나오게 된 겁니다.


이런 비교하는 마음은 제가 다른 회사에 소속되면서 일시적으로는 없어진 것 같이 보였습니다.


그러나 제가 29살이 끝나갈 무렵, 또 디시 예상하지 못한 외부 이슈로(구조조정)  마음이 불안정해 지자, 다시 이 비교와 질투가 들끓기 시작했던 것이죠.


이 시기에 저는 마치 뿌연 안개가 껴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두운 길을 혼자 걷고 있는 것 같았어요. 저는 이 길에서 항상 목이 마르고 배가 고팠고요.



이런 상태에서 처음으로 이 대표님께, 먼저 일을 함께 하고 싶다고 연락을 드렸었는데요.



겉으론 존경심을, 속으로는 질투와 열등감의 칼날을 갈고 있던 제가 그 당시에 이분과 함께 일하지 못했던 건, 정말 다행이면서도 당연했던 것 같습니다.


아마 그 당시에 이 분이 저를 받아 주셨다면, 제 스스로가 감당하기 어려운 이 질투와 분노의 칼날을 또 타인 탓으로 돌렸을지도 모르지요.


이후로 그분과의 관계는 거기서 끝난 줄 알았습니다. 사실 또 뵐 일이 없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정말 인생은 알다가도 모르겠다고 하는 말이 있듯이, 이렇게  2년 만에 또 퇴사를 하는 시점에 회사 근처의 카페에서 이 분을 뵙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지요.



심지어 대표님을 앞에 두고, 한다는 소리가


“오랜 시간 당신을 질투하고 있었습니다.”라는 뜬금없는 고백이었는데요.


이왕 고백한 김에 저는 솔직하게 그냥 그동안의 제 심경이 어떠했는지 털어놓았습니다.


“대표님. 저는 원래 누굴 질투하는 일이 드뭅니다. 특히 외모나, 학벌, 집안 재력 이런 거는 질투를 해본 적이 없어요. 상대의 환경이나 조건은 저랑 애초에 무관하다고 생각하기도 했었고, 이런 면에서는 제 스스로가 꽤나 쿨하다고 생각했는데요."


"그런데 제가 인생을 살면서 질투한 손가락에 꼽히는 사람 중 한 명이 대표님입니다.”


“왜냐하면, 제가 너무나 간절히 갖고 싶어, 얻으려고 애썼지만 결국 얻지 못한 모든 걸 갖추고 계시니까요. 굉장히 오랜 시간 질투가 나면서도, 동시에 대표님이 하시는 일을 존경했습니다.”



이렇게 한참을 제 이야기를 듣던 대표님은 



“그럼, 이제 하시면 되죠. 고래님만의 일을 시작하시면 돼요!”



라고 너무 간단명료하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여기서 또 부인을 하게 됩니다.


“에이 제가 어떻게 해요. 저는 돈도 없는걸요”


그랬더니 대표님이


“저는 처음 브랜드를 시작할 때 친구랑 둘이 몇백만 원으로 시작했고, 지금 하는 신규 브랜드도 많은 자본을 가지고 시작한 게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첫 펀딩을 할 때는 달성 금액이 예상하는 수준 아래일까 봐 굉장히 많이 걱정을 했었고요.”


“하지만요. 돈은 사실, 무언갈 시작하고, 시작하지 못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되지는 못해요”


“돈이 있어서 사업을 하고, 돈이 없어서 사업을 시작 못하는 게 아니에요.”


오... 저는 이 말을 듣고 이렇게 소액을 들여 브랜드를 시작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에도 놀랐지만, 더 놀랐던 건, 그동안 돈 뒤에 숨은 제 솔직한 마음이었습니다.


그동안 돈이 없어서, 투자자가 신뢰가 안 가서, 등등의 이 핑계 저 핑계를 대고 있었지만, 대표님의 이야기를 듣고 비로소 저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어요.


돈이 없어서 내 일을 시작하지 못한 게 아니라, 나 자신을 스스로 신뢰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는 걸요.


그리고, 대표님이 가볍게 말씀하신 것처럼, 정말 내가 의지만 있다면, 뭔갈 다 갖추고 시작하지 않아도, 정말 가볍게 그냥 일단 시작을 하면 되는 거였던 겁니다.


그런데 막연한 두려움, 특히 핑계대기 좋은 돈이라는 매체 뒤에 숨어서 제 자신에 대한 불신을 숨기고 심지어 그걸 진실이라고 믿기까지 했던 겁니다.


더 나아가  제가 이 대표님의 모습이  왜 저에게 불편하게 느껴졌는지도 알아차리게 됩니다.


단순히 돈을 많이 벌고, 성공하고 싶어서 사업을 시작하는 게 아니라 결과를 두려워하지 않고, 진심으로 자신이 즐거운 일을 하며,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는 대표님의 모습이 너무 빛이 났어요.


왜 사람이 어두운 곳에 있다가, 갑자기 빛이 반짝하고 나타나면, 순간 적응이 안 돼서 눈이 불편한 것처럼 이 사람의 빛나는 순수한 열정이 순간 불편했던 겁니다.


비로소 퇴사를 하는 날, 회사 근처 카페에 앉아 이 빛을 마주 보고 있자, 저는 금세 이 빛에 익숙해졌습니다.


그리곤 동시에 희미하지만 내 안에도 그 빛이 있음을 알게 되었지요.


굉장히 오랜 시간 내 인생이 마치 한 치 앞이 안 보이는 안갯속에 있다고 느껴졌는데, 그 어두운 길 위에서  작은 빛을 보게 된 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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