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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GOING HOME 0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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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고래 Nov 18. 2022

어두운 숲길 앞에서 눈을 뜨다.

비우기 시리즈 5.


단테의 [신곡]이라는 책 혹시 읽어 보셨나요?



작년까지만 해도 제가 아는 단테는 SBS에서 반영한 화제의 드라마 펜트하우스의 주인공 중 하나인 주단테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다 작년에 제가 번아웃을 회복하던 시기에 평소 저에게 아낌없는 인생의 조언을 해주시던 선생님께서 인간을 이해하고, 저 자신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책 몇 권을 추천해 주셨습니다.


그중 하나가 단테의 [신곡]이라는 책인데요. 이 책의 주인공이자, 저자인 단테 알리기에리는 13세기경에 실존했던, 이탈리아의 유명한 시인이자 작가입니다.


이 이야기는 그가 직접 주인공으로 등장해, 지옥, 연옥, 천국을 모두 여행하면서 알고 깨달은 것들을 픽션의 형태로 서술한 중세시대 대표 문학작품입니다.


첫 시작은 단테가 부활절 전날 저녁에 잠시 잠이 들었는데, 눈을 떠보니 처음 보는 어두운 숲길 앞에서 깨는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이때 단테가 서있던 길은 기쁨의 산으로 올라가기 위한 초입인데요. 여기서 설명하는 기쁨의 산이란, 인간이라면 누구나 올라가고 싶어 하는 성취, 성공, 욕망의 산으로도 해석이 됩니다.


그런데 이 초입 길은 굉장히 어두운 숲 길이고, 심지어 금방이라도 단테를 물어뜯을 기세로 위협하는 맹수들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이 낯설고 무서운 길 위에서 단테는 부들부들 떨면서 도대체 내가 왜 이곳에 있는가를 고민하는데요.



단테의 이런 상황이 저는 남일 같지가 않았습니다.


마치 사회에서 인정받고 사랑받기 위해 애쓰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삶의 방향을 잃고 번아웃에 걸려 방황하고 두려워하던 제 모습과 너무 유사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4년이라는 직장생활 기간 동안 총 4번의 이직을 했습니다.


이직의 사유는 자의도 있었고, 타의도 있었어요. 굉장히 다사다난했지만 그래도 저는 저의 과정이 굉장히 자랑스러웠습니다.


적어도 제가 결과를 내왔던 방식들은 전부 온전히 몸으로 부딪혀가며 체화해서 습득한 것들이었고, 그 과정에 있어서는 어떠한 과장도 거짓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 당시에 상황이 열악하고 혼란스러웠던 것과는 별개로 삶이 제게 주는 미션들을 부정하거나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항상 직면하면서 그 순간에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지요. 덕분에 실제 대외적인 성과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번아웃을 겪기 직전까지만 해도 이 사실을 전혀 자각하지 못했어요. 그 당시엔 오히려 제가 초라하고, 부족하다고 느껴졌습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정하는 사회적 기준에 제 커리어가 부합하지 못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에, 제가 면접을 가면 사람들이 항상 공통적으로 하는 질문들이 있었어요.


“정말 그걸 너 혼자 다했냐"


“그런데 이렇게 다양한 일을 하고, 한 직장에 오래 있지 못한 건 끈기 부족하거나 전문성이 부족한 거 아니냐.”


처음엔 저에게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해 제 온 과정을 제대로 단계화해서 낱낱이 포트폴리오에 정리해서 보여줬어요. 그러면 진짜 그 일을 제가 한 건지를 알아차리고 인정해 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이건 엄청난 착각이었고, 에너지 낭비였어요.


이미 그 질문들을 했던 사람들은 본인이 생각하는 전문성의 기준은 한 직장에서 오래 일한 사람이 전문가라는 인식이 강했습니다. 또한 자신들이 저를 어떻게 활용해서 얼마 큼의 수익을 낼 수 있을지만 궁금했던 거지, 제 과정에는 애초에 관심도 없었습니다.


그냥 이런 사람들도 있겠구나 하고 넘길 수 도 있었겠지만, 제가 사회에서 그 당시에 만났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기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저의 부모님도 그렇게 생각하셨어요.


저보다 사회생활을 오래 한 다수가 이렇게 말을 하다 보니, 저도 그들이 말하는 그 전문성이라는 기준에 부합해야 한다고 착각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저의 떳떳했던 과정들은 모두 경력이 짧고 이직을 자주한 부끄러운 이력이 되었지요. 이로 인해  한동안 저는 저 자신을 스스로 부족한 사람 취급을 하게 됩니다.


어떻게 보면 제가 번아웃에 걸린 수순은 너무나 당연했어요. 애초에 저와 무관한 사회적 기준에 저를 맞추고 그 길을 따라가려 했으니 맨날 뼈가 부러지고 근육이 터질 수밖에 없었던 거죠.


또한 제가 직장생활을 하던 당시에는 저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 사회에서는 이런 말들로 포장했습니다.


“아프니까 청춘이야."


“원래 인생은 애쓰면서 사는 거야, 고통 없는 성취는 값지지 않아. 그건 사기야”


“남 탓하지 마, 니 정신이 나약해서 그런 거야. 모든 건 정신으로 극복할 수 있어”


라는 식의 이상한 괘변들이 그 당시에 난무했었고, 다른 대안을 본 적이 없던 저는 필터링 없이 이 말들을 모두 믿어버립니다.


심지어 그 길을 오르다가, 번아웃이 왔음에도 불구하고, 생각이 크게 바뀌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저 자신을 아프게 했던 그 어둡고 무서운 길이 그래도 다수가 가니, 안전할 거라고 착각하면서 되돌아가는 잘못을 번복하게 됩니다.


결과는 당연하게도 불행했어요.


심지어 저는 그 길에서 제가 떠올리고 싶지 않았던 트라우마를 다시 마주하게 됩니다.


제가 29살 때, 정말 저의 잦은 이직이 스스로 부끄러워 마지막 직장이기를 절박하게 희망하면서 들어갔던 조직이 있었습니다.


그 회사에서 저는 들어간 지 2주 만에 이 회사가 그다음 해에 대규모 구조조정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재무제표를 보고 알아차리게 됩니다. 그때 저는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빨리 도망갈 것인가, 아니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볼 것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하게 됩니다.


그러다 후자를 선택했어요. 왜냐하면 제가 그 앞전 직장생활에서 풍파를 겪으면서 알고 깨달은 것들을 공유하면, 이 조직의 위기를 극복하는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굉장한 내부 저항과 역경이 있었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이사진 앞에서 제가 분석한 문제의 근본 원인과 대안을 공유할 수 있었고, 실제로 받아들여지는 데 성공합니다.


다만 문제는 구조조정이 제 예상보다 너무 빨랐던 겁니다. 그 보고서를 제출하고 2주 만에 전체 인원의 60%가 나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에 더 이상 제가 할 수 있는 게 없었어요. 그래서 희망퇴직을 선택하게 됩니다.


저는 이 일이 그냥 그때 해프닝으로 끝난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2년 뒤 번아웃을 겪으면서 두려움에 떨며 저를 안전하게 해 줄 거라고 믿고 들어간 새직장에서, 너무나 똑같은 상황을 반복해서 마주하게 됩니다. 처음엔 데자뷔인 줄 알았어요.


회사에서 그 당시에 제게 요구했던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제가 만약 회사에서 희망하는 대로 이 일을 수행하면, 과거에 제가 퇴사한 조직처럼 다음 해 안에 구조조정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던 겁니다.


그 당시 저는 거의 발작 수준으로 제 상사와 동료들을 설득하기 시작했어요. 또다시 그런 일을 겪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들어 같던 회사는 포지션만 같았을 뿐이지, 기존에 해오던 업태와 전혀 다른 분야의 일을 담당하던 곳이었습니다. 업태가 다른 직종들끼리 커뮤니케이션을 한다는 것은 국가가 다른 것과 같습니다.


서로 너무나 큰 문화적 차이를 가지고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서로 다른 국가의 언어를 가진 사람들끼리 처음에 만나서 아무리 대화를 시도하려 해도 서로가 보는 관점 차이가 너머 커서 한계가 있었던 겁니다.


그 당시에 제 주변 상황을 가까운 지인들에게 이야기했을 때 왜 복잡하게 그냥 하라는 일 하면 되지 뭐 네가 대표도 아니면서, 왜 거기 개입을 하냐는 핀잔을 듣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구조조정으로 갈 수밖에 없는 너무나 뻔한 절차를 밟고 있는 그 일을 진행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그때 당시에 제가 선택한 행동은 그냥 일을 안 하고 버티기였습니다. 


그걸 설명해서 설득을 시키기엔 시간이 너무 촉박했고, 그렇다고 퇴사를 하기엔 어렵게 들어왔는데 용기가 안 났습니다. 그래서 일을 하지도 못하고, 그 당시에 할 수 있는 최선이 일단은 버티기였던 겁니다.


결과는 너무나 당연하게도 상사와 동료 간의 갈등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어요.


이로 인해 저는 몇 개월 동안 정말 매일 밤 집에 와서 불을 끄고 바닥에 누워서 혼자 엉엉 울었습니다.


“내가 무슨 죄를 지어서 또 이런 상황 속에 놓이게 됐는가? 왜 내가 가는 곳마다 이러는 거야”

“그래! 내가 이 업종을 선택한 것 자체가 애초에 잘못이었다. 내가 이 업을 또 선택해서 이런 고통을 또 겪고 있다”

“왜 내 상사들은 이걸 굳이 겪어야만 아는가? 이 자체가 얼마나 무책임하고 무능한 말인가! “

“왜 내 동료들은 다 같이 나빠질 걸 모르고, 서로를 견제하고 미워하기 바쁜가?”


불 꺼진 방 안에서 혼자 매일 이런 자기 자책에서 시작해 상사 탓 동료 탓 다시 자기에 대한 원망 등 무한정의 절망의 루트를 탔는데요.


매일 밤 감정이 흘러넘치다 못해서 주체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저는 막상 회사에 가면 티를 안 냈습니다.


사실 티가 나긴 났겠지만, 최대한 감정을 드러내려고 하지 않았고, 더 이상 누군가에도 도움을 요청하길 포기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때까지만 해도 일을 하는 과정에서 감정을 드러낸다는 건 굉장히 미숙한 행동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지금도 생각해보면, 기분이 태도가 되는 건 별로입니다. 여기서 기분이 태도가 된다는 건, 내 기분이 상한다고 전혀 무관한 사람한테 화풀이를 하는 것들, 또는 아무 데서나 내 감정이 제일 중요하다고 여기면서 분출하는 건 타인에게도 저에게도 좋은 방식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때는 이 정도 수준이 아니라, 일하는 과정에서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고 드러내는 것 자체가 공사 구분을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엄격하게 누르고 있었습니다.


이러다 보니, 회사에서는 괜찮은 척, 집에 와서는 주체하지 못하는 애통 비탄 분노 우울의 루프에 빠지니 사람이 원래도 번아웃 때문에 아픈 사람이었는데, 더 아프게 됩니다.


이로 인해 거의 출근과 퇴근을 매일 택시에 실려가게 되었어요. 회사 밖을 나와서 걸을 힘도 없었고요. 당연히 돈이 술술 빠져나가게 되고, 내가 힘든 것에 비해 통장 잔고가 비었음 보며, 또다시 허망함을 느끼는 나날이 지속되었습니다.


이걸 극복하려고 명상도 하고, 요가도 하고, 안 해본 운동도 하고 여러 가지 방법을 다해봤지만 소용이 없었어요.


이미 기쁨의 산을 오르는데 정신이 팔려 의식적으로 깨어있지 못한 사람에게는, 아무리 좋은 것들을 눈앞에 가져다주어도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행위와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어느 날 정말 회사에서 도저히 분노를 참을 수 없는 일이 발생하게 됩니다.


사무실에서 소리를 지를 수가 없어서, 자리를 박차고 나와 회사 근처에 있는 카페로 도망을 갑니다.


그 카페는 저만의 아지트였어요. 일단 회사랑 가까운데 회사 사람들이 잘 안 들어오는 곳이었고, 그 지역에서는 보기 드문 대형 카페였습니다.


공간 자체가 천장이 높고, 사방으로 탁 트여있으며, 언제든 시선을 돌리면 개방감 있게 트여있는 창문 너머로 푸르른 나무들을 볼 수도 있었기에 정말 좋아는 공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만 도망 나왔을 거라고 생각한 공간에서 타 부서 동료를 발견하게 됩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었지만, 제가 소속된 부서뿐만 아니라, 회사 자체가 격동의 시기를 겪고 있었기에 그 동료가 소속된 부서도 굉장히 어수선한 분위기라, 그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동료도 도망쳐 나왔던 겁니다.

그 동료는 타 부서지만, 항상 저에게 먼저 근황과 안부를 물어주며 소소하게 저에게 맛있는 것들을 가져다주고 다정하게 대해주는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처음에 이 다정함이 너무 낯설었어요. 이미 사람에 대한 신뢰가 너무 떨어져 있던 상태라 혹시 나한테 바라는 게 있을지도 모른다고 의심도 했습니다. 하지만 점차 이 다정한 행동들이 진심임을 알게 되면서 이 동료가 너무 고마웠어요.


다만 쉽게 제 힘든 감정을 먼저 꺼내지는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저의 사회에 대한 한풀이가 이 동료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 같았고, 가뜩이나 힘든 사람한테 짐을 더 지워주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날 너무 고맙게도 제 안 좋은 표정을 읽었는지 그녀가 먼저 다정하게 안부를 물어봐 주었어요. 그래서 솔직하게 처음으로 제 상황과 감정을 털어놓게 됩니다.


제 이야기를 마치고, 저는 그 동료에게 고마움과 동시에 미안하다고 거듭 사과를 했습니다.


본인도 힘들 텐데 내 부정적인 감정을 이야기했다고요.


그랬더니 동료가 그러는 겁니다.


일단 자기는 타인의 감정에 영향을 받지 않으니 괜찮다고, 그리고 미안해할 필요가 없는 게  일하는 과정에서 감정을 가지는 것, 그리고 그걸 드러내는 건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겁니다.


심지어 감정을 억누르지 말고, 당당하게 드러내라고 했습니다.


모든 감정은 그 이유가 있기 때문에 수용해 주어야 한다면서 말이지요.


저는 31년을 살면서 저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을 처음 봤습니다.


처음엔 잘못 알아들은 줄 알았고요. 그래서 그러면 내가 일하다 화가 나면 당사자에게 소리를 질러야 한다는 말이냐고 되묻기까지 했습니다.


그랬더니 동료는 필요하면 그렇게 해야 한다고 했어요. 심지어 우는 게 필요하면 엉엉 울어도 된다고 했습니다.


동료의 말이 저에겐 너무나 큰 컬처 쇼크였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성장해 오던 과정에서는 감정은 불필요한 것, 미숙한 것, 나약한 것인데, 그 나약한 존재들에도 다 이유가 있고 존중해 줘야 한다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동료가 타인의 부정적인 반응에 영향을 거의 안 받는다는 것도 너무 놀라웠어요.


저는 그 당시까지만 해도 타인의 부정적인 감정에 너무 민감하게 영향을 받았고, 눈치를 보는 일이 잦았습니다. 그래서 저 때문에 일어난 잘못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동료나 상사가 불편한 내색을 하면 거기에 저도 덩달아 힘들었고, 혹여나 동료가 불평불만을 하면, 그게 너무 버거웠어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감정을 수용할 수 도 있고, 동시에 타인의 감정에도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있는지 비법을 전수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동료가 자신은 마음공부를 하고 있다고 했어요.


제가 명상을 하고, 요가를 하는 건 좋아했지만, 그 마음공부라는 단어가 그 당시엔 굉장히 부담스러웠어요.

왜냐하면 뭔가 도를 믿습니까와 같이 사이비, 미신 같은 느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동료는 일단 종교가 없고 그 누구도 믿지 않지만, 그냥 자신의 마음을 돌봐 주고 알아차리기 위해 공부를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저에게 참고할 만한 서적이나, 마음 챙김 유튜버 몇 명을 소개해 주었는데요. 덕분에 살면서 처음으로 제 몸이 아닌 제 마음을 챙기는 방법에 대해 알아가기 시작합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까지 입니다.


오늘 유독 글이 길었지만, 그럼에도 꼭 한번 이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꺼내고 싶어서 적다 보니, 분량 조절 실패로 좀 길어졌네요. 


그럼 저는 다른 이야기로 또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오늘도 무탈하고 평온한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김고래 드림. 



제가 글 서두에 적어둔 단테의 [신곡]은 굉장히 다양한 해석이 존재합니다. 어떤 사람은 신화적 관점에서 해석하기도 하고, 가톨릭의 관점에서 하기도 하는데요. 


저는 그중에서도 단테의 여정을 성취와 성공에 대한 열망을 쫒다, 삶의 방향을 잃은 사람이, 자신을 다시 되찾고 회복하는 과정에 빗대어 풀어낸 [어두운 숲길을 단테와 함께 걸었다]를 추천드립니다. 


저자는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라이프 코치 중 하나인, 마사 벡이 쓴 책으로,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정말 많은 참고를 했고, 동시에 저의 번아웃 극복 과정에 큰 도움이 된 책입니다. 


혹시 궁금하시다면 아래 링크를 참고해 주세요.


http://www.yes24.com/Product/Goods/114895634




얼마 전, 그동안의 저의 과정들을 저만의 서사로 한번 정리해 보았습니다. 


혹시 제가 어떤 일들을 해온 사람인지 궁금하시다면, 아래 링크를 참고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https://url.kr/dmkgb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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