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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GOING HOME 0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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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고래 Nov 11. 2022

가던 길을 되짚어 보다.

비우기 시리즈 4.

저의 가장 오래된 취미는 자전거 타기입니다.


거의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현재까지 쭉 타고 있으니, 대략 20년 정도 되었습니다. 이 취미를 가지게 된 계기는 제가 거주하는 지역의 인프라 덕인데요.


4살 때부터 현재까지 제가 사는 지역엔 북한산 자락부터 시작해서 경기도 고양시를 지나, 임진각까지 연결된 매우 큰 하천과 자전거 도로가 정비되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렸을 때부터 심심해서 그냥 갈 수 있는 만큼 탔을 뿐인데, 거의 한 번에 쉬지 않고 18km를 가뿐히 타게 되었지요.


저는 자전거는 오래 탔지만, 자전거에 대해서는 아직도 잘 모릅니다. 왜냐하면, 제가 키가 커질 때마다 아버지가 어디서 새로운 자전거를 구해오셨기 때문입니다. 그중 가장 오래 탄 자전거는 제 키가 한창 자랄 시기를 넘긴 10대 후반에 접한 자전거였는데요. 거의 20대 중반까지 탔으니 10년 정도 탔습니다.


이 자전거는 속도를 내기 위해 특화된 자전거였습니다. 그래서 다른 자전거들 보다, 차체가 가볍고 기어 조절이 다양하게 되었는데요.


덕분에 저는 속도감을 즐기는 진정한 라이더로 성장하게 됩니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풍경을 오래 본다거나, 제대로 쉬는 것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그냥 최대한 빨리 남들보다 멀리 가고 싶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엔 속도를 내기 위한 자전거를 타서 그런 것도 있지만, 저랑 같은 도로를 달리는 다른 사람들이 워낙 빨리 갔기 때문에 저도 그렇게 가야 하는 줄 알았습니다.


또한 제가 달리던 도로는 길이 좁은 것에 비해 너무 빨리 달리는 자전거들끼리 밀집되어 있다 보니, 서로 부딪혀 사고가 잦았습니다.


이때 가볍게 옆으로 넘어지는 게 아니라 대부분 앞으로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는 경우가 많았는데요. 속도를 내기 위해 체중을 앞으로 최대한 숙이고 타다 보니, 서로 살짝만 부딪혔는데도, 큰 사고로 이어졌습니다.

이렇게 되면 헬멧을 써도 얼굴을 크게 다치거나, 어깨나 쇄골 골절이 잦았습니다.


이런 모습을 거의 20년 가까이 봤음에도 불구하고, 저는 20대 중반까지는 저와 무관한 일이라고 착각했습니다.


그때 당시엔 길이 좁은 것에 비해 사람들이 빨리 타서 사고가 난다고 생각했다기보다는 그냥 그 사람들이 부주의했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남이 넘어지든 말든 저는 그저 빨리 목적지에 도달하고 싶은 마음뿐이었습니다.


아직도 자전거 도로에서는 낙차 한 적이 없습니다. 


대신 인생이라는 도로에서 20대의 첫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자주 낙차 하게 됩니다.


처음 낙차 했을 때는 사람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자주 빈번히 넘어지면서 뼈가 부러지고, 다시 붙고 회복하는 기간이 점점 길어질수록 두려움이 커졌습니다.


그러면 내가 가는 길이 나와 안 맞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수도 있었을 텐데, 그 당시에 저에겐 세상을 넓게 바라볼 여유가 없었고, 그 길에서 벗어나면 안 된다고 착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일단 남들보다 빠르게 도착하는 길이 옳은 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부터 굉장히 자주 들었던 이야기가 [실수하지 마라, 결과로 증명해라, 남들보다 앞서가라]였습니다.


뭔가 사회에서 빨리 가는 것, 빨리 배우는 것, 빨리 성취하는 것이 항상 좋은 거라고 귀에 못이 박히게 듣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스스로 충분히 사유하고 숙고하기보다, 항상 최대 효율, 최단 거리를 계산하고 있었던 겁니다.


또한, 제가 살아온 환경은 항상 저에게 조건부의 사랑을 많이 걸었던 것 같습니다.


뭔가 지금도 저 자신에 대해 알아가는 중이지만, 더 몰랐던 저의 20대에는 먼저 사회가 원하는 기준에 부합해야, 저 자신이 사랑받고 존재할 수 있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일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중학교 1학년 때부터 패션 디자이너가 꿈이었는데, 그 당시 부모님이 성적을 전교에서 10% 안에 들면 미술학원을 보내주시겠다고 했는데요. 아마 부모님은 제가 그 성적에 못 미칠 거로 생각하셨지만 결국 해냅니다. 그랬더니 고등학교 성적을 몇 등급 이상 받으면 해 주시겠다고 말을 바꿔서 또 달성하니, 대학에 가면 해주겠다는 것으로 나중에 바뀌게 됩니다.(tmi지만 저희 집이 어렸을 때 의류 공장을 하다 망했기 때문에 부모님은 제가 그 길을 가게 두고 싶지 않으셨던 것 같습니다. )


굳이 부모님이 아니더라도 학교에서도 직장에서도 사회에서도, 빈번히 특정 나이대마다 사회에서 요구하는 어떤 조건을 맞춰야 나중에 내가 하고 싶은걸 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됩니다.

항상 제가 원하는 일은 나중이었어요.


그러다 보니, 결과가 아닌 과정에서만 배울 수 있는 수많은 것들을 저는 놓치게 됩니다. 뭐 예를 들면, 제가 뼈가 부러질 정도의 충격의 큰 사건을 겪었다고 하면, 단순히 뼈가 부러졌다는 안 좋은 결과에 집착하는 게 아니라, 그 일을 통해 배울 점이 무엇이었는지를 충분히 회고하고 성찰해 볼 수도 있는 거지요. 이 외에도 그 일을 통해 알게 된 나의 성향이나 기질, 잘하는 점 못하는 점, 더 나아가 삶의 아름다움 등을 과정에서 배울 수 있는 건데, 그 당시엔 모두 뒤로 미루게 됩니다.


그렇게 안 하면, 왠지 그들이 나를 사랑하지 않을 것 같았고, 제 존재를 인정하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남이 나를 사랑 안 하면, 내가 나를 사랑하면 되는 겁니다. 그리고, 남이 인정해서 내가 존재하고, 인정하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었는데, 그 당시엔 이 사실 자체를 몰랐습니다. 그래서 더 벗어나기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심지어 제가 뭐 일을 40년을 한 것도 아니고, 고작 시작한 지 4년밖에 안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이외에 다른 가능성은 없고, 내가 빨리 이 길 위로 돌아가지 않으면 내 삶이 안전하지 않을 거라는 근거 없는 착각까지 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인생의 길에서 크고 작은 사건을 겪을 때마다, 저 자신을 온전히 들여다보고, 인정하지 못한 상태에서 급하게 상처를 추스르고, 다시 길에 오르기에 급급했는데요. 이에 따라 자신감이 급격하게 하락하면서 삶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만 커지게 됩니다.


저 말고도 수많은 사람이 낙차하고 다치는 그 길에서 20대 후반이 끝날 때까지 내려올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오랜 기간 인정받고 사랑받기 위해 빠르게 달리기만 했던 마음이, 번아웃을 겪으며 몸이 아예 심하게 망가지게 되면서, 조금씩 생각이 바뀌게 됩니다.


18km를 쉬지 않고 타던 몸은 10km 안 되는 거리를 3번이나 쉬어가야 갈 수 있게 되었는데요.


이 과정에서 정말 큰 자전거 낙차 사고를 보게 됩니다.


이때 주변에 도움을 청할 곳이 없어서 제가 앰뷸런스를 대신 불렀는데요. 그제야 크게 사고를 당해 낙차 한 사람이 내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그러면서 좀 더 안전한 길을 찾고 싶다는 마음을 먹게 됩니다.


정말 놀랍게도 마음만 먹었을 뿐인데 생각보다 수월하게 보다 안전한 길을 찾게 됩니다.


평소 가던 길옆에 난 샛길이었는데요. 저는 그 길이 너무 작고 아무도 안 다니니까 자전거가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도 못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한 가족이 그 샛길로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걸 보게 되면서 우연히 따라가 보니, 정말 놀라운 광경이 펼쳐집니다.


사람들이 종종 자연의 엄청난 풍경을 보고 경건함을 느꼈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은 적은 있으나, 그날 제가 그걸 경험할 거라고 상상도 못 했습니다.


그 작은 길을 따라가니 얼마 지나지 않아, 비록 한강은 안 보이지만, 고개를 뒤로 젖혀야 그 끝이 보일 정도의 수십 년의 세월을 그 자리에서 지키고 있는 웅장한 메타세쿼이아 길을 보게 됩니다. 사실 메타세쿼이아보다 그 옆에 있는 느티나무들이 여태 살면서 본 나무 중에 가장 커서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그 길은 엄청나게 잘 정비가 되어있지는 않지만, 자전거가 다니기에 충분했고, 심지어 가로로 길이 길었습니다. 저는 그 웅장하고 다정한 길을 자전거로 쑥 지나가기 어려워 자전거에서 내려 두 발로 걸으며 그 길을 온전히 지나갑니다.


그때 어렴풋이 알게 됩니다. 내가 그 길을 더 이상 가지 않겠다고 선택만 한다면, 미쳐 내가 상상하지도 못할 정도로 더 나은 길이 있다는 것을요.


길이 넓어지고, 제가 봐야 하는 시선이 앞만이 아니라 위아래 좌우로 모두 넓어지다 보니, 오히려 자전거 타는 게 더 재밌어졌습니다.


이때 당시에 자전거를 타는 길은 변화했지만, 안타깝게도 인생의 길에서는 원래 가던 길로 다시 돌아가는 실수를 반복합니다.


왜냐하면, 이미 너무 오랫동안 자신감이 떨어져 있는 상태다 보니, 새롭게 선택한 길에 대해 저 자신을 신뢰할 수 없었고, 더 나아가 제 삶 자체를 신뢰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전혀 위협을 받는 상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계속 마음이 불안했습니다. 그러면서 구관이 명관이라는 이상한 신념을 저 자신에게 주입했는데요. 낙차를 하더라도 남들이 많이 가고, 내가 이미 가본 길이 안전할 거라고 저 자신을 속이며, 다시 기존에 일하던 업계와 유사한 회사에 원래 하던 직무로 입사하게 됩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참고로 저는 지금도 자전거는 잘 타고 있습니다. 다만 자전거가 바뀌었습니다. 장바구니가 앞에 달리고 차체가 무거운 서울시 공유 자전거를 타고 있습니다.


자전거는 방향만 똑바로 알고 왼쪽 오른쪽을 성실하게 밟으면 결국엔 늦든 빠르든 도착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속도를 내는 자전거보다는 차체가 무겁고 천천히 안전하게 달리는 자전거를 선택하게 되었지요.

그리고 취미가 하나 더 늘어서 최근엔 거의 주 3일 동네 뒷산도 타고 있습니다.


삶에는 하나의 길만 있는 건 아니니 저도 다양한 길을 다양한 방식으로 잘 즐기고 있습니다.


그럼 이번 한 주도 평온하고 무탈하시길 바랍니다.


이상입니다.


김고래 드림.



* 이 이야기는 영상 에세이 형태로도 들으실 수 있습니다. 혹시 긴긴밤 잠이 오지 않을때 제 이야기가 생각나신다면, 언제든 편하게 찾아와 주세요. 


https://youtu.be/nR95Uvf5z58




* 혹시 이야기를 이메일로 받아보시길 희망하신다면, 아래 링크를 참고해 주세요.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2080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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