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먹자 치앙마이:로건 9편] 3인 가족 치앙마이 한 달 살기
즉흥적인 느낌주의자 모로, 철저한 계획주의자 로건, 싫고 좋음이 명확한 7살 제이, 치앙마이에서 한 달 동안 놀고 먹고 잡니다. 셋이 각자 다른 시선으로 한 달을 기록합니다.
자타공인 태국 마니아다. 몇 번이나 갔는지 세어봤다. 방콕 10번, 푸껫 2번, 크라비 1번, 코사멧 1번, 우돈타니 1번 갔다. 치앙마이는 이번이 세 번째다.
태국은 마음의 고향이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느껴지는 습한 공기가 좋다. 머리가 찡한 향신료 맛이 좋다. 얼마인지 계산하지 않고 돈 쓸 수 있는 저렴한 물가도 좋다.
그간의 태국 여행은 모두 일주일 이내로 짧았다. 길게 여행을 한다면 태국에 가고 싶었고, 후보지는 방콕, 치앙마이, 푸껫이었다. 세 곳은 중부, 북부, 남부의 중심 도시이며 인프라가 잘 되어있어 한 달 살기 많이 하는 곳이다.
방콕을 1순위로 고려했다. 방콕은 놀거리가 많은 도시다. 혼자서는 누구보다 재밌고 신나게 놀 수 있지만 가족 여행으로 가면 그 흥이 깨져버릴 것 같았다. 10번이나 간 곳이라 새로울 게 없기도 하다.
푸껫은 바다가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근처에 섬이 많아 섬 투어를 하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다. 하지만 물가가 비싸다. 경험상 푸껫은 방콕보다 비싸다. 한 달 있기에는 부담스러울 것 같았다. 또한 교통이 안 좋다. 어딜 가도 썽테우나 택시를 불러야 하는데 200바트(8000원)가 기본이다.
치앙마이는 그다지 당기지 않았다. '한 달 살기의 성지'라는 말에 괜히 거부감도 들었다. 물을 좋아하는 제이와 나는 바다에 가고 싶었다.
여러 고민 끝에 치앙마이로 정했다. 나와 제이-모로 모두 만족하며 지낸다. 치앙마이의 장점을 정리했다. 방콕과 푸껫을 비교한 장점이다.
장점 1 : 화창한 날씨
20대 땐 일부러 우기(5~10월)에 태국 여행했다. 비행기 값과 호텔 숙박비가 굉장히 싸지기 때문이다. 하루 한두 차례 스콜을 보면 '시원해지니 괜찮아'라며 정신 승리했다. 건기(11~2월) 때 와보니 그간 나는 왜 스콜을 따라다녔나 싶을 정도로 날씨가 좋았다. 무엇보다도 습도가 낮아 여행 만족도가 높다.
날씨가 여행에 미치는 영향은 크다. 30대가 되고 여행 자금에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기자 나는 '시기별 여행하기 좋은 곳'을 찾아다닌다. 태국이 우기 때는 발리가 건기다. 겨울에는 태국에 가고, 여름에는 발리에 가는 식이다. 유럽은 날씨가 가장 좋다는 4월과 9월에만 다녔다.
11월 12월의 치앙마이 날씨는 최고다. 최고 기온이 32도지만 습도가 낮아 뽀송뽀송 쾌적하다. 한 번도 비가 내린 적이 없다. 아침저녁으로는 선선하다 느낄 정도로 시원해진다. 에어컨이 방마다 있지만 거의 켠 적이 없다.
보통 태국 여행을 하면 땀에 젖은 티셔츠를 하루에 2~3번도 갈아입는데, 겨울의 치앙마이는 땀 흘릴 일이 없다.
한국이 한창 추울 때 따뜻한 나라에서 생활하는 건 꽤나 기분 좋은 경험이다.
장점 2 : 저렴한 물가
2019년 2월 하와이에서 2주간 머무른 적 있다. 날씨 좋고 멋진 풍경에 너무나도 행복했지만, 밥 먹을 때마다 불행했다.
기본적으로 높은 가격에 팁까지 있으니, 캐주얼한 레스토랑에서도 3인 가족 식사하면 10만 원이 훌쩍 넘었다. '다음엔 꼭 태국에서 마음껏 먹을 거야' 생각했다.
바트로 된 금액을 보고 한국 돈으로 계산하지 않을 때, 비로소 한 달 살기에 적응이 되었다고 한다. 내가 생각하는 적정가를 넘으면 깜짝 놀라곤 한다.
내 기준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40바트(1600원), 쌀국수 한 그릇은 대짜로 50바트(2000원)이다. 이 가격을 넘기면 '왜 이렇게 비싸지' 반응이 '무조건 반사'로 나온다. 님만해민에서 100바트짜리 커피를 보고 그랬다.
치앙마이는 물가가 다른 두 도시에 비해 많이 싼 편이다. 방콕은 최근에 갔을 때 '이제 거의 한국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한국 물가 오르는 속도가 어마어마해서 따라잡긴 어렵다.)
숙소 렌트비도 훨씬 싸다. 물론 방콕에도 저렴한 숙소가 있지만 대부분 시설이 낡았다. 치앙마이는 최근에 지은 신축 아파트먼트가 많아서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한 달 이상 장기 숙소를 구할 수 있다.
장점 3 : 작은 도시
작은 게 무슨 장점이냐 할 수 있겠지만, 이동하는 스트레스가 적다. 어딜 가든 그랩으로 100바트(4천원) 내외면 충분하다.(신규 가입자 할인 쿠폰을 25장이나 줘서, 30~50바트로 탈 수 있다. 1000~2000원 꼴이다.)
내가 있는 지역은 치앙마이 정문(나머) 지역인데, 맛집과 카페가 많은 님만해민까지는 차로 10분, 올드시티까지 15분 정도 걸린다. 아무리 먼 지역도 치앙마이 내에서는 30분이면 충분하다.
방콕은 어마 무시한 트래픽 잼에 걸리면 헤어 나올 수 없다. 실제로 수쿰빗 지역에서 30분 간 택시에 갇혀 있다가 지하철로 갈아탄 적이 있다. 택시비는 나온 대로 다 냈다. 5m도 움직이지 않았으니 택시비가 아니라 자릿세였다.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때면 30분 이상은 잡고 가야 한다. 물론 치앙마이도 출퇴근 시간이나 주말엔 트래픽 잼이 있지만 방콕에 비할 바가 아니다.
푸껫의 교통이 안 좋다는 걸 가본 사람들은 안다. 교통비가 비싸고(기본 200~300바트) 대중교통이라고 할 게 거의 없어서 푸껫에 갈 때마다 파통 중심지(푸껫의 가장 큰 번화가)에 숙소를 잡거나, 아니면 리조트에 짱 박혀서 나오지 않았다. (아니 못 나왔다.)
단기 여행에서는 돈 주고 타면 되니까 교통이 중요한 요소는 아니지만, 장기 여행은 매일 그렇게 할 수 없으니 교통을 고려해야 한다.
행복해지는 쨍한 날씨, 당당히 사 먹을 수 있는 저렴한 물가, 어딜 가든 가까운 거리, 치앙마이를 한 달 살기 목적지로 정한 건, 꽤 괜찮은 선택이었다.
로건의 픽
쿤머 퀴진 푸 팟퐁 카리 (650바트 / 26000원)
방콕 쏨분 시푸드에서 처음 이 요리를 먹었을 때 감흥을 잊지 못한다. 내가 태국에서 가장 좋아하는 '요리'다. 식사가 아니라 요리다. 식사는 자주 먹지만 요리는 자주 못 먹는다. 비싸고 헤비 하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 번만 먹을 거다. 게를 요리하는 방법은 식당마다 다르다. 딱딱한 게를 그대로 올려주거나, 소프트쉘 크랩을 튀겨주곤 하는데, 여기는 특이하게도 게 살을 발라서 위에 얹어준다. 마치 모차렐라 치즈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