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출장 중에 번아웃이 온다면.
기나긴 연휴가 끝났다. 아주 오랜만에 한국에서, 엄마 집에서 푹 쉬었다. 열흘간의 일본 여행을 떠난 친구는 지금 한국으로 날아오는 중이었고, 메일함에 불통이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지금 인천공항으로 가는 버스에 누워서 이 글을 쓴다.
중국 출장 중에 있을 때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그래서, 한국 여행은 언제 오세요?”
우스갯소리로 한 말이겠지만 또 틀린 말 같지는 않은 나의 날들. 툭하면 다들 ”지금 한국이야? 외국이야? 또 어디에 있어?“라던가 ”제주야, 서울이야?“라는 질문을 많이 한다. (올해 5월에 제주도로 이사를 했는데, 이건 나를 행복하게도 만들었고, 동시에 너무 힘들게 하기도 했다.) 자, 그럼 대략적으로 얼마나 한국에, 집에 없는지를 적어볼까. 일단 작년에는 한국에 있던 총 시간이 3개월 정도였다. 그것도 드문드문. 다 섞어서 합친 날짜다.
올해는 1월부터 한국에 없었다. 한달 정도 태국 여행을 다녀왔다. 이건 일이 아니라 단순히 여행으로, 이때까지만 해도 올해 이렇게 자주 빙르 비우게 될 지 몰랐다. 설날에 맞춰서 귀국을 했고, 그 다음에는 갑자기 '제주도로 이사할래!'라는 마음이 생겨서 제주도를 내려갔다. 가자마자 이사 갈 집을 구했고, 사이판으로 날아갔다. (사이판은 1년에 적어도 3번은 가는, 나의 두 번째 나라같은 곳이다.) 거기서 열흘 동안 신나게 다이빙을 했다. 2024년에 미친 사람처럼 여행을 다녔으니, 2025년엔 한국에 머무르면서 돈을 좀 모아야겠다 싶었다. (제주도로 이사한 것도 그래서였는데... 인생은 계획대로 절대 안된다.)
사이판을 다녀와서 이모, 사촌동생과 셋이 오키나와에 갔고, 거기서 바로 중국 항저우로 날아갔다. 그 이후 후쿠오카 4일, 제주도 7일, 미야코지마와 이시가키에서 2주, 그리고 또 중국. '하루에 4시간만 일하고 나머지 시간은 다 놀자!' 주의라서 그걸 착실히 이행하고 있는 베짱이 라이프를 보내고 있었는데. 큰 돈은 바라지도 않고, 난 그냥 소소하게 여행하고 바다에 들어갈 수만 있으먼 행복했다.
그리고 대망의 중국 프로젝트가 와르르 들어왔다. 중국 무비자 입국이 가능해지면서 업계가 확장되었고, 함께 하는 클라이언트가 중국 쪽 일을 맡아서 하고 있기에 나에게도 기회가 왔다. 지금이 10월이니까, 5월부터 지금까지의 시간은 내게 한달 정도밖에 안된 거 같다. 올해만 중국을 7번을 갔고, 이제는 이미그레이션에서 나에게 왜 이렇게 자주 오냐고 묻기까지 한다. 이마저도 최근 8월부터 9월까지만 3번을 갔으니.
중국의 여름은 무덥고 뜨거웠다. 지옥한 더위, 40도를 웃도는 날씨 속에서 매일매일 3만 보씩 걸으며 사진을 찍었다. 뭘 보고, 뭘 먹었는지는 기억하기 보다는 기록하기에 바빳고. 최근, 9월 20일부터 30일까지 다녀왔던 출장은 비행기와 배, 버스, 기차를 모두 타면서 돌았다. 칭다오, 지난, 자싱, 항저우, 닝보, 조우산, 상하이까지. 타고나기를 인자강(인간 자체 강함)에다 체력이 좋은 편이라서 괜찮은 줄 알았는데. 어느 순간 감정이 폭발하더라. 낯선 사람들과 만나 팸투어를 해야하니 방긋방긋 웃으면서 내 저조한 기분을 티내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이 시간이 얼마나 느리게 흐르던지.
이때의 개인적인 감정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번아웃에 가까웠던 것 같다. 일을 하는 모든 이들이 어쩌면 한번, 그 이상 경험했을 그 답없는 무력감. 노는 것만큼 일하는 것도 꽤 즐겁게 하던 사람이었는데 정말이지 아무것도, 격렬하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멈추지 않는 컨테이너벨트 앞에 서서 계속계속 무언가를 찍어내고 있는 기계가 된 기분이었다. 아니면 머리 위로 무언가가 와르르 쏟아지거나, 뛰어가도 뛰어가도 끝에 닿지 않는 길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꿈에선 계속 노트북과 카메라를 잃어버렸고, 혼자 있을 때는 입술이 삐죽 내려갔다. 입술을 꽉 깨물지 않으면 눈물이 터질 것 같아서. 하루 종일 밖에서 취재를 하고 숙소로 돌아가 다시 노트북을 꺼내 원고를 쓰고 교정을 봐야하는 모든 상황이 끔찍했다. 지독하고. 버스에서 이동 중에 울렁거리는 속을 내버려두면서 원고를 읽기도 했다. 시간이 마치 모래시계처럼 흘렀다. 아무리해도 한국에 갈 날이 오지 않았고, 정말이지 당장에 돌아가는 비행기를 끊고 도망치고 싶었다. 이 와중에 오랜 클라이언트와 다투기도 했다. 일하면서 있었던 여러 복잡한 문제와 그간의 인내가 폭발한 거였는데, 다음날 그가 내게 사과를 했음에도 기분이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아마 당시의 여러 상황이 내가 나를 컨트롤하지 못하도록 했던 것 같다.
어디에도 말하기 어려웠다. 그 복잡한 감정을 한 단어로 설명하고 싶지도 않았고. 인스타에서 나의 하루를 확인하는 지인들은 힘들다고 하면 배부른 소리라는 말을 했다. 나는 나의 기록과 엄마에게 생존신고를 하기위해 인스타를 한다. 스토리에 대충 툭툭 사진을 찍어 올리면, 엄마와 아빠는 DM을 보냈다. 덥겠네, 힘들겠네, 멋지네, 이건 뭐냐 등등. 부모님이 인스타 확인을 못하는 날에는 언니와 동생이 '지금 여기 있던데~'라며 대신 말을 전해주기도 했고. 하지만 해외에 있다는 것만으로 사람들은 나를 부러워하고 부러워했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가진 부담과 무게를 누군가에게 공유하기가 어려웠다.
마음이 내내 붕 떠있었고, 왜 여기에 있는지, 무얼 해야하는지 자꾸만 까먹었다. 중요한 마감과 원고를 다 놓쳤다. 놓치면 놓쳤다는 죄책감으로 스스로에 대한 자책으로 더 괴로웠던 것 같다. 지금에서야 멀쩡하게 이 글을 쓰지만, 항저우에 있었던 그 당시, 그 뜨거운 더위와 땀에 젖은 티셔츠를 입은 채 감정을 꾹꾹 누르고 있던 내가 잊혀지지가 않는다. 일을 때려쳐야겠다며, 매달 정기적으로 원고를 납품하던 업체에 메일을 쓰려고 하기까지 했다. 전송은 못한 채 임시보관함에 들어가 있지만.
요즘은 '마인드카페'라는 앱을 통해 조용히 심리 상담을 한다. 여기에 말하면 적절하게 위로를 받아서. 한국에 와서 바로 상담을 받았다. 추석이 되었고, 모든 일을 뒤로 다 미루고 엄마집에서 정말이지 잠만 잤다. 자도, 자도 잠이 줄지를 않았다. 정말 5일 내내 잠을 잤다. 너무 자는 거 아니냐는 말에, 그러게, 하면서도 잤다. 꿈도 안꾸고.
다 멈추고 아무것도 안하는 시간이 있어서 회복을 했던 것 같다. 물론, 9월 8일, 공식적인 나의 연휴가 끝나고 다시 일상에 복귀하게 되니까 마음이 급속도로 죽어버렸지만. 엄마에게, 모두에게 변명하듯 베트남에 다녀오겠다고 말했다. 혼자서 여행을, 다시 하고 싶었다. 낯선 곳에 동떨어진 곳에서 아무도 신경 안쓰고 하고싶은대로 움직이면서 침대에 누워 있고 싶었다. 그와중에 해외 콘텐츠가 부족해서, 취재를 하면 좋을 것 같은 도시로 나트랑을 꼽았다. 그리고 지금은 CCCP 카페에서 이 글을 마무리하고 있다.
오늘 새벽 1시에 베트남에 도착했다. 호텔에서 내 픽업 예약을 누락한 탓에 짜증이 살짝 났는데, 지나가던 그랩 기사가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나를 호텔에 데려다줬다. 호텔에서는 '괴롭히지마세요'를 걸어두고 늦은 아침까지 자고 있는데, 하우스키퍼들이 하도 문을 두드려서 잠에서 깼다. 누워서 자고, 또 자고, 오후 4시가 되어서 슬슬 기어나왔다. 레전드카페에서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CCCP에서 카푸치노를 마시고. 중간에 잠깐 기념품가게에 들러서, 베트남에서 쓸 주머니 지갑을 찾다가 다시 나왔다. 나트랑은 한국인 천지다. 온갖데에 한국어가 적혀 있고, 지나가는 모든 동양인들이 한국인이다. 2년 전만해도 이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회사를 다녔다면 이렇게 내 마음대로 비행기를 끊고 해외로 탈주할 수 없었겠지. 그런 점에서는 감사하다. 그런데 정말로, 나에게 출장은 출장이고, 출장은 일이고, 여행이 아니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