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미디어 업계는 이렇게 일해요.. 했어요..?
여행 잡지의 역할은 무엇이었을까? 잡지 기자였을 때 나는 사실 소설가 지망생이었고, 잡지는 읽어 본 적이 없었다. 매거진, 잡지는 패션의 영역처럼 느껴졌다. 아 생각해 보니 미용실에서 뒤적이던 기억이 난다. 옷이나 뭐 칼럼 같은 걸 읽었지. 그러면 여행 잡지는 뭐였을까? 아마 ‘’ 세상에 이런 곳이 있어요!‘ 라든가 ’ 가기 어려운 곳을 대신 가드려요!‘ 정도. 정보 전달에 가까웠던 것 같다.
선배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인스타, 유튜브가 생기기 전에 여행 미디어 업계는 호황이었다고 했다. 여행지를 알리는 일이 TV 아니면 잡지, 책이 전부였으니 구독자도 많았고 관광청이나 여행사, 호텔 브랜드 등에서 많이 찾았다고. 하지만 SNS가 생겨나면서 여행 업계의 밥그릇은 경쟁이 치열해졌다. 이제 사람들은 정보를 인터넷에서 얻었다. 관광청도 인플루언서를 찾았다. 눈에 보이는 데이터와 수치가 명확했으므로. 또, 기자들은 다루기도 어려웠겠지. (훗날 인플루언서들도 만만치 않다는 걸 들었다.)
내 생각이지만, 2017년 즈음부터는 여행 잡지의 역할은 정보 전달보다는 여행 감성 전달에 더 가까웠던 것 같다. 이런 곳이 있는데 이렇게 여행하면 이런 분위가 느껴져요 같은? 책에서 정보를 얻지 않는 시대가 오면서 우리의 자리는 점점 줄어들었다.
“내가 어릴 때는 여행 잡지에서 가고 싶은 곳이 나오면 페이지를 찢어서 벽에 붙여 놨었어. 그런 재미가 있잖아. 막- 집중해서 읽기보다는 화장실에서 똥 싸다가 그냥 펼쳐서 읽는 그 정도. “
내가 정말 좋아하고, 재미있게 글을 쓰는 선배가 그런 말을 해줬다. 지금 내 나이가 당시 선배의 나이였는데, 그 말이 이제는 조금 이해가 간다. 여행 잡지가 빠르게 SNS 트렌드를 이해하고, 질투하는 대신 그 시장에 함께 뛰어들었다면 무언가 달라졌을까?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터지기 전, 나는 여행 업게 일에 진절머리가 난 상태였다. 당시 월급이 150만 원 정도였는데, 터무니없이 작았다. 출장(해외)을 보내 주는 것으로 퉁치는 분위기도 더러 있었다. 글은 편집장이 원하는 대로 써야 하니 너무 재미없었고, 배낭 메고 돌아다니며 20인실 호스텔에서 잠들던 때가 때때로 그리웠다. 새로운 여행지의 설렘은 완전히 사라졌다. 내가 사랑하는 것을 빼앗겼다는 생각에 그 20대 후반에 잠깐 쉬어갈 생각을 했다. 코로나가 터질 줄 모르고. 코로나 이후 여행 잡지는 순식간에 다 사라졌다. 지금은 내셔널지오그래픽, 뚜르드몽드, 론리플래닛이 남아 있지만 과거와 같은 활동은 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사람들이 내가 출장을 가면 늘 여행 간다며 부러워했다. 음, 재수 없을지 몰라도 내게는 정말 일이었다. 보통 ‘팸투어, 팸트립’이라고 부르는데 네이버에 검색하면 기사가 더러 뜰 것이다. 목표는 관광청에서 여행지나 호텔을 알려주며 콘텐츠나 여행 상품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여행사나 언론사에서는 직원들에게 주는 보상 같은 걸로 처리하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잡지에서는 매번 페이지를 배당받았는데 평균 10p 내외였다.
자, 출장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냐면, 패키지와 같다. 항공부터 호텔까지 단 하나도 내 손을 거치지 않는다. 보통 팸투어에 속한 호텔은 협찬이 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매일매일 다른 호텔에서 자야 한다. 같은 호텔에서 자는 날 만큼 기쁜 게 없을 만큼. 공항에서 나오면 현지 가이드가 기다리고 있고 차를 타고 이동한다. 이른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속된 말로 겁나게 뺑이를 친다. 내리고 찍고 다시 타고 내리고 찍고 다시 타고. 비가 오는 날엔 비를 맞고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찍으면서 가이드가 해주는 말을 폰에 받아 적어야 했고. 투어나 체험을 할 경우엔 더 정신이 없다. 가고 싶은 곳, 가기 싫은 곳을 다 가본다. 좋은 경험이긴 했다. 내가 가지 않았을 장소를 방문하게 되었으니, 세상이 넓어지는 데에는 큰 역할을 했다.
호텔도 할 말이 많다. 5성급이 기본이고, 때론 풀빌라에서 자기도 하지만, 사진만 찍고 잠만 자고 나온다. 어쩔 때는 하루에 6개 호텔을 돌면서 사진을 찍는다. 나중엔 뭐가 뭔지도 모르겠다. 음식은, 늘 식은 상태로. 사진이 먼저거든. 블로거 팸투어도 비슷하다고 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여행의 기분을 느끼기란, 나로서는 좀 불가능했다. 천성이 P라서, 다음에 어디 갈지를 그날 아침에 정하고, 한 도시에 며칠 동안 머물고, 길거리 음식을 그냥 사 먹으면서 여행의 감성을 충전하는 내게. 지금이야 나름 이러저러한 출장을 즐길 수 있는 지경에 이르렀지만 어린 나는 고지식해서 ‘이건 일! 이건 일이야!’에 빠져 있었다.
뭐 특집이나 기획에 따라서 팸투어를 안 가기도 한다. 항공이나 호텔 등 전체 일정을 지원받지만 자유롭게 다니는 방법도 있다. 그건 조금 더 재미있는 기사가 나온다. 충분히 즐길만한 요소들과 에피소드들이 생겨나니. 나도 몇 번 해봤는데, 좋긴 한데 부담스러웠다. 그냥 내 돈 내고 여행하고 싶었지.
지금은 어떻게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팸투어는 계속 있는 것 같은데. 이제 나는 팸투어는 일부 협업 업체랑만 가고 보통은 자유취재를 한다. 전체 일정을 지원받거나, 그냥 내돈내산 여행으로 콘텐츠를 만든다. 콘텐츠를 위한 여행 대신, 여행하다 만드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물론 이것도 내가 프리랜서라 가능한 일이고.
이제는 눈으로 먼저 보는 것보다 카메라를 먼저 들어 올려야 하는 나의 직업을 인정한다. 그러니 내 여행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을 계속 찾으려고. 팸투어 일정 끝에 탈주를 하더라도, 근처 로컬 바에서 맥주라도 한 잔 하고 오는 것이다. 좋은 콘텐츠는 뭘까? 내가 만들고자 하는 건, 유익한 정보를 빠르기 전달하는 SNS랑은 다른 것 같다. 그들의 그 트렌디함은 따라잡을 수도 없고, 따라 할 수도 없다. 성실함이 그들의 무기이기도 하고.
그러니, 그냥 이런 여행도 있어요, 하며 고급스럽거나 계획적이거나 색다른 여행을 보여주기보다는, 그냥 B급 감성으로 이렇게도 여행할 수 있구나 정도만 해도 되나. 10년이나 이 일을 했는데 아직도 고민 중이라니. 그걸 찾아가는 것도 재미있는 과정이겠지.
최근엔 일로 계속 해외를 돌아서 스트레스가 폭발할 지경이었다. 기나긴 연휴에 끝없이 잠만 자면서 문득 혼자 어디로 여행을 가고 싶어졌다. 우울해서 빵을 사 먹은 게 아니라 우울해서 비행기 티켓을 샀다. 다음 주엔 또 출장이 있으니 그 사이에 짧게 다녀올 곳을, 여행과 콘텐츠 사이에 한참 고민을 하다가. 콘텐츠 쌓을 겸 물가도 저렴한 베트남으로 골랐다. 이 무거운 카메라를 정말 안들고 가고 싶은데 챙겼고.
당장 내일 갔다오겠다는 말에 가족들은 이제 그러려니 한다. 가만히 못 있는 게 병인 것 같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