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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mzam Aug 11. 2021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내가 어떤 결을 가진 사람인지를 알게 된다. 보편적 범주에서 좋은 사람의 기준이란 매우 주관적이므로, 내게 좋은 사람은 나와 잘 맞는 사람을 뜻하겠다. 결과적으로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나의 결을 알아채야, 좋은 사람을 알아볼 수 있다는 의미이다.



내게는 한없이 인색했던 그 사람도 누군가에게는 giver가 될 수도, 내가 가볍게 여겼던 그 사람도 누군가에는 세상 단 하나의 lover일수도 있을 것이다.


아주 고맙게도, 아주 다행스럽게도,  남자친구는 나와 결이 거의 같다. 같은 때에 같은 생각을 해서 마주 보며 놀라기도 하고, 함께 영화를 보며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 설령 서로의 가치관이나 취향에서 차이점을 발견하더라도 함부로 평가하는 법이 없다. 그러므로 서로는 서로를 애써 포장할 필요가 없어진다. 그에게서 포근한 편안함을 느낀다. 그렇지, 이거지. 연애란 이런거지.


가령, 나의 아이스크림 취향은 고급 청담동 젤라또나 하겐다즈에서부터 슈퍼의 500원짜리 쌍쌍바까지 넓게 분포되어 있다. 그는 젤라또를 먹는 것을 허세 부린다고 생각하거나, 500원짜리 쌍쌍바를 먹는 것을 궁상맞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그저 나를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아이스크림을 먹지 않겠냐며 물어봐줄 뿐이다. 그러니 나는 무엇이든 그 사람 앞에서는 내 취향껏 행동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은 나의 행동 하나, 소비 하나, 선호 하나만으로 취향과 결을 제 멋대로 판단하고, 나를 “어떤” 사람이라 단정 짓는다. 이런 사람들을 통칭해 걀이라고 하겠다. 이 걀들 앞에서는 나의 전부를 보여줄 수 없다. 더 이상 얽히면 피차 힘들어지니 꼬투리 잡히지 않기 위해 수박 겉만 핥는다. “네가 생각하는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라거나 “내 취향은 그게 아니야!”라며, 걀의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나를 해명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러니 말을 아낀다. 그리고, 난 그런 취향의, 그런 결을 가진 사람으로 박제된다.


지금의 남자친구를 놓치면 안 되겠다고 생각하게 된 건, 과거에 만났던 걀들 덕분이다. 그 걀들에게도 나는 걀이었을테니, 그 걀들이 결이 잘맞는, 결과적으로 나에게는 걀일 사람들과 잘 어울렸으면 좋겠다고 생각되었다. 세상엔 서로를 이해하기 어려운 걀들이 어디에나 있고, 사랑이든, 우정이든 허울 좋은 포장 아래 이 걀들을 놓아둔대도, 결과적으론 포장지키기에만 열중하게 된다. 결국엔 그 걀의 입장에서도 나도 그저 걀일 뿐임을 받아들이니 아주 편안해졌다. 이해하려 노력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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