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omzam Oct 26. 2019

104. 필요한 것과 필요하지 않은 것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레프 톨스토이가 알고자 했던 것이다. 그래서 사람은 도대체 무엇으로 사는가.


내린 결론은 그저 내게 필요한 것과 필요하지 않은 것만 제대로 구분하며 살자는 것이다. 그러면 중간은 가겠지. 필요 없는 것에 에너지를 쏟지 말고, 필요한 것을 얻을 기회는 놓치지 말고.



2019년 10월 19일


퇴사 후에 새로운 공부를 하고 있다. 몇 주 전에도, 그리고 오늘도 새벽 5시, 이른 시간에 일어나 시험을 치렀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같은 공간에서 일렬로 줄 세워진 책걸상에 앉아 똑같은 종이에 적힌 똑같은 문제들을 풀고 있겠거니 생각했더니 머리가 지끈거렸다. 끝이 무엇일지 알 수 없는 이 날들에 이따금 숨이 막혀온다. 난 무얼 원했기에 퇴사를 했고, 무얼 이루고자 이토록 긴 시간을 책상에 앉아 있을까. 더 무서운 것은 내가 쏟은 시간들이, 포기한 것들이, 보상받지 못한 채 내게 아무것도 남지 않을 수도 있다는 불편한 감정들이다. 아 몰라, 오지도 않은 일들을 구태여 가정까지 해가며 괴로워하지 말자. 최초의 다짐은 자꾸만 색이 바래갔다. 지금이 바로 도전하기 좋은 때란 패기와 실패하더라도 도전 자체가 큰 경험이 될 것이니 감당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불안함에 자리를 조금씩 내어주었고, 이들은 기어코 불편한 영역을 키워갔다. 극단에 몰린 사람은 근본적인 질문을 한다. ‘사람을 무엇으로 사는가.’


무엇이 사람을 살게 하는가에 대하여 오랜 시간 고민을 했음에도 답을 내지 못했다. 어느 날은 사람이 ‘사랑’으로 산다고 생각했다가, 사랑에 덴 날에는 사랑 따위 없어도 되는 무익한 것이라 생각한다. 또, 어느 날은 '명예'를 위해 산다고 생각한다. 그러다가 도대체 그 명예란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되고, 알고 보면 허울뿐인 명예가 결코 온전히 삶의 의미가 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삶의 이유라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러닝타임이 긴 영화 속, 씬스틸러 정도의 조연일 뿐이라 느껴지면 가차 없이 리스트에서 지워버린다. 그럴 때마다 나는 존재 이유를 다시 만들어야 했다. 이 순환을 몇 차례 반복하면, 그냥 살아있어서 사는 게 된다. 대학교에 입학한 이후 이 철학적인 물음에 혼자 묻고 답하고, 나만의 정의로 해석하는 것을 즐겼다. 그러다 이 생각들의 결말이 미치거나, 죽거나 둘 중 하나인 것은 아닌가 두려워졌다. 그래서 그만두었다. 삶의 의미가 어쩌면 사막 속 오아시스와 별반 다르지 않은 허상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애초에 삶에는 이렇다 할 의미라는 게 없을지 모른다. 아니, 있다고 하더라도 단 한 가지가 삶의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 '사랑'이, 또는 '명예'가 삶의 의미라고 생각해오던 사람이 이를 위해 살다가, 그것이 삶의 의미가 아니라 느끼게 되는 순간, 그 삶은 그냥 무의미해져 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꼴에 결론이라 내린 것은 그저 내게 필요한 것과 필요하지 않은 것만 제대로 구분하며 살자는 것이다. 그러면 중간은 갈 것이고, 중간만 가는 삶을 살자고 생각했다. 필요 없는 것에 에너지를 쏟지 말고, 필요한 것을 얻는 기회를 놓치지 말고.


본인에게 필요한 것을 명확히 구분하고 사는 사람은 잘 없을 것이다. 우선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무얼 필요로 하고, 무언 필요로 하지 않은지 잘 모르고, 어렴풋이 안다고 한들 영단어처럼 나열해서 꼼꼼히 암기하고 다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인이 필요로 하는 것이 무언지 몰라, 필요하지 않은 것에 매몰되어 사는 삶은 지독하게 괴롭다.  ‘내게 필요로 하는 것은 무엇이지?’ 속으로 되뇐다. 충분한 수면, 낮의 적당한 산책, 적당한 대화와 적당한 침묵. 나열하자면 수도 없다. “그럼, 내게 필요하지 않은 것을 생각해보자.” 현재 내게 불필요한데 가장 매몰돼 있는 것은 ‘생각과잉’이다. 그니까 TMI가 머릿속에 뱅뱅 돌면서 시끄러운 소음을 만든다. 명상 같은 걸 해봐야겠다.



생각은 말은 만들고, 말은 행동을, 행동은 사람을 만든다. 고로, 필요하지 않은 것에 집중하는 것은 겉도는 행동과 겉도는 사람을 만든다. 한번 주어진 보너스 같은 인생, 꽉 차게 살자.


이전 09화 103. 포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