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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 Oct 26. 2024

서울시립미술관 남서울-벨기에 영사관, 미술관이 되다

미술관이 된 옛 건물 6

서울 남쪽에 위치한 사당역은 서울 시내에서도 손꼽히는 혼잡한 지역이다. 우선 경기도와 서울을 잇는 거대 환승지이기 때문이다. 경기도 각지에서 서울 도심으로 진입하려면 빨간 직행좌석버스를 타고 사당역에서 지하철로 갈아타야 한다.  과천, 평촌, 산본, 안산, 시흥, 수원, 인천 방면에서 강남으로 가려면 대부분 사당역을 거쳐 2호선으로 환승해야 한다. 특히 봄, 가을 행락철이면 사당사거리는 롯데월드나 에버랜드, 서울대공원 가는 길목이어서 사람들이 지상과 지하 할 것 없이 사당역에서 교차되면서 엄청난 혼잡을 이룬다.


이렇게 사통팔달 교통의 요지이다 보니 사당역 주변에는 온갖 맛집과 유흥가들이 몰려 있고 늘 인산인해를 이룬다. 이 일대에도 주택가가 있는데 사당역 남서쪽, 남현동은 고개인 남태령이 있어서 유래된 동네 이름이다. 1970년대에는 이 지역에 예술인 아파트가 지어졌다. 무려 90여 명의 예술가들이 살았다고 하는데, 30여 년 후 아파트가 철거되어 ‘예술인마을’이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시인 서정주도 1970년부터 2000년 작고할 때까지 남현동에 집을 짓고 30년 동안 살았다. 2010년 관악구에서   서정주의 자택을 복원하면서 남서울 예술인 마을이 부각되었다.

남현동 주택가에 위치한 서정주의 집

사당역 6번 출구를 나오면 서양식 건축물 한 채가 눈길을 끈다. 현재는 서울시립남서울미술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옛 벨기에 영사관이다. 예전엔 서울의 중심지에 지어졌었는데 왜 이곳으로 옮겨왔을까?


그 이유를 알려면 1900년 대한제국 시기로 돌아가야 한다. 당시 대한제국은 일본의 조선 침략이 점차 가시화되면서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풍전등화의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고종황제는 기울어지는 국운을 타계해 보려고 대한제국을 중립국가로 만들려고 노력했다. 그 지름길은 바로 중립국과 수교하는 일. 그중 강대국 사이에서 당당하게 독립국가로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던 벨기에라는 나라가 고종의 눈에 들어왔다. 대한제국은 1901년 중립국 벨기에와 ‘한백수호통상조약’을 맺고 서울 회현동에 벨기에 영사관이 들어섰다.

벨기에 영사관은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우아하게 꾸며졌다. 벨기에 왕국의 2대 왕 레오폴 2세가 고대 그리스, 로마 전축양식을 모방한 신고전주의 양식을 선호했는데, 벨기에 영사관도 그 취향이 반영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공 들여 지은 건물은 5년밖에 사용 못하고 대한제국은 을사늑약, 정미 7 조약, 경술국치를 통해 1910년 일본의 식민지가 되어 버렸다. 자연스레 벨기에와의 외교도 단절되어 버리고 레옹 뱅카르 벨기에 영사도 본국으로 떠나버리고 말았다.


주인을 잃은 영사관 건물은 이후 이곳저곳에 매각되어버리는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어 버렸다. 1910년에는 일본 요코하마 생명보험에 매각되었다가 해방 후에는 국유 재산으로 귀속되어 해군 헌병대에서 사용하다가 1970년 상업은행 소유로 바뀌었다. 1977년 사적 제254호로 지정되었지만 1982년 도심 개발 사업을 하는 바람에 철거 위기에 처한다.  은행에서 그 자리에 고층건물을 짓기로 계획하고 창고로 사용하던 중 사적으로 지정되어 건축물의 철거가 어려워지자 이전복원하기로 결정됐다.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건물 이전복원이라 당시로선 획기적이고 뜻깊은 일이었다.


이렇게 해서 건물은 아무 연고도 없고 생뚱맞은 서울의 남쪽으로 이전되었지만 살아남았다는 사실은 우리 모두에게 행운이었다. 조선이 서구열강과 개항한 이래 정동 일대에 지어졌던 러시아,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영사관들은 한국전쟁 때 폭격을 맞거나 일제 강점기 때 철거되어 사진 외에 실물이 남아있는 곳이 없다. 유일하게 덕수궁 뒤편 영국대사관이 100년 넘게 원형 그대로 보존되고 여전히 대사관 건물로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은 기적처럼 들린다. 2004년 서울시는 구 벨기에 영사관을 서울시립미술관 남서울 분관으로 이름과 용도를 바꾼 후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다.


잔디가 깔린 미술관 정원에서 건물 외관을 살펴보면 외벽의 주재료는 적벽돌과 화강암이며, 지붕부는 함석경사지붕이다. 고전주의 양식으로 된 현관과 창문은 세월의 흔적이 남아 고혹적인 느낌이 든다. 이오니아 양식의 기둥을 두른 1층 발코니, 방마다 설치된 벽난로, 2층 발코니 타일은 우아한 귀부인이 머물다 간 공간처럼 기품을 뽐낸다. 이곳에서는 회화보다는 주로 설치미술이나 조각, 건축 관련 전시가 이어졌는데 옛 건물의 인테리어도 작품의 일부처럼 잘 어우러진다.

백남준의 작품과 조각가 김윤신의 작품을 전시 중인 서울시립미술관 남서울 분관

20세기 초반 벨기에라는 나라와 대한제국의 기억을 머금은 서울시립미술관 남서울 분관. 중립국을 표방했던 격동의 대한제국의 역사를 온몸으로 겪어낸 집이라는 것을 알면 미술관이 지닌 의미가 더 풍부하게 와닿을 것 같다. 또한 남현동 및 사당동은 주택 밀집 지역임에도 미술관이 들어서기까지는 주민을 위한 문화시설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옛 벨기에 영사관을 활용해 운영되고 있는 시립미술관은 인근에서 유일한 문화 시설이자 ‘동네 미술관’으로 지역 주민들에게 환영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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