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을 여행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들르는 곳이 있다. 바로 성심당인데 이곳의 빵이나 케이크는 가격도 저렴하고 맛도 좋아 전국 단위의 핫플이다.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아침 일찍 가도 늘 긴 줄이 골목 바깥까지 이어져서 망연자실하게 만든다. 성심당이 위치한 대전 중앙로는 대전의 구도심이다. 번화가인 성심당 주변을 제외하고는 여느 지방 구도심처럼 활력이 떨어지고 빈 상가나 집들이 곳곳에 눈에 띈다.
그래도 대전까지 왔으니 원도심에서 오래된 대전의 흔적을 찾아보고 가기를 권한다. 성심당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1962년 준공된 대흥동성당을 비롯해 옛 대전부청사, 옛 대전여중 강당, 옛 충남도청 및 관사촌도 만날 수 있어 근대 건물 탐방하기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길가에 도보 투어 이정표와 표지판도 잘 정비되어 있어 이용객들의 편의롤 돕고 있다.
성심당 인근에는 대전시립미술관 창작센터라는 아담한 옛 건물이 있다. 사실 글쓴이도 성심당에 들렀다가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점심 먹을 곳을 찾다가 우연히 발견한 숨은 보물이다. 이 건물의 원래 용도는 '대전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구 충청지원'이란 다소 긴 명칭을 지니고 있다. 농산물 품질 관리를 위한 건물인데 대전 지역 건축가 배한구(1917~2005)가 설계한 1958년에 건립된 관공서다.
1999년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청사가 옮겨 간 뒤 2008년 대전시립미술관의 '대전창작센터'로 개관했다. 국내 최초로 근대건축물을 활용한 전시관이라고 한다. 일제강점기 재판소를 리모델링해 지은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관 보다 3년이나 먼저 개관했으니 말이다.
관공서 답지 않게 아담하고 옹골진 이 건물은 ㄱ자형 2층 벽돌 건축으로 우리가 흔히 봐 오던 성냥갑 스타일의 관공서 건물이 아니다. 우선 창틀이 예사롭지 않다. 돌출된 사각 프레임은 마치 예술작품을 보는 느낌이다. 외벽 창틀이 죄다 바깥쪽으로 돌출되어 있어 레고 블록 같은 느낌이 들고 입체감이 도드라진다. 특히 오후가 되면 햇살이 강하게 드는 서쪽 창틀에는 햇빛 차단을 위해 수직 창살을 설치했다. 심플하지만 기능 면에서 있을 거 다 있는 전형적인 모더니즘 건축인데, 1999년 '대전시 좋은 건축물 40선'에 선정되었다. 등록문화재 제100호 근대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이유를 알만하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 보기로 했다. 아치형 출입구가 방문객을 맞아준다. 미술관으로 리모델링하며 원형을 많이 잃었겠지만 이곳저곳 옛 관공서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대리석 난간의 계단과 바닥은 옛날 그대로 많은 사람들이 거쳐간 흔적이 남아 건물의 오랜 역사를 증명한다. 마침 <해파리 프로젝트>란 전시명으로 3인의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선보이는 중이었다. 재창조된 타이어, 빨래건조대, 돌가루 등의 재료로 톡톡 튀는 아이디어와 새로운 담론을 확장하기 위한 기획이 돋보인다.
그동안 대전창작센터에서는 전시기획자를 발굴·지원하는 동시에 대전 원도심 문화예술 활성화 시키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이를 증명하듯 지역 특성을 살려 대전 지역의 신화, 전설, 민담 등을 레퍼런스로 한 창작물 등을 주로 전시해 왔다. 특히 젊은 작가들의 감성 어리고 재기 발랄한 작품을 주로 전시해 MZ세대들에게 환영받고 있다.
전시를 보고 나오면 건물 바로 앞에 대전 중앙로 지하상가 D-3 출입구가 나온다. 요즘 이곳은 MZ세대들이 찾는 핫플로 자리 잡아 다양한 볼거리와 쇼핑, 놀거리가 가득하다. 특히 비 오는 날에 편하게 놀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일 것이다. 대전역에 도착하면 성심당만 들르지 말고 중앙로 인근을 도보투어 할 만한 충분한 명분을 준다.
전에 서울에서 유명 인사의 강연을 들으면 대전에서 KTX 타고 왔다는 수강생들이 꼭 한 두 명은 있었다. 그게 십 년 전 일인데 이제 대전 구도심에도 이런 복합문화공간이 생겨 새로운 담론과 문화생활에 목마른 지역 주민들을 많이 흡수해 주니 참 고마운 공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낯선 동네를 걷다가 우연히 만나는 근대문화유산이 소중하게 다가오는 이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