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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 Oct 26. 2024

헤레디움-일제의 수탈장소에서 현대미술 전시공간으로

미술관이 된 옛 건물 5

대전이 노잼도시라고?

대전으로 향하는 KTX를 타고 남쪽으로 향할수록 궁금증이 고개를 들었다. 언제부터 대전이 “노잼도시”로 불렸을까? MZ세대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 서울이나 수도권만큼 젊은 세대들이 놀 곳이 마땅치 않아서 그런가? 그건 여느 지방 도시가 직면한 공통된 문제 아닌가? 갈만한 곳이라곤 성심당 빵집 밖에 없다고들 한다. 대전과 연고가 전혀 없는 내게도 참 모욕적으로 들리지만 나도 한때는 대전을 영남이나 호남 지방을 가기 위해 거쳐가는  징검다리 동네로 여겼던 건 사실이다.


대전이 세인들에게 크게 주목받던 시절은 1994년 대전엑스포 개최도시로 지정됐을 때였던 것 같다. 그 시절 좀처럼 수도권 밖을 나갈 일이 없던 “서울 촌년”이던 나도 대전과 대구를 혼동하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엑스포 덕분에 대전이란 도시가 뇌리에 각인되었고 위상도 크게 달라졌던 것 같다. 물론 엑스포는 못 봤지만 마스코트와 함께 그 시절 엑스포가 대대적인 국가적 이벤트였던 사실은 아직 기억에 생생하다.


 대전의 역사는 짧다. 대전은 일제강점기 때 계획도시로 탄생했다. 도시의 형성과 함께 그 시절 유행했던 근대 서양식 건축물들이 다수 지어졌다. 충남도청이 들어서면서 그 일대를 중심으로 은행과 상점은 물론 군청과 부청사 등 각종 관공서들이 하나둘씩 들어섰다. 해방 이후 이러한 건물들은 여전히 관공서로 사용되다가 그 기능을 잃고 여러 용도로 전전하다 하나둘씩 없어지곤 했는데 그래도 다른 지역에 비하면 제법 많은 수가 남아있고 최근에는 근현대건물의 가치를 인정받아 문화공간으로 새롭게 변신 중이다.


대전역에 내려 조금만 걸어가면 독특한 건물이 눈에 띈다. 육중한 화강암 장식의 대문과 계단, 주춧돌로 이루어진 짙은 흑색 벽돌 건물은 주변의 흔히 볼 수 있는 상가건물과 시각적으로 차별화된다. 20세기 초반 지어진 근대 건물이 2023년 전시공간으로 재탄생한 곳이다. 이 건물은 원래 동양척식주식회사였다(이하 동척).

동척은 영국의 동인도회사를 본보기로 삼아 일제가 만주와 조선의 식민지 경영을 위해 설립한 수탈 기관. 일본인이 조선에 세운 동척은 9개의 지점이 있었는데 현재는 목포와 부산, 대전 세 곳에만 남아있다.


동척 대전지점은 1922년 대전시 동구 인동 대전시장 인근에 조성되었는데 조선인들은 물론 한반도라는 식민지에 이주한 일본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공공기관이 설치된 지역의 경계다. 해방 후에는 전신우체국으로 사용되다가 1984년에 개인 소유로 넘어가 상업공간으로 쓰였다.

식민지 시대의 어두운 잔재란 오명 때문에 건물은 좀처럼 과거를 드러내지 않았을 것 같다. 2004년 근대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아 근대문화유산 98호로 지정됐다.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던 건물의 가치가 알려지면서 동척 대전지점 시절의 고증자료를 토대로 복원이 이루어졌다.

 2022년 12월, 노잼도시 대전에 우아하고 격조 높은 문화 공간이 탄생했다. 사람들은 과거 동척이라고 불렸던 이 건물에 헤레디움이란 이름을 지어 줬다. 헤레디움은 “유산으로 물려받은 토지”란 뜻의 복합문화공간이다.

  

헤레디움에서 첫 전시 작가로 안젤름 키퍼를 지목한 것은 적절하다 못해 운명적이란 느낌까지 들었다. 게다가 개관 전을 위해 신작을 포함, 대형 작업 16점을 프랑스에서 직접 수송해 왔다. 키퍼는 1945년 패전국 독일에서 태어났다.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해방둥이’에 속한다. 2차 세계대전 전범국 출신의 화가와 그 동맹국이 남긴 식민지의 유산인 동양척식회사의 조합이라니.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이제 집을 짓지 않습니다’  2022년 신작을 헤레디움 개관전에 가져왔다. 전쟁으로 폐허 속에서 자란 작가의 유년시절을 회상하며 만들었다.

키퍼는 전후 세대에 속한다. 1960년대 독일 사회는 국가의 정체성 문제와 2차 세계대전의 전범국이라는 도덕적, 철학적인 문제의식이 청년 세대에 파고들었다. 전쟁과 대학살을 야기한 아버지 세대의 용서받지 못할 범죄로 인해 전후 세대들이 졸지에 원죄의식을 떠안은 셈이다.

키퍼가 청년기를 보냈던 1960년대 독일 미술계에서는 이러한 분위기 탓인지 새로운 시각예술의 움직임이 들끓고 있었다. 히틀러 집권 시 독일은 아방가르드 회화를 퇴폐미술로 낙인찍고 전위적인 화가들을 탄압했다. 전후 세대 미술가들은 아픈 과거를 극복하려는 의지를 시각적으로 표출했다.


키퍼는 지푸라기와 유리조각, 나뭇가지, 납, 금박 등 여러 재료가 포함된 혼합매체를 사용해 전후 폐허가 된 독일의 상황을 새로운 양식으로 표현하면서 개인적, 사회적 상처를 치유하고자 했다. 또한 북유럽 신화와 문학, 천체물리학, 연금술, 생물학 등 다양한 요소를 접목해 나치즘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역사는 결국 철저히 몰락한 뒤 폐허 위에서 새롭게 빛난다는 진실을 헤레디움과 키퍼가 기묘하게 조응하며 전달해 주는 것 같았다.  독일과 한국이 그랬듯이.

이제 헤레디움은 전국에서 KTX 타고 전시를 보러 오는 대전의 명소로 자리를 잡았다. 이곳에 다녀온 이상 대전은 더 이상 노잼도시가 아니다. 구도심답게 인근에 걸어다니면서  볼만한 문화유산들을 발견하는 재미도 누릴 수 있다.

 안젤름키퍼 <가을 Herbst> 전시를 시작으로 <지금, 여기, 현대미술> 전, <이케무라 레이코> 전을 거쳐 현재는 독일 작가 <마르쿠스 뤼페츠: 죄와 신화>가 열리고 있다. 입장료는 15000이고 사전예약 필수. 미술관에 드립커피를 파는 카페도 있다. 통창으로 미술관 앞마당을 바라보며 커피 마시는 여유도 누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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