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한입

프롤로그

by namddang

브런치 작가 소개란에 나는 이렇게 적었다.

"지극히 평범한 공대 출신 엔지니어입니다."


그 말 그대로다.

나는 공학 박사이며, 에너지 분야 시스템을 개발하는 'Research Engineer'로 일하고 있다.

이순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아직 현역이고, 개발 업무가 나에게는 여전히 재미있다. 적성에 맞는 일을 평생하고 있다는 건, 참 감사한 일이다. 뼛속까지 이과인 셈이다.


작년 10월, '작가의 여정'이라는 브런치 팝업 전시를 계기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때 떠오른 키워드가 '아내'였고, 함께한 시간을 되짚어보며 매주 한 편씩 글을 써 내려갔다. 어느덧 9개월이 흘렀고, 바쁜 회사 생활 속에서도 주 1회 연재를 꾸준히 이어가려 노력했다. 덕분에 글쓰기는 이제 습관이 되어가고 있다.

그 팝업 전시가 내 삶을 바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글쓰기를 계속 이어가되, 이번에는 '본업'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내 이름 앞에 늘 붙어 있던 '엔지니어'라는 본캐로 돌아와서.

그래서 시작하는 새 연재의 제목은 '기술 한입'이다.


앞으로 몇 년 후면 현역에서 예비역으로 전환될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 그 변곡점을 앞두고, 내가 보고 겪고 고민해 온 기술 이야기를 정리하고 기록해보고자 한다.

이런 기록은 내 인생 후반전을 위한 새로운 출발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되도록 어려운 용어나 복잡한 설명은 피할 생각이다. 대신, "왜 그럴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해 한 입 크기로 쉽게 풀어보려 한다.


이번 주, 우리 정부가 트럼프의 25% 관세 부과를 막기 위해 제안한 'MASGA (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 프로젝트는 신의 한 수였다고 생각한다.

일본이나 EU가 감히 할 수 없는, 우리만 할 수 있는 제안이었다.

정부는 세계 최고 수준의 조선 기술을 지렛대 삼아 협상에 나섰고, 그 결과 일단 큰 불은 피했다.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기술적 맥락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MASGA로 LNG 운반선 프로젝트가 진행된다면, 뒤에서 조용히 웃고 있을 나라가 있다. 바로 프랑스다.


우리나라 조선 3사 (HD현대중공업, 한화오션, 삼성중공업)는 LNG 운반선 분야에서 세계 최고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그 핵심인 화물창 (LNG를 저장하는 탱크) 기술은 프랑스의 GTT라는 회사가 독점하고 있다.

LNG선을 수주할 때마다 선박 계약 금액의 약 5%, 대략 100억 원가량을 로열티로 지불해야 한다.

배는 우리가 짓고, 돈은 프랑스가 챙긴다.

말 그대로,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받는 셈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자체 기술 기술을 시도하지 않았을까?

물론 했다.

2018년, 삼성중공업은 국책사업으로 개발한 국산 화물창 KC-1을 장착한 LNG 운반선 2척을 SK 해운에 인도했다.

하지만 운항 중, 화물창 바깥벽에 '결빙현상 (Cold Spot)'이 발생했다.

LNG는 -160 oC의 극저온 상태다. 이 차가운 액체를 증발하지 않게 안전하게 저장하려면, 외부 대기 온도와의 온도차를 극복할 고도의 단열(Insulation) 기술이 필요하다.

얼음물에 얼음을 오래 저장하기 위해서 텀블러나 보온병의 단열 성능이 좋아야 한다는 걸 생각하면 된다.

여러 차례 원인을 분석하고 수리했지만, 결국 해당 선박은 모두 폐선되고 말았다. LNG선 한 척에 대략 2억 달러 정도한다. 이렇게 비싼 배 2척이 고철이 되어 버렸다.

이 기술은 우리가 진정한 세계 최고의 조선 강국을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개발을 해야 한다.


나는 앞으로 이처럼 뉴스나 생활 속에서 마주치는 기술들을 다뤄보려 한다.

겉보기엔 낯설고 어렵지만, 알고 나면 흥미로운 이야기들.

무심코 지나쳤던 현상들에 대해 '왜?'라고 한 번쯤 생각해 본 적이 있다면, 흥미 있게 읽을 수 있는 글이 목표다.


흔히 예술가들은 말한다.

"아는 만큼 보인다."

기술도 마찬가지다. 조금만 알면,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


너무 거창한 목표일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일단 시작하는 것이다.

'기술 한입'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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