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한입

히트파이프(Heat Pipe),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열을 다스리는 기술

by namddang

노트북을 오래 사용하다 보면 본체가 점점 뜨거워지는 것을 느낀다.

이 열은 전자기기 내부에서 끊임없이 발생하는 에너지의 흔적이다. 이 열을 외부로 빼내는 핵심 기술이 바로 '히트파이프(Heat Pipe)'다.

말 그대로, 열을 옮기는 관이다.


히트 파이트는 노트북과 스마트폰은 물론, 서버 컴퓨터와 인공위성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사용되는 고효율 열전달 기술이다.

오늘날 '열관리(Thermal management)' 분야에서 빠지지 않는 핵심 키워드이기도 하다.

이번 글에서는 히트파이프의 원리와 구조를 이해하기 쉽게 풀어본다.

노트북의 히트파이프 (출처: 위키백과)

히트파이프의 핵심은 상변화(Phase Change)에 있다.

내부의 작동 유체가 열을 받아 액체에서 기체로 변하고, 다시 응축되는 과정을 반복하며 열을 이동시킨다. 일반적인 금속은 열을 전도 방식으로만 전달하지만, 히트파이프는 액체와 기체 사이의 상변화를 이용하기 때문에 훨씬 효율이 높다. 그래서 얇고 작은 구조임에도 놀라운 열전달 성능을 발휘한다.


구조는 의외로 단순하다. 밀폐된 금속 관, 그 안에 들어 있는 소량의 작동 유체 (물 또는 암모니아 등), 그리고 관 안쪽을 따라 형성된 위크(Wick) 구조가 전부다. 위크는 미세한 다공성 구조로, 스펀지처럼 액체를 빨아들이는 역할을 한다.

중학교 과학 시간에 배웠던 모세관 현상을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가느다란 관 속에서 액체가 중력과 무관하게 위로 끌어올려지는 현상이다.

이 덕분에 히트파이프는 무중력 환경에서도 작동할 수 있으며, 실제로 인공위성과 우주선에 널리 사용되고 있다


여기서 잠시, 열이 이동하는 방식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열전달에는 전도(Conduction), 대류(Convection), 복사(Radiation)라는 세 가지 방식이 있다. 그러나 우주 공간에는 공기와 같은 매질이 거의 없기 때문에 전도와 대류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 점은 보온병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된다. 보온병은 내부와 외부 사이에 진공층을 만들어 전도와 대류를 차단한다.

잘 이해되지 않으면, 우선 진공층이 없는 뜨거운 물이 담긴 보온병을 가정해 보자.

우리는 뜨거워서 보온병을 잡을 수 없다. 이게 전도다.

그리고, 보온병을 잡지 않고, 근처까지 손을 뻣으면 따뜻함을 느낄 수 있다. 이게 대류다.

물론 완벽한 진공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약간의 열전달은 있을 수밖에 없다.

보온병이라도 뜨거운 물을 오래 두면 식는 이유다.


복사는 매질 없이도 전달되는 열 이동 방식이다. 복사는 적외선 형태로 열이 전달되기 때문이다. 태양에서 방출된 에너지가 진공 상태의 우주를 지나 지구에 도달하는 것도 바로 이 복사 덕분이다.

복사 에너지는 거리 제곱에 반비례하기 때문에, 태양에 가까운 수성은 매우 뜨겁고, 멀리 떨어진 토성은 극도로 차갑다.

만약 복사 열전달이 없다면, 우주는 열이 이동하지 않는 공간이 되었을 것이고, 수성이나 토성의 온도 차이도 지금처럼 크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주선이나 인공위성 내부에서 발생한 열은 어떻게 우주 공간으로 내보낼까?

답은 의외로 단순하다.

내부에서 발생한 열을 한 곳으로 모아 거대한 방열판, 즉 복사판으로 보내 우주 공간으로 방출한다. 정교한 열 이동 기술의 핵심이 바로 히트파이프다.

열 이동 설계가 조금만 잘못되어도 위성 시스템은 과열로 멈출 수 있다.

그만큼 히트파이프는 조용하지만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히트파이프의 작동 원리는 자연스럽다. 뜨거운 쪽에서 액체는 증발해 기체가 되고, 기체는 차가운 쪽으로 이동한다. 그곳에서 다시 액체로 응축되며 열을 방출한다. 응축된 액체는 위크 구조를 따라 다시 뜨거운 쪽으로 돌아온다. 이 과정은 전기나 펌프 없이도 끊임없이 반복된다. 마치 숨 쉬듯 자연스럽다.

그래서 히트파이프는 고장 확률이 낮고, 효율은 높다.


히트파이프는 단순한 금속 관이 아니다. 그 안에는 열역학과 유체역학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노트북이나 스마트폰 속에 숨어 있어 대부분의 사람들은 존재조차 의식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기술이 없다면 전자기기는 금세 뜨거워져 제 성능을 유지할 수 없을 것이다.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자기 역할을 다한다. 스스로를 과시하지 않으면서 가장 어려운 문제를 가장 단순한 방식으로 해결하는 히트파이프를 보며 어쩌면 이것이 엔지니어가 지향해야 할 모습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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