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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수고한 ADHD

성인 ADHD가 가지는 의외의 따스한 면모 


ADHD라는 병은 시대나 문화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지곤 한다. 전편에서 언급했던, 내가 심리학 학부생이던 시절만 해도 ADHD는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은, 극소수의 어린아이들이 겪는 집중력 장애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우울증이나 공황장애, 불안장애 같은 심리장애를 대체로 남얘기처럼 듣던 나로서는 당연히 ADHD도 남얘기였다. 나름대로 ‘이렇게 배웠으니 나중에 결혼해서 내 아이가 ADHD 경향을 보이는지 잘 지켜봐야겠군’ 정도의 생각을 가졌던 것 같다.


같은 시기 미국 같은 경우, ADHD가 우리나라보다는 좀 더 익숙하게 받아들여지는 문화였다고 한다. 그리고 그 문화는 한국에도 영향을 끼쳐 2020년대에 들어서는 우리나라에서도 꽤 익숙한 용어로 전파되고 있다. 다른 심리장애 중에도 그런 경우가 있지만, 특히 ADHD에 대해서는 몇 가지 선입견이 있는데 그중 주요 요인이 바로 ‘약의 오남용’과 관련돼 있다. ADHD에 처방되는 약은 대체로 도파민 재흡수 억제와 관련이 있는데, 이를 통해 집중력이 높아진다거나 식욕이 감소하는 효과가 있다는 식의 정보가 대중들에게 알려진 것이다. 그래서 ADHD 환자가 아닌 경우에도 집중력을 높이기 위해, 또는 살을 빼기 위해 불법적으로 처방약을 구하는 일들이 있다.


이렇게, 질환 자체와는 다른 이유로 입에 오르내리는 경우, 의도치 않게 그 질환 자체에 대해서도 선입견이 생기기 마련이다. 흔히 먹는 감기약은 딱히 부작용도 없고 구하기 어려운 것도 아니므로 누군가가 감기기운이 있어서 감기약을 먹는다고 했을 때 이를 다른 관점에서 볼 여지는 별로 없다. 하지만 ADHD는 그 처방약을 비환자들도 구하려 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ADHD여서 약을 먹는다고 했을 때 진짜 ADHD가 맞냐, 꼭 약을 먹어야만 하는 거냐 등등의 우려 섞인 눈빛을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특징은 누군가가 전문적인 지식이 있는 사람이 ‘넌 ADHD야’라고 말해주지 않고서야, ‘내가 혹시 ADHD가 아닐까?’라고 생각하게 하는 것을 조금 부담스럽게 만든다.


나 역시 그랬다. ADHD라는 병의 존재 자체를 모르던 학창 시절은 그렇다 치더라도 학부시절 수업을 들으면서도 나 자신을 대입해 볼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분명 내가 겪고 있는 증상에 대해 배우고 있음에도 자각하지 못한 것이다. 그렇게 살아오다가 처음으로 ADHD를 나의 얘기로 생각해 보게 된 건 나이 40이 넘어서였다. 이 과정이 좀 재밌다.


하루는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의 다른 아이의 아버지 2분과 오전에 커피를 한잔 했다. 그러다가 한 분의 조카 얘기를 하게 됐다. 그 조카가 평소 너무 말을 안 듣고 산만해서 만날 때마다 힘들었는데, 초등학교에 가서도 나아지지 않았고, 어느 날 담임선생님이 조카의 부모님, 그러니까 이 얘기를 한 분의 형과 형수께 연락해서 아이가 ADHD 검사를 받아보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놀라면서도 그동안 아이가 보인 모습에 수긍이 되는 면이 있어서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가봤는데, 아이의 아버지가 ADHD 진단을 받았다는 얘기였다.


이야기 흐름 상 작은 반전이 있어 세 아버지끼리 한바탕 웃었다. 그리고 이 얘기가 나 스스로를 한번 돌이켜보는 계기가 됐다. 아이가 ADHD인 줄 알고 병원에 갔는데 본인의 ADHD를 발견한 아버지의 얘기를 듣고 내 ADHD를 의심해 보게 된 복잡한 연쇄과정이었던 셈이다. 돌이켜보는 데에서 멈출 수도 있었겠지만, 결국 병원 문까지 두드리게 만든 계기가 있다. 이 이야기는 빌드업이 좀 길다.


당시 나는 회사를 옮기는 과정이었다. 이전 회사에서 업무가 꽤 많았던지라 야근이 잦았고 아이도 태어난 지 얼마 안 됐을 때여서 개인시간이 많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그러다 회사를 그만두고 오랜만에 여유로운 시간을 즐길 수 있었다. 그동안 쓰고 싶던 글도 쓰고, 새로운 것들을 공부하기도 하고, 운동도 하고, 특별한 볼일 없이 시내 여기저기를 걷기도 하고, 영화도 보고 책도 보고 등등. 많은 직장인들이 팍팍한 일상 속에서 그리워하는 그 한량 같은 삶이 짧게나마 주어진 것이다. 나는 그 한량의 삶을 되도록 알차게 보내보고자 하는 욕심에 가득해있었다.


아무리 시간적 여유가 많아지더라도 시간이 흐르는 속도가 느려지는 건 아니다 보니, 이 일을 하다 보면 저 일도 손을 대야할 것 같고, 그러다 보면 다른 일에도 손을 대곤 한다. 그렇게 여러 일을 오가다가 머리가 복잡해지면 유튜브를 보면서 머리를 식히기도 한다. 그렇게 몇 주가 훌쩍 지나갔고, 결과적으로는 기승전 유튜브로 끝나는 하루 일과도 몇 주일 치가 쌓이게 됐다. 공부도, 운동도, 영화도, 책도 별다르게 성과가 없는 상태에서 유튜브 쇼츠 중독 증세만 심해져 갔다.


여기서 중요한 건, 유튜브 쇼츠 중독 증세가 심해졌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이로 인해 나 스스로가 다소간의 자책감에 빠지게 됐다는 점이다. 나는 왜 이모양이지. 나이 마흔을 먹고도 자기 조절 하나 못하고 쇼츠나 보고. 얼마 만에 시간을 갖게 됐는데 게을러 빠져서는 그 시간을 알차게 쓰질 못하고 이렇게 쓸모없는 시간이나 보내다니. 이런 자책감은 막상 생산적인 활동을 할 때 더욱 부담을 주게 되고, 그러다 보면 스트레스가 쌓여 SNS나 유튜브를 통해 그 스트레스를 잊으려 하고, 그러면 더 자책감이 커지는 악순환이 구성돼버리는 것이다.


바로 이 점에서 문제의식을 느끼기 시작할 때쯤 앞서 소개한 3명의 아버지 간 대화가 있었고, 이는 재미있는 이야기였으면서도 무언가 묵직한 메시지를 남기는 듯했다. 애초에 한 가지 일이 아니라 이 일 저 일을 동시에 왔다 갔다 하며 하는 것은 내 오랜 습관이자 한편으로는 ADHD인에게는 아주 자연스러운 행동패턴이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나는 대화를 하다가 다소 격앙되면 상대의 말을 끊는 나쁜 습관이 있었는데, 나이가 먹고도 잘 안 고쳐져서 애를 먹고 있기도 했다. 일종의 충동 억제 미숙인 셈이다. 책을 읽을 때도 어느 시점에 앞페이지 내용이 기억이 안 나서 다시 앞페이지로 돌아가다 보면 결국 책 맨 앞부터 다시 읽기 시작한 기억은 수도 없이 많았다. 따져보니 나 자신에게도 ADHD인스러운 모습들이 적잖이 발견됐다. 무엇보다도, 그러한 면모는 최근의 나에게 자책감의 악순환을 가져오지 않았던가.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방법으로, 일단 병원에 가서 전문가의 견해를 들어보고자 한 것이다.


집에서 가까운 병원을 예약했다. 정신의학과에 찾아가는 것 자체에는 큰 부담을 느끼진 않는 편이었지만, 막상 처음으로 정신의학과 진료를 받는 것이다 보니 어느 정도의 긴장감까지 떨칠 수는 없었다. 예약시간이 되어 진료실에 들어가 의사에게 위의 빌드업 스토리를 차근차근 밝혔다. 의사는 몇 가지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나의 대답이 이어지자,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의사의 견해를 들을 수 있었다.


이 정도면 성인 ADHD라고 볼 수 있다. 오늘 진료상담한 내용과 지금까지 본인의 임상적 경험을 비추어볼 때, 굳이 따로 검사를 수행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생각보다 간단하게, 나는 ADHD 진단을 받았다. 막상 어떤 기분이 들지에 대해 미리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실제로 그 순간 가장 먼저 머릿속을 스쳐간 것은 파편적인 옛 기억들이었다. 책 읽는 속도가 너무 더뎌 난독증이 아닌가 의심했던 때. 한 과목만 집중해서 파고드는 게 잘 안 돼서 늘 2~3개 과목 문제집을 돌아가며 보던 학창 시절. 딴생각이 날 때마다 더 큰 딴생각으로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해 늘 그리던 같은 패턴의 퍼즐 같은 도형들.

그런 기억들에 이어 어떤 감정이 희미하게 피어올랐다. 그 감정에 이름을 붙이자면, 그 기억들의 주체였던 당시 과거의 나에게 드는 측은함, 그리고 그런 핸디캡을 안고도 여기까지 마흔까지 살아온 나 자신에 대한 약간의 대견함, 그런 따뜻한 마음이었다.


의사는 가장 보편적이고 안전한 약을 최소한의 용량으로 처방해 주었고, 손에는 노르에피네프린-도파민 재흡수 억제제 한 상자가 들려있었다. 나는 편의점에서 물을 하나 사서 바로 한 알 먹어보았다. 몇 분 후 길을 걷다가 잠깐 신호등이 바뀌길 기다리고 서게 됐다. 신호등 옆의 표지판에 쓰인 글씨를 가만히 응시하고 있었다. 너무 사소한 일이지만, 나에게는 낯선 느낌이었다. 그때 깨달았다. 나는 40년 동안 한 번도 하나의 텍스트를 이렇게 몇 초 이상 가만히 응시하고 있었던 적이 없었다.


이 사실을 깨달았을 때 나의 감정은, 측은함과 대견함을 넘어서서, 조금은 눈물이 나올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동안 정말 수고했구나. 그걸 끌고 여기까지 오다니. 이제는, 그걸 내려놓을 수 있게 됐구나. 무엇보다도, 그 모든 건 내 잘못이 아니었구나.


이렇게 나는, 매달 정신의학과에 예약을 하고 한 달 치 약을 받아오는 라이프 패턴을 갖게 됐다. 


그때만 해도 이 패턴이 2년 후의 나에게 얼마나 큰 도움이 될지에 대해서 까지는 알지 못한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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