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하지 말고 받아들이기
나는 학부시절 심리학을 전공했다. 심리학을 전공으로 선택한 이유는 특별하지 않았다. 당시에는 광역화 모집을 했던 학교에 ‘인문계열’로 입학, 각종 어문학과들 및 사회학과, 심리학과 정도의 선택지가 있었다. 그 중 심리학과에 비교적 흥미를 느꼈다는 정도가 전공 선택의 이유이다.
이상심리학이나 신경심리학 등의 수업을 듣다보면 공황장애, 불안장애, 우울증 같은 단어들이 등장한다. 이렇게 병리적인 단어들이 언급될 때 대체로 학생들은 많은 관심을 보였다. 아마도 각자 다른 이유였을 것이다. 누군가는 본인이나 주변인의 상태를 대입했겠고, 어쩌면 복잡한 호르몬이나 신경전달물질 얘기보다 훨씬 덜 지루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나의 경우, ‘우울하다는 감정이 심하다고 해서 우울증이라는 질환이 되는 것은 아니다’라는 지점에서 가장 큰 관심을 갖게 됐다.
그 전까지 나는 누구나 느끼는 우울한 정서의 정도가 심하면 우울증이라고 불리는 줄 알았다. 그게 아니었다. 호르몬의 이상이든, 사고의 후유증이든, 다양한 이유에 의해 신경계의 작동이 이상증세를 보여 그 결과로 특정한 증상이 나타날 때 우울증이라는 진단을 내리는 것이었다. 공황장애도, 불안장애도 마찬가지였다.
대체로 그러한 병을 갖고 있지 않은 학생들이 수업을 들을 때는, 학생들이 의도하진 않았겠지만, 그 병을 가진 환자를 타자화하게 된다. 나 역시 그랬다. 나는 저렇지 않은데 저런 사람들도 많은 거구나. 정말 불편하겠구나. 나는 아프지 말아야할텐데. 나에게 벌어지지 않은 일에 대해 일종의 호기심을 가지면서도 나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약간의 안도를 느낀다. 때때로 감정이입도 하고 측은지심이나 옅은 사명감 같은 것을 느끼기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결국 남얘기인 것이다.
그런 남얘기가, 어느날 느닷없이 내 얘기가 돼버렸다. 정서적인 질환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병들이 그렇겠지만, 증상의 발현은 예상치 못하게 찾아온다. 아니 사실 예상을 할 수 있는 단서들은 있었지만 내가 그 단서를 외면했다는 표현이 옳겠다. 어쨌든 이 얘기는 나중에 하기로 하고, 갑작스러운 증상의 발현으로 인해 나는 낯설고도 깊은 바다에 일순간 빠져들어 허우적거렸다.
허우적거리던 그 순간, 발견한 특징이 있다. 그 증상을 맞이하고있는 ‘나’와 그런 스스로를 바라보고 있는 ‘나’가 분리된 상태를 느낀 것이다. 분명 나는 극도의 긴장과 불안을 경험하고 있는데, 마치 학부시절 수업시간 강의실에 앉아있던 또 하나의 나 자신이 끙끙 앓고있는 나를 바라보듯 아 정말 이렇게 되는구나, 정말 불편한거구나 하는 평가를 내리고 있었다. 나는 한없이 움츠러들어 쪼그려 누워있는 사람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그런 나를 한발 뒤에서 바라보는 사람이기도 했다. 이 둘은 둘다 나 자신이지만 서로가 서로에게는 남과 같았다.
그렇다면 그동안 죽음을 두려워하고, 때때로 이성보다 감각을 우선시해보려 노력하고, 명상을 해보고, 마음챙김이라는 개념에 반가워하던 ‘나‘는 이 둘 중 누구일까. ’건강했던 나’에게 문제가 생기면서 ‘쪼그라들어있는 나’라는 존재가 분리되어 떨어져나온 것일까, 아니면 ‘건강했던 나’가 쪼그라들어버린 것이고, 그걸 바라보는 내가 떨어져나온 걸까. 혼자 생각해서 답을 낼 수 있는 질문은 아니었고, 둘 중 무엇 하나가 맞고 하나는 틀릴 것도 아니었다. 지금에서야 한가하게 이런 말장난 같은 복잡한 고민을 할 수 있지만, 그 당시는 그런 상황이 아니었다. 어느 쪽이 맞든 틀리든 그 시점에는 나는 공황에 빠져있었고 이런 심오한 사유를 할 여력이 없었다. 이 ‘분리된 나’에 대해서는 다음에 더 자세히 얘기해보기로 하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으니 당시의 증상을 좀 더 서술해보자.
신체적으로는 몸이 때때로 떨리는 증상이 있었고 식은 땀이 줄줄 흐르듯 났다. 그렇다고 오한이 느껴졌다거나 열이 있던 것은 아니다. 머리속에는 수많은 생각들이 스쳐지나가지만 어느 생각하나에 깊이 빠지지는 않고 그저 좀 더 편한 자세를 찾아 그 자세로 누워있고 싶다는 옅은 의지만 남아있었다. 마치 고장난 컴퓨터에서 어떤 창을 열면 순간적으로 그 창이 잠깐 열리는가 싶다가 이내 에러화면으로 전환되듯, 어떤 생각을 시작하면 그 생각이 전개되지 않고 차단되는 느낌이었다. 태아자세처럼 온몸을 웅크리고 옆으로 누워있는 자세가 제일 편하게 느껴졌는데, 그러다 땀이 축축해져서 불쾌하면 반대편으로 돌아눕는 걸 한참 반복했다.
평소 같았으면 먼저 일어나서 샤워를 하고, 딸아이의 어린이집 등원 준비를 함께 한 후 아이를 바래다주고 나는 바로 출근을 하면 되는 거였다. 하지만 샤워의 문턱 조차 넘지 못하고 서너시간 정도 잔뜩 웅크린 채 뒤척거리기만 했다. 나 대신 아이를 등원시킨 아내가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나는 계속 그 상태로 누워있었다. 이 때 아내는 내가 단순히 컨디션이 안좋거나 잠이 덜깬 것과는 전혀 다른 상태에 있음을 감지했다. 정확히 기억이 나진 않지만, 아내는 진심으로 걱정이 되는 표정을, 있는 힘을 다해 담대하고 태연한 표정으로 가리려 노력했던 것 같다. 그 복합적인 표정을 보고 나는 고장난 샤워기처럼 왈칵 눈물을 쏟았다.
짧았지만 많은 이유와 감정이 깔려있는 울음이었다. 내가 왜이럴까 하는 낭패감, 미지의 길위에서 느껴지는 공포심, 그 순간 아내가 곁에 있어줌에 대한 고마움, 언제부턴가 나 자신에게 쌓여왔을 스트레스의 무게감, 이젠 어떻게 해야하나 싶은 막막함, 기타 등등. 그 중 가장 컸던 감정은,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하는 불안감이었던 것 같다. 신체적인 질병을 얻거나 사고를 당한 사람이 가장 힘들어하는 점이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은 불안감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심리장애의 경우에도 해당될 수 있는 일이었나보다.
그런 나를 토닥이며 아내가 말했다. 정확한 워딩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이런 내용이었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괜찮다. 다만, 이게 당분간 나의 상태가 될 것이라는걸 받아들여라. 그것 또한 괜찮다. 그걸 받아들인 채로도 잘 지낼 수 있다. 걱정하지 말고, 받아들여라.
‘받아들인다’라…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전혀 다른 궤적을 살고 있다가 갑자기 하루아침에 그 궤적을 바꿔야하는 경험은, 물론 쉽진 않지만 그렇다고 평생 처음 맞이하는 것도 아니다. 40대가 넘은 나에겐 나름대로 그간 많은 일들이 있어왔으니까 말이다. 그런 면에서, 아내의 말을 들었을 때 어느정도 진정이 되면서, 마치 어지럽게 흩뿌려진 퍼즐들 사이에서 희미한 좌표가 보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퍼즐이 맞춰진 것까진 아니지만, 온통 낯선 감정과 감각으로만 가득하던 것과, 작은 기준 점이라도 하나 찍혀있는 것은 완전히 다른 국면이었다. 북극성이 보인다는건, 나침반이나 지도가 있는 것 보다는 모호하지만, 어쨌든 아무 것도 없는 칠흑 보다는 낫지않은가. 나는 머리 속으로 더듬더듬 되뇌보았다. 나는 공황발작을 겪었고, 그래도 괜찮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고, 그 또한 괜찮다.
아주 미미한 차이였지만, 아내를 안고 울기 전보다는 조금 나아졌다. 회사에 전화를 해서 상태를 설명하고 양해를 구했다. 그것이 불안장애와 공황발작을 동반한 우울증 환자로서의 Day 1 이었다. 불안장애, 공황발작, 우울증, 이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에도 한편으로는 아직도 생경함이 남아있는 단어들이다. 그럼에도 비교적 빠르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건, 아마도 2년 전 성인 ADHD 진단을 받고서 이를 받아들였던 경험의 덕도 있었을 것이다.
나중에 알게됐지만, 성인 ADHD 환자의 80% 이상이 우울증, 불안장애 등 다른 심리장애를 동반한다고 한다. 나의 경우도 그런 사례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었던 걸까.
다음 편에서는 나와 더 오래전부터 함께했던 ADHD 얘기를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