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열자,
딸이 우두커니 서 있다.
네 살짜리 아들을 품에 꼭 안고
모자를 푹 눌러쓴 채로.
갈 곳이 없어서 왔다고 했다.
그림자마저 힘겨워 보여
나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저 손주를 번쩍 안아 올리며,
잘 왔다며 환하게 웃었다.
곤히 잠든 딸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얼큰한 김치찌개를 끓여주는 것뿐이었다.
잠에서 깬 딸이.
그늘진 얼굴로 주방을 둘러보았다.
늘 그랬듯이
내가 좋아하는 찌개네! 하며
신나게 숟가락을 들어 올리길.
그러고는 이내,
살찌겠다 투덜대면서도
밥 두 그릇을 뚝딱 비워내 주길.
배부른 얼굴로
천진난만하게 웃어 준다면..
그 모습 하나로도 나는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