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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니 Sep 12. 2018

개발자요? 간호사 면허부터 버리고 오시죠.

때로 도전보다 어려운 것이 포기입니다.



그래서, 개발자 수업을 들어 말아. 며칠 동안 처박혀 고민했다. 후회 없는 결정을 내리겠다며 여기저기 조언을 구하고 정보를 모으고 엑셀까지 동원해 장단점을 적어보았다. 하지만 엑셀 파일의 열이 늘어날수록 선택 장애가 심해졌다. 개발자를 해야 될 이유가 수십가지, 하지 말아야 할 이유도 수십가지였다.


아무리 머리로 시뮬레이션해봤자 소용이 없지. 우선 질러보자. 나는 뭔가 잘못되었다면 내 본능이 먼저 알아차릴 거라는 믿음을 갖고, 우선 개발자 교육과정을 등록해 보기로 했다.







개발자 교육을 신청하기 위해 제일 먼저 취업성공 패키지에 등록하고, 국비지원 교육을 지원하는 학원 중 한 곳에 상담을 잡았다. 비슷비슷한 학원들과 넘쳐나는 블로그 광고 중 쓸만한 정보를 고르고 선별해 낙점한 B학원이었다. 


내게 배정된 상담 선생님은 부담스러울 정도로 친절했다. 그녀는 자본주의 냄새가 나는 소로 유려하게 학원 커리큘럼을 설명해 주었다. 그녀의 화려한 프레젠테이션이 끝난 뒤, 질답 시간을 가졌다. 이런저런 궁금증들을 묻고 답하다, 상담 선생님이 자연스레 내 전공을 물어보셨다. 나는 덤덤하게 간호사였다고 대답했다. 예상치 못한 대답에 선생님은 진심으로 놀라시더니,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잠시 고르는 듯했다.



"모니씨, 아주 귀한 일을 하셨네요. 사람을 많이 구하셨겠어요." 



무슨 의도로 하시는 말씀인지 짐작은 가는데 말이죠...


"아. 뭐... 그렇죠."


... 어떻게 맞장구를 쳐야 할지 감도 오지 않았다. 내 삶과 개발자의 거리감만큼 이 분도 간호사와는 아주 동떨어진 삶을 살아오셨겠지.



상담 선생님은 다시 기계적으로 "좋은 일 하셨다.", "고생하셨다."라는 인사치레의 말들을 건네시곤 자연스레 비전공자 출신 학원 수료생들의 성공 스토리를 길게 나열하셨다. 그리고 다시 한번 비전공자 출신도 열심히 노력하면 실력있는 개발자가 될 수 있음을 강조하시며 떨떠름한 표정의 나를 격려해 주셨다.



비전공자 출신 개발자 지망생인 나는 학원을 나서며, 너무나 근본적이어서 도리어 잊고 있던 진리를 깨달았다.


'개발자가 되려면, 간호사로 살아왔던 삶은 모조리 버려야 되는 거였어...'








많은 시간과 비용을 투자했던 간호학이란 전공을 이미 한 번 버린 나로서는 이번엔 정말, 정말 신중하게 결정하고 싶었다. 


주변의 조언과 여러 후기를 조합해 볼 때, 비전공자가 백지상태로 공부하기 시작해 개발자로 일 인분 하는 데는 최소 2년+a의 시간이 필요했다. 만약 개발자로서 일을 할 수 있다면 말이다. 개발자가 되기 위한 여정에는 너무나 많은 변수들이 존재했다. 학원을 다니다 일찌감찌 때려치울 수도 있고, 교육 이수 후 취직을 못 할 수도 있다. 운 좋게 취직을 한다 해도 또 적응을 못 하고 방황의 아이콘이 될 수도 있겠다. 취성패 덕분에 비전공자의 개발자 전향이 많아졌다고는 하지만, 기회가 많아졌다는 것이 쉬워졌다는 뜻은 아니다.


물론 이 암담한 미래가 내 이야기는 아닐 거라고 믿고 싶다. 하지만 객관적인 수치를 무시하긴 어렵다. 학원 관계자에 따르면 수강생 중 중도 포기 비율은 30% 내외라 하고, 개발자 교육 수료 후 취업이 무조건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실제로 내가 상담을 받았던 학원은 수료 후 취업률 75% 이상임을 마케팅 문구로 삼고 있었다. 다시말해, 수강생 중 1/4이 반년 넘는 시간동안 개발 수업을 듣고도 자발적 혹은 비자발적으로 개발자로 일하기를 포기한다는 소리다. 게다가 개발자로 일을 시작했지만 1년 이내 사직하고 다른 직종으로 이직하는 인력도 적지 않다고 하니, 나는 괜찮을 거라며 마냥 낙관론을 고수하기는 어려운 수치다.




나는 이런 이유로 머리 빠지도록 개발자를 하네 마네 고민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제일 중요한 사안은 학원 상담을 통해 드러났다. 개발자라는 새로운 업계에 들어서는 순간 나는 2n살의 비전공자 개발자로 평가된다. 간호사가 되기 위해 빡센 커리큘럼을 견뎌냈던 대학시절, 눈물 흘리며 병원을 다녔던 시간들은 이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그네들에겐 그저 공백기로 보일 뿐이다.


병원에서 제일 먼 곳으로 도망치겠다 큰소리치던 나였는데, 알고 보니 나는 그동안 이루어 놓은 알량한 간호사 커리어조차 한 번에 갖다 버릴 용기조차 없는 사람이었다. 무엇보다, 버린 만큼 다시 쌓아 올릴 용기도 없었다. 간호사라는 직업을 갖기 위해 내 인생에 존재했던 인내심이란 인내심은 다 갖다 쓴 것 같은 지금, 새로운 커리어를 바닥부터 쌓아 올려나갈 수 있을까?


도저히 자신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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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밖으로 나온 간호사 ; 탈간호 후 격한 방황기


인스타그램 계정 @writer.mo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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