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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니 Sep 14. 2018

개발자 플랜, 보류에서 폐지로

뼈 때리는 진로적성 테스트 결과와 취성패 쿼터제의 늪



이때까지만 해도 개발자 플랜은 보류 수준이었지 폐지 대상은 아니었다. 개발자라는 직업에 대해 가능성을 봤고, 흥미도 있었으나 내가 가지고 있던 간호사 커리어와의 커넥션을 가지고 갈 것인지, 아니면 아예 새로운 커리어를 시작할 것인지 선택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고민 끝에 좀 더 시간이 지난 후, 혹은 다른 직업들과 비교하다 보면 자연히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선택을 미뤄 두었다. 

 


잠시 플랜 C를 뒤로 하고, 플랜 D, E를 물고뜯고씹고맛보던 혼란한 때에도(그렇다. 플랜 D, E... 가 존재한다.)취업성공패키지는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었다. 취성패 1단계를 끝내고, 내일배움카드까지 발급받아야만 개발자 교육과정을 받을 수 있어, 혹시 모를 개발자 플랜에 대한 희망의 불씨는 살려 놓기 위함이었다. 때문에 나는 최대한 빨리 1단계를 끝낸 뒤 카드 발급에 집중하려했...는데 운명처럼 너무 좋은 상담사 선생님을 만나버렸다. 사실 정부 사업에 대한 불신자인지라 마음의 벽을 잔뜩 쌓고 입장했는데, 선생님의 진심 어린 상담에 불신은 갖다 버리고, 열심히 상담에 참여했다. 많은 도움을 받은 것도 물론이다.

 


상담 내용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진로적성 테스트다. 이 테스트는 취성패를 하는 모든 대상자들은 1단계 상담 프로그램에서 필수적으로 하는 테스트인데, 그중 나의 직업 흥미 유형 테스트 결과와 상담 내용을 간략히 적어보려 한다.

 

 


 



 

 

선생님: 모니씨는 이 결과를 보고 어떤 생각이 드세요?

 

나: 음... 너무 극단적인데요. 진취형은 너무 높은데 탐구형은 너무 낮고... 근데 탐구형에 개발자 있는데, 이러면 개발자 안 맞는 거 아니에요?

 

선생님: 그렇죠? 제가 말한 게 아니라 모니씨가 말한 거예요^^~

 

나: ...?!

        
선생님: 모니씨는 진취형, 사회형이 높게 나왔고 특히 진취적인 성향(목표를 세우고, 달성하는 데 성취를 느끼는 유형)이 매우 높게 나왔어요. 저는 진취형 표준점수가 70점이 넘는 분은 처음 봐요.
 
그런데, 말씀하셨듯이 
진취형과 탐구형은 서로 반대되는 항목이에요. 개발자로 이직을 희망하신다고 하셨는데, 이 결과를 보면 모니씨는 개발자라는 직업이 성향상 맞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요. 이 검사 결과가 절대적인 것은 아니지만 참고하셔서 결정하는 게 좋으실 것 같아요.


 

아앗...  팩폭을 멈춰주세요...!



밖에서 보기에는 개발자들이 별 어려움 없이 어플이나 웹페이지들을 척척 만들어내는 것 같지만, 사실 개발자들에게 꼭 필요한 자질이 집요함이다. 버그 하나를 해결하기 위해 개발자는 몇 시간, 때로는 며칠 밤낮으로 고민할 수 있어야 한다. 그뿐이랴, 같은 코드도 어떻게 하면 좀 더 코딩답게, 아름답게 코드를 짤 수 있는지 끊임없이 고찰하고 꾸준히 업데이트도 해야 하니, 개발자가 탐구형에 속하는 직업군임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직업을 선택할 때 따져보아야 할 여러 가지 조건들이 있다. 그중 개인의 성향과 직업 간의 캐미스트리는 단연 우선순위에 들어간다. 내향적인 사람에게 영업을 하라고 한다면, 역마살 낀 사람에게 회계업무를 보라고 한다면 아마 머잖아 말라죽을 것이다. 내게 완벽히 맞는 직업이 있을 거란 기대도 않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방향성은 맞아야 하지 않을까.


적성검사가 날 아주 정확하게 평가했다. 나는 탐구형 인간이 아니다. 나는 집요하게 파고들기보다 여러 가지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는 사람이고, 혼자 고독하게 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종합해 협업하는 것이 더 좋다. 개발자로의 이직을 고려하면서 이런 부분을 생각해 보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적성검사 결과가 개발자와 반대되는 나의 성향을 너무나 적나라하게 짚어줘 내가 민망할 지경이었다. 마치 검사 결과지가 개발자 근처는 얼씬도 하지 말라고 내쫓는 것 같았다. 



 


 

 

그리고 하나 더,

 

내가 취성패를 신청하던 그 시기에, 내일배움카드의 오용이 심하다는 이유로 노동부에서 취업률이 낮거나 중도 포기율이 높은 10가지 교육과정에 제한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10개 대상에는 개발자 양성 과정도 포함되어있었다.(이 결과를 보더라도 개발자 전향의 장벽이 생각보다 높음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올해 말까지는 개발자 양성 과정에 등록할 수 없게 되었다. 

 

잠깐, 이건 계획에 없었는데요... 상담사님도 이런 규제는 처음이라며 안타까워하셨을 정도였다. 여러 가지 대안을 찾아봤지만 이 제도 내에서 딱히 할 수 있는 것이 없었고, 개발자 6개월 과정의 정규 등록비용은 600만 원이 훌쩍 넘어갔다. 백수 된 입장에서는 쿼터제가 풀리는 내년까지 기다리는 것만이 유일한 선택지였다.

 

취업성공 패키지 내일배움카드 쿼터제 도입으로, 내년 초에나 규제가 풀린다고 합니다. 지역마다 상황이 다를 수 있으니 만약 내일 배움 카드로 교육 수강이 목적이신 분들께서는 지역 내 고용센터에 전화해 현황을 먼저 알아보시는 것이 빠르다고 하네요. 참고로 서울센터 대부분은 현재 비슷한 상황일 거라고 합니다. (또륵) 

 

  

 


 

 


개발자로서의 전향을 고려하면서 많은 정말 많은 시간 고민했다. 장점과 단점이, 예상되는 리스크와 리스크를 딛고 일어났을 때 얻을 수 있는 것들이 너무나 분명했다. 병원에서 멀리 도망치고 싶다며 개발자라는 직업에 기웃거렸는데, 간호사라는 커리어를 완전히 버리는 것에 겁을 내고 있는 나의 모순적인 태도도 한몫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개발자로서의 이직은 하지 않았고, 동시에 못하기도 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망설이던 내게 팩트폭행하는 직업적성검사 결과, 그리고 쿼터제라는 물리적인 장애물은 오히려 마음을 확실히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정말 개발자가 하고 싶었다면 몇 개월 기다리는 것이 대수도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걸리는 것이 많다면, 다른 선택지를 고려해보는 것이 나을 것 같다. 




마케터가 된 간호사 ; 전 간호사, 현 마케터의 두 번째 신입 생활

병원 밖으로 나온 간호사 ; 탈간호 후 격한 방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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