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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니 Nov 01. 2018

관심 있는 스타트업에 우선 메일을 보내보겠습니다.

플랜 F, 스타트업 입사


업플라이라고, 싱가포르 취업을 준비하면서 알게 된 해외취업 정보 공유 사이트가 있다. 해외 취업은 보류했지만, 수준 높은 커리어 정보들이 많아 지금도 꾸준히 들락거릴 정도로 애정 하는 사이트다. 그중, 자신만의 커리어 패스를 만들어내신 분들의 인터뷰 영상 시리즈를 특히 좋아한다. 자신만의 커리어를 개척하고 계신 분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듣노라면 몸은 방구석에 있을지언정 시야는 넓어지고, 아이디어가 마구마구 솟아나는 기분이다. 그런데 이 인터뷰에 꾸준히 등장했던 단어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스타트업". 스타트업은 보통 "사이드 프로젝트"라는 단어와 함께 붙어 다니곤 했는데, 본 업을 하며 사이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스타트업에 조인해 일을 하거나, 혹은 직접 경영(!)을 하는 형태로 많이 언급되었다.


 모든 인터뷰 시리즈를 여러 번 재탕할 정도로 많이 봤지만, 그중 제일 많이 영향을 받은 영상은 박주현 님의 인터뷰(국내 외국계 VS 해외 기업에서 오퍼 받는 방법)였다. 박주현 님은 국내 대기업을 다니다 퇴사하시고, 우연한 계기로 신생 스타트업에 조인하셨다고 한다. 다행히 대표와 주현님의 니즈가 맞았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주현님은 신생 비즈니스가 고도화되는 과정에서 실무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해 볼 수 있었고, 이러한 실무 경험을 살려 싱가포르에서 원하는 직무로 취업에 성공하셨다.


주현님의 사례는 내게 많은 용기를 주었다. 하고 싶은 일을 접어두고 우선 입사했지만, 결국 (남들이 말하는) 좋은 회사를 때려치운 것, 그리고 정말 좋아하는 것을 찾고, 하고 싶은 직무를 얻기 위해 적극적으로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신 모습에서 공감했다. 간호사에서 탈출하길 간절히 원했지만 관련 경험 하나 없어 좌절했던 나는 주현님의 케이스를 비롯해 스타트업을 통해 직무 변경에 성공한 다양한 사례들을 찾아보고, 희망을 얻었다. 그리고 어쩌면 내게도 스타트업이 돌파구가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정확히 말하면, "이건 나도 시도해 볼 만 한데?"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솟았다.



스타트업은 항상 손이 모자라다는데, 잘만 어필하면
금방 그 세계에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스타트업에 지원해 보기로 야심 차게 결정은 했지만, 스타트업에 대해 거의 아는 바가 없었던 나는 이 바닥의 생리에 대해 알아보고, 공부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특히 스타트업은 일반 기업과 어떤 점이 다른지, 구직시 구직자가 확인해야 할 것들은 어떤 것이 있는지에 초점을 맞췄다. 그리고 각종 매체와 지인들, 플랫폼을 동원해 차곡차곡 모은 자료들은 잘 소화하고 다듬어 내 상황에 맞추어 정리했다.


다음은 당시 내가 세웠던 나만의 스타트업 지원 기준이다.





1. 나는 이 회사의 비즈니스에 진심으로 끌리는가?


가장 우선순위에 두었던 기준이었다. 나는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성공하리라 스스로 확신할 수 있는 비즈니스에 합류하길 원했다. 한 회사의 구성원인 내가 궁극적으로 해야 할 일은 비즈니스를 파는 것인데, 팔아야 할 물건을 사랑하지 않고, 잘 될 것이라는 확신도 없다면 타인도 설득할 수 없을 것이 뻔했다. 무엇보다 스타트업은 개인의 자율성과 그에 따른 책임으로 굴러가는 곳이므로 스스로 회사에서 일하는 동기를 찾을 수 있어야 했다. 그리고 그 동기가 '이 비즈니스가 진심으로 잘 되면 좋아서' 라면 정말 열심히 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2. 회사가 날 필요해할까?


지금도 이 회사는 나 없이도 잘 굴러가고 있다. 나는 회사의 채용공고에 지원하지 않고, 관심 있는 스타트업에 우선 메일을 보내 볼 생각이었다. 때문에 자기중심적인 이력서보다는, 당사의 주력 비즈니스를 분석하고, 거기에서 내가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을지 전달하는데 중점을 두기로 했다. 지겹지만, 내가 가진 것은 그나마 간호사 면허와 경력뿐이었으므로, 나는 우선 헬스케어, 의료 관련 업계의 스타트업을 타깃으로 삼았다.


그리고 스타트업 플랫폼 사이트(로켓펀치 혹은 원티드 가 대표적이다.)에서 헬스케어, 의료, 제약 등의 키워드로 회사를 검색했다. 끌리는 회사가 있으면 우선 회사 소개 페이지와 홈페이지 등을 꼼꼼히 보고, 수단을 가리지 않고 해당 기업에 대한 최대한 많은 정보를 습득했다. 특히, 현재 밀고 있는 주력 비즈니스가 무엇인지 파악하는데 공을 들였다. 더 나아가 이 사업에 내가 쓰일 만한 구석이 있을지, 내가 어필할 구석이 있는지 머리를 굴려보았다.

 


3. 회사가 재정적으로 탄탄한가?


대기업이야 월급날을 굳이 헤아리지 않아도 월급 하나는 따박따박 나오지만, 스타트업은 월급이 밀리고, 밀리다 못해 회사가 망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스타트업을 돈 보고 들어가는 건 아니라고 해도,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이니 이 회사가 얼마나 재정적으로 탄탄한지는 입사 전 제일 먼저 확인해 봐야 할 사항이다. 스타트업은 보통 투자 규모와 횟수, 시기 등을 보면 재정 현황을 가늠할 수 있다. 회사의 수익모델에 대해 알아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스타트업이 5년 내 폐업할 확률은 72.5%라고 한다.(중소벤처기업부, 창업기업 생존율 현황, 2018) 많은 스타트업들이 생기고, 또 그만큼 망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는 있었지만, 10개의 스타트업 중 단 2-3개 기업만이 살아남는다는 사실을 숫자로 확인하니 꽤나 충격이었다. 나는 힘들게 들어간 회사가 금방 망하는 것은 원하지 않았으므로, 최소한 3년 이상이 된 회사일 것, 그리고 상시 근로자 수가 10인 이상일 것, 이라는 조건을 추가했다.



나름의 기준으로 거르고 거르니, 내 리스트에는 대여섯 개의 스타트업이 남았다. 나는 그 바쁜(그리고 아마 냉랭할) 사람들에게 내 이야기를 어떻게 임팩트 있게 전달해야 할까 고민하느라 짧은 메일을 쓰는데 반나절 이상을 소비했다. 개요는 메일을 보낸 목적 - 간략한 자기소개 - 비즈니스와 어울리는 내 스킬 어필 - 당사에 대한 진심 어린 관심으로 구성했고, 최대한 핵심만 짧고 담백하게 적으려 했다.


다음은 실제 내가 한 회사에 보냈던 메일 중 일부이다.


안녕하세요. 간호사 OOO이라고 합니다.

저는 간호사이긴 하지만 동시에 헬스케어, 의료 비즈니스에 관심이 많아 관련 비즈니스를 검색하는 중, 최근 귀사의 OOO을 알게 되었습니다. 귀사에서 의료 마케팅이나 기획 등 비즈니스에 대해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찾기 위해 이렇게 메일을 드립니다.

저는 OO병원 OO부서에서 근무하며 QPS(Quality Improvement & Patient Safety) 사업의 일환으로 부서 내 OO프로젝트에 참여했으며, 간호사 교육과 환자 간호의 정량화를 위한 OOO을 제작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위 프로젝트나 제 경력사항에 관한 내용은 제 로켓펀치 프로필(링크) 또는 링크드인(링크)에 기술해 두었습니다.


덧, 1

우선 내 간단한 소개를 했다. 두괄식으로 목적을 맨 앞에 밝혔고, 지원하는 직무와 관련된다고 생각되는 직무 경험을 적었다. (사실 그렇게 딱 맞지는 않지만, 당시로선 최선이었다.)


두어 문장으로 나를 나타내기엔 너무 정보가 부족하고, 채용공고도 없는 마당에 각 잡힌 이력서를 첨부하자니 약간 부담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로켓펀치(지원한 회사가 주력 이용하는 플랫폼)와 링크드인(그동안 구직 준비하며 열심히 관리했음)의 프로필을 링크로 달아두었다. 실제 로켓펀치, 링크드인의 직무 기술 내용이 이력서보다 자세하고 구체적이기도 했기 때문에 조금이나마 더 어필할 여지가 있다는 계산에서였다.



그 밖에, 재직했던 부서 특성상 많은 환자와 보호자를 만났고, 교수진 및 의사들과 직접적으로 커뮤니케이션하며 다양한 상황을 겪었기에 환자, 의료진과의 의사소통에 능합니다. 환자 교육경험(1:1 혹은 세미나 형태)도 많기 때문에 환자를 위한 콘텐츠 제작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습니다. 급여는 주지 않으셔도 됩니다만, OOO에 관련된 마케팅, 실제 사업구상에 참여해 배우고 알아가고 싶습니다.


덧, 2

이 때는 정말 급여를 안 받아도 된다고 생각하긴 했었다. 박주현 님이 인터뷰에서 스타트업에 처음 조인하셨을 때 돈을 안 받고 일하셨다고 하기에 나도 나름의 승부수를 띄웠다고나 할까. 하지만 이 이야기를 들은 주변 지인들은 굳이 이런 말을 할 필요가 없었다며 매우 안타까워했었고, 지금의 내 생각도 그렇다. 어차피 스타트업은 나 같은 중고 신입에게 돈을 많이 주지 않으니, 굳이 먼저 나서서 열정 페이를 자처하지는 말자.  



간호사로서 일하며 저 또한 환자 교육에 대한 좀 더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에 대한 고민이 있었고, 실제 저희 아버지도 OOO을 진단받으셔 투병 중이십니다. 때문에 아버지가 정기 검진을 다녀오시면 간호사로서 어떤 대화가 오고 갔는지 궁금했지만 상담 내용을 자세히 알 수 없어 항상 아쉬운 마음이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OOO을 접하고 굉장히 획기적인 아이디어라는데 공감했습니다.

덧, 3

마지막으로 내가 이 비즈니스에 얼마나 공감하고 관심이 있는지에 대해 적었다. 군더더기 없이 최대한 직관적이고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포인트.





두근두근 떨리는 마음으로 '메일 보내기' 버튼을 누르고, 늦은 점심을 먹었다. 답은 언제쯤 올까? 아니, 답이 오기는 할까? 생각하며 나는 리스트의 두 번째 회사에 보낼 메일을 적기 위해 노트북 앞에 앉았다. 도입부를 썼다 지웠다 하는데, 느닷없이 핸드폰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였지만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 회사구나.


메일을 보낸 지 약 4시간 후 온 전화였다. 전화 주신 대리님께서는 메일을 읽어보셨다며, "자기소개부터 해볼까요?"로 시작되는 간단한 인터뷰를 진행하셨다. 이렇게 빨리, 그것도 바로 핸드폰으로 연락이 올 것이라 전혀 생각을 못했기에 약간 장황하게 답변을 했던 것 같다. 이어 몇 가지 질문과 답변이 이어진 후 대리님은 "그럼 지금 구직 중이신 거죠?"라는 말씀과 함께, 대표님이 모니씨를 한 번 보고 싶어 하신다며 미팅 날짜를 잡자고 하셨다.


전화를 끊고, 얼떨떨한 마음이 들다, 곧 주체할 수 없이 행복해졌다.


몇 달 만에 처음으로 듣는 긍정적인 피드백이었다. 비록 면접이 잡혔다는 것 정도의 작은 성과였지만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었던 시도가 정말 성과로 돌아왔다는 것이 신기했다. 그저 한 번 보자는 전화가 이렇게 기쁜 일이었는지. 


나는 아주 공손하게 전화를 끊은 뒤, 도서관의 내 자리에 다시 돌아가 앉았다. 엉덩이가 의자에서 약 2cm 정도 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전화를 받기 전에 쓰고 있던 메일을 노려봤지만 도저히 집중이 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지. 나는 내적 브레이크 댄스를 추며 평소보다 조금 일찍 귀가했다.



마케터가 된 간호사 ; 전 간호사, 현 마케터의 두 번째 신입 생활

병원 밖으로 나온 간호사 ; 탈간호 후 격한 방황기


인스타그램 계정 @writer.mo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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