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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니 Dec 08. 2018

스타트업 첫 출근길, 발가락만 쳐다보고 있었던 사연

스타트업으로 이직하고 첫 출근날의 옷차림


간호사였던 내가 사무직이란 것에 얼마나 감이 없었냐면, 첫 출근에는 최대한 포멀하게 입고 가는 것이 보통이라는 것을 몰랐다. 차라리 끝까지 몰랐으면 좋았을 텐데, 딸내미의 출근에 들떠 이것저것 챙겨주려던 아빠 덕에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유일한 문제는 첫 출근이 당장 12시간 후라는 것. 내가 굳이 정장을 입어야 하냐고 반문하자, 공무원 생활 30년 경력의 아빠는 "너는 사회생활이 처음도 아닌 애가 그런 기본 적인 것도 몰랐냐."며 혀를 찼다. 아니, 한 번도 사복 입고 일 해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압니까 제가.



아빠의 의견은 전형적인 사회생활 30년 차 부장님 관점이라는 것을 알지만, 한 편으로는 슬슬 걱정이 되었다. "우리 회사는 그런 분위기 아니거든?"이라고 말하면서도, 몰래 '첫 출근 복장'을 검색을 해 봤다. 검색해 보니 출근 첫날 뭘 입어야 할지 모르겠을 땐, 면접 복장을 입고 가는 것이 대세인 듯했다. 면접 복장이라. 내 면접 복장은 셔츠 원피스에 샌들이었다. 내가 면접을 본 당시 상황이 일반적인 면접은 아니었기에 칼정장은 부담스러울 것 같아 나름 고심해서 고른 복장이었다. 어쨌든 이렇게 입고 가서 합격 했으니 첫 출근도 이렇게 입으면 괜찮지 않을까?


하지만 아빠는 단호했다. "첫날은 여기저기 인사 다닐 일도 많고, 처음에 단정해 보이면 좋으면 좋았지, 나쁠 것 없다."라고 말하며, 특히 내 샌들을 맹렬히 공격하셨다. 발가락이 보이는 건 예의가 아니라나. 듣자 하니, 나도 발가락이 보이는 것보다는 안 보이는 편이 깔끔해 보이긴 할 것 같았다. 하지만 때는 더위가 가시지 않은 늦여름이었고, 내겐 신을 만한 여름용 로퍼가 없었다. 이미 시간은 일요일 늦은 저녁이었기에 갑자기 출근용 신발을 구입할 수도 없었다. 어쩔 수 없지. 나는 면접 때 신었던 샌들을 신고 가기로 했다.



그래서, 나는 셔츠 원피스에 샌들을 신고 첫 출근을 하는 중이었다. 긴장되어서 그랬을까, 자꾸 샌들 밖으로 보이는 발가락에 시선이 갔다. 출근했는데 나만 샌들을 신고 있으면 어떡하지? 첫 출근에 샌들 신었다고 안 좋게 보려나? 전체 인사하는데 다 내 발가락만 보는 거 아니야? 안 좋은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최악으로 치달았다.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는 내내 사람들의 발만 쳐다봤다. 출근길에 지나치는 길거리, 지하철 역사에 혹시 일찍 연 신발가게는 없는지 촉각을 곤두세웠다. 하지만 월요일 아침 아홉 시 이전에 구두 파는 곳이 있을 리가 없다.


마음을 졸이며 회사에 도착했다. 자리를 안내받고, 컴퓨터를 켜고 이 파일, 저 파일 열었다 닫길 반복하길 여러 번. 드디어 그렇게 걱정했던 인사 시간이 되었다. 전체 인사를 위해 안내받은 곳으로 장소를 옮기니, 나 외에 오늘 첫 출근을 하신 개발팀 대리님과 기획팀 부장님을 뵐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두 분을 보는 순간, 머쓱해졌다. 40대 중후반의 기획팀 부장님께선 편한 면바지에 운동화를, 30대 초반의 개발팀 대리님은 청바지에 기능성 스포츠 티를 입고 계셨다. 그제야 회사 직원들의 옷차림이 눈에 들어왔다. 청바지에 면 티, 꽃무늬 원피스, 스포츠 웨어 등 출근 복장은 가지각색이었다.


누가 봐도 회사 전체를 통틀어, 원피스에 샌들을 신은 내가 가장 포멀했다.

출근 내내 부끄러워했던 내 발가락에게 미안할 지경이었다.



입사 직후에는 샌들 하나로 전전긍긍했던 이 이야기를 그저 우리 회사 분위기를 잘 몰라 생긴 재미있는 에피소드 정도라 생각했다. 하지만 될 성 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다르다고, 첫 출근날 봤던 직원들의 자유로운 복장은 사실 많은 것을 이야기하고 있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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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 계정 @writer.mo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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