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면접 준비하기
면접은 그다음 주 월요일로 잡혔다. 회사에서는 "한 번 보자"라는 식으로 가벼운 미팅을 이야기했지만, 나는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 면접 준비를 하기로 했다. 어쨌든 많이 준비하는 것이 덜 준비하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우선 이력서를 다시 작성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메일에는 링크드인과 로켓펀치 프로필만을 적었으니 면접 시 보여드릴 깔끔한 이력서가 필요했다. 메일에 언급했던 관련 업무 내용에 대해선 직무 기술서를 별첨해 중요 내용을 간략히, 하지만 로켓펀치나 링크드인보다 자세히 적어 정리했다.
이력서 외에, 나름의 프레젠테이션도 준비했다. 본격적으로 PPT를 만들지는 않았지만, 직무 기술서에 적은 내용들을 바탕으로 자료를 포트폴리오 형식으로 준비했고, 원본 파일도 중요 부분 위주로 잘 갈무리 해 언제든 참고자료로 띄울 수 있도록 준비했다. 어떤 식으로 설명을 전개하고, 어필할 것인지 시나리오를 설계하고, 여러 번 곱씹으며 발표시 사용할 문장들을 닦아나갔다.
마지막으로, 회사에 대해 닥치는 대로 많이 알아봤다. 회사 홈페이지, 블로그, 공식 SNS 계정은 물론이고, 보도자료와 대표님의 인터뷰 자료도 찾을 수 있는 대로 다 소화했다. 회사에 대해 더 잘 알수록 좋은 것은 물론이고, 대표와의 인간적인 접점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상기된 마음과 동시에 긴장감을 갖고 준비를 해가는 동안, 약속했던 면접날이 다가왔다.
면접은 회사 회의실에서 진행되었다. 대표님이 오시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고작 나 하나 보는 자리에 대표님을 비롯해, 마케팅팀 과장님, 메디컬팀 대리님, 주임님까지 무려 네 분이 모이셨다. 크지 않은 회사에서 1:4 면접이라니, 이런 분위기일 줄은 몰랐는데. 나는 더 긴장했다.
대표님이 도착하시고, 본격적으로 면접이 시작되었다. 간단한 인사 후, 대표님께서는 흔치 않은 입사 지원 방법에 굉장히 관심을 보이시며, 어떻게 알고 우리 회사에 지원했는지, 그리고 왜 이 회사를 선택했는지에 대해 자세히 물어보셨다. 다행히 대표님이 물어보신 것들은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아 준비했던 대로 말씀드릴 수 있었다. 오히려 날카로운 질문은 과장님에게서 나왔다. '이제 곧 공채시즌인데 공채 지원할 생각이 있는지', '회사의 규모나 성격마다 장, 단점이 있는데 그 부분에 알고 있는지'와 같은 질문이었다. 자리가 자리이니만큼, 아주 솔직한 대답보다는 적당히 면접용으로 윤문 해 대답했던 기억이 난다.
면접 때 제일 중요한 것은 결국, "나에 대한 이해도"라고 생각한다. 스스로에 대해 끝까지 파고들어 고민하고 답을 구하고자 했던 사람이라면 질문이 어떤 식으로 나오더라도 소신 있게 자신의 대답을 할 수 있다.(물론, 한국식 압박 면접 제외) 결국 회사가 궁금한 것도 면접자가 회사에 맞는 역량을 가지고 있는지, 회사에 잘 어울릴 성향의 사람인지 여부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지난 몇 개월간의 삽질과 고뇌의 시간을 통해 나는 그 어느 때보다 나를 잘 알고 있었다. 덕분에, 과장님께 생각지 못했던 질문을 받을 때에도 나는 차분히 답변을 달 수 있었다.
이 날은 회사가 나를 면접 보는 자리이기도 했지만, 내가 회사를 파악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내가 가장 궁금했던 것은 대표의 성향, 그리고 회사의 분위기였다. 작은 회사일수록 대표의 의견이 절대적이고, 대표의 성향이 회사 경영이나 분위기 전반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나는 꼭 좋은 사람을 대표로 두고 일하고 싶었다. 그리고 병원에서 이미 보수의 끝을 봤기에 더 이상의 꼰대와 명령-복종 체계는 사절이었다. 혹시나 이 두가지 중 어느 것이라도 마음에 까슬하게 걸리는 부분이 있다면, 나는 면접장에서라도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갈 생각이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회사 분위기는 아주 프리했다. 면접 자리에서 나를 앞에 두고 대표님과 직원들이 서로 농을 건넬 정도였으니까. 회사의 높은 천장과 통유리로 들어오는 햇빛도, 직원들의 가지각색 자유로운 옷차림도 그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었다. 다행히, 회사가 마음에 들었다.
한 시간여의 면접을 마친 뒤, 대표님께선 내부 논의 후 연락을 주시겠다 하셨다. 면접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으나, 그것으로는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었기에 나는 하루 푹 쉬고 다음날부터는 다시 도서관에 출근해 다른 스타트업을 찾아보고, 메일을 보냈다. 도서관에서 다른 스타트업을 찾아보고 있으면서도 한 편으로는, 면접 본 회사에서 저번만큼 빨리 (긍정적인)답이 오지 않을까 기대했다. 하지만 나의 예상과는 다르게 연락이 늦어졌고, 그 와중에 스타트업 중 한 곳에서 거절 메일도 받으면서 나는 점점 더 초조해졌다. 이렇게 마음이 하루에도 열두번씩 오락가락하던 어느 날 이른 저녁, 내 핸드폰이 울렸다.
모니씨, 너무 오래 기다린 건 아니죠?
다음 달부터 마케팅팀에서 같이 일했으면 하는데, 어떠세요?
드디어, 병원 밖에서의 첫 출근이 확정되었다.
병원 밖으로 나온 지 꼭 6개월 만이었다.
덧,
그리고 나중에 회식자리에서 알게 된 내가 뽑힌 이유
채용 공고 따위 무시하고 메일을 보낸 적극성에 우선 대표님이 굉장히 좋게 보심
하지만 놀랍게도, 병원에서 했다고 주절거린 내용들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음
직접적으로 사용하진 않지만, 메디컬 백그라운드는 충분히 도움이 될 만한 경력
직무기술서에 적었던 내용 중 일부가 현재 회사 내부에서 하고 있던 프로젝트와 비슷했음
면접에서 프레젠테이션하는 등 적극적으로 어필했던 것이 관건이었다고 함(과장님께서 얘는 말도 잘하니 무조건 마케팅 팀으로 데려가겠다 하셨다고)
결론적으로, 먼저 메일을 보내고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하는 등 적극적으로 노력했던 모습이 많이 플러스가 되었었다. 하지만 그 이전에 머리 싸매며 뭐해먹고 살 지 고민했던 숱한 밤들이 있었기에 모든게 가능했던 일이었다.
* 인스타그램 계정 @writer.mon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