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메디컬팀을 구성하고 계셨던 간호사 출신의 대리님, 주임님 두 분이 퇴사 의사를 밝혔다. 이로써 메디컬팀은 사실상 해체되고, 마케팅팀의 내가 회사의 유일한 간호사가 되었다.
병원을 떠나 새로이 시작하는 길목에서 만난 간호사 출신 직장 동료들은 내게 아주 큰 정서적 지지대였다. '다른간호사들과 너무 다른 길을 가는 게 아닐까.' 항상 고민했던나는걱정이커질때면같은 회사에 간호사가 둘이나 더 있다는 것을떠올렸다.혼자가아닌셋이라는것은때로굉장한위로가되곤했다. 그런데, 이젠 정말 혼자가 된 것이다.
대리님과 주임님은 이 회사에 오시기 전에 하셨던일,즉임상시험연구자로,병원간호사로이직하신다고했다. 임상연구와 병원이라니.이직하시는 곳을 듣자니 막연히 겁이 난다. 나도 결국엔 이 곳을 떠나, 익숙한 그쪽 세계로 다시 돌아가게 되는 것일까. 발버둥 쳐 봤자, 어차피 엔딩은 예정되어 있는 건가.
늘어나는 업무량, 그에 비례하는 부담감
퇴사하시는 두 분은 메디컬팀 소속으로, 의료 콘텐츠를 제작하고 의료진(우리 서비스의 사용자)과 커뮤니케이션하는 것을주 업무로맡고계셨다. 그리고 두 분이 떠나면서, 그 업무는 간호사인 나에게 자연스럽게 넘어오게 되었다.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다. 메디컬 콘텐츠를 다루고 의료진과 커뮤니케이션하려면 메디컬 백그라운드가 필수적이고, 회사에서 관련 전공자는 나뿐이니까.
마땅히해야하는일이라는것을이해하지만,여전히 부담은 크다. 이전에 이 업무를 하셨던 대리님, 주임님은 나보다 회사에 오래 계셨던분들이었다.두분모두나보다긴임상연구 혹은 병원 경력을 가지고 계셨고,무엇보다 이 일은 2인분의일이다. 그런데 이 업무를 두 분보다 경력도 짧고, 회사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내가,혼자서 해야 한다니.
대리님과 주임님의 퇴사가 3월 말로 확정된 후, 나는 이리저리 불려 다니며 업무 인계를 받았다. 메일함은 수많은 참조 메일로 터져나갔다. 하던 일도 적지 않은데, 낯선 업무들을 맡아하려니 막막했다. 중압감에 시달리고, 잠이오지않는날들이생겼다.해야 할 업무를 잊지 않으려고 정리하기 시작한 엑셀 시트는 끝을 모르고 길어졌다.
그래서 위기는 결국 기회가 된다.
메디컬팀의 업무를 인계받기 전, 팀장님과 긴 면담을 했다. 앞으로 메디컬 콘텐츠를 어떻게 꾸려가고, 장기적으로 이끌어갈 방향에 대해서였다.
전에는 메디컬팀이 메디컬 콘텐츠를 전담했다. 하지만 메디컬 콘텐츠는 메디컬팀이 단독으로 다루기에 한계가 있었다. 마케팅팀에서 단독으로 다루어도 마찬가지였다. '콘텐츠'의 관점에서 마케팅팀이 담당하면, 콘텐츠의 질을 보장할 수 없다. '의료'의 관점에서 메디컬팀이 담당하면, 콘텐츠의 전달력을 보장할 수 없다. 결국, 메디컬 콘텐츠라는 것은 마케팅과 메디컬, 그 중간의 오묘한 어딘가에 적절히걸쳐져있어야 한다.
그리고 고심 끝에 내가 내린 결론은,
여러모로 적임자가 나라는 것이다!
나야말로 마케팅과 메디컬, 그 중간의 오묘한 어딘가에 걸쳐져 있는 사람이었다. 그동안 공부하고, 병원에서 일했던 경험을 토대로 메디컬 콘텐츠의 퀄리티는 보장할 수 있다. 길지는 않지만 마케팅 소양도 키우고 있으니, 적어도 이기적인 콘텐츠를 만들지 않을 자신도 있다.
"위기는 곧 기회"라는 진부한 말을 떠올려본다. 의지했던 동료들이 떠나고, 업무부담은커졌지만, 동시에 새로운 기회가 주어졌다. 이 기회를 잘 활용하면 나만의 정체성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앞으로 내 업무의 결이 많이 달라질 것같다.당분간 강제 워커홀릭으로 살아야 하겠지만, 아직은 기대되는 마음이 더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