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만약 그랬더라면은 없다.
내가 언제나 당당하게 ‘어쩔 수 없지 뭐‘를 외칠 수 있었던건 아니다. 나는 원래 "If... then..."을 달고 살던 사람이었다. 내가 그때 그렇게 행동했더라면. 내가 그때 이렇게 말했더라면... 그러면, 달라졌을까?
상부에 긴 장문의 글(+증거)로 성희롱을 보고 했을 때 상부는 나에게 "이런 일이 있으면 개인적으로 와서 도움을 청하면 해결해 줬을 텐데 왜 보고하듯 이메일을 보냈어. 이제 도와주기 힘들지."라며 지금 일이 제대로 해결될 수 없는 것이 마치 내 잘못인 것처럼 말했다.
내가 상부에 성희롱을 "보고"한 것은, 그 누구에게 "도와달라"는 신호를 보낸 것이 아니었다. 도움은 필요 없었다. 난 스스로를 구할 수 있는 똑 부러진 인간이었으니까. 나는 누구의 도움 없이 새벽에 술 쳐 먹고 오는 전화를 받지 않을 수 있고, 딱히 누군가가 도와주지 않아도 등 뒤에 와서 어깨를 주무르는 상사에게 불편하다고 표현을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내가 원했던 건 회사에 응당 있어야 할 절차를 밟아서 조사를 한 후 부적절한 행위를 한 사람에게 적당한 제재를 내리는 것이었다. 성희롱 가해자는 내가 자신을 받아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잘한다 잘한다 하니까 ㅈㄴ 싸가지 없어진 어느 후배년"에 대한 유언비어를 온 동네에 퍼뜨리고 다니던 중이었으니까. 근데 상부는 "내가 한 어떤 행동" 때문에 "이제는" 그 절차를 밟을 수 없게 되었다고 말한 것이다. 이게 무슨 옆집 바둑이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인가. 차라리 절차가 없어서 해결해 주기 어렵겠다는 말이 더 납득이 됐을 것이다.
하지만 당당한 척만 하고 그다지 당당하지 못했던 29세의 나는 "도와줄 수 없다"는 상부의 말이 청천벽력 같았다. 보고하지 말고 이렇게 저렇게 할걸. 차라리 새벽에 오는 전화를 받아서 녹음이라도 할걸. 차라리 "당하고" 증거를 남길걸... 만약 그랬더라면...
회식 자리에 같이 앉아 우리가 직면한 이 불편한 상황에 종종 함께 눈을 굴리던 한 여자 선배는 "네가 회식 자리에서 잘 놀기는 하더라. 네가 너무 살갑게 구니까 오해할만했을 것 같아"라고 말했다. 내가 뭘 잘못했는지 딱히 특정할 수는 없지만 살갑고 활달한 내 성격이 이 문제의 원흉이 됐다는 말이었을까?
10년이 지났어도 난 이 말 뜻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지만, 10년 전의 나는 또 그때 그랬더라면 회로를 돌리느라 괴로웠다. 내가 그때 회식에 안 가고 단호했더라면. 가고 싶어서 간 것도 아니었는데 가지 말 걸. 내가 그때 그 자리에서 얌전했더라면. 차라리 웃기만 하고 적극적으로 말을 하지 말걸 등등. 끝없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if... then은 매일 밤 나를 갉아먹었다.
하지만 인생에 if... then은 없다. 나는 그 회식 자리로 절대 돌아갈 수 없고, 사건 보고 이전으로 시간을 되돌릴 수도 없다. 수많은 잠 못 이루던 밤과 "그때 그랬었더라면" 뒤에 내린 결론이 바로 "어쩔 수 없지"다. 정말로 어쩔 수 없는 거다. 나는 이미 그 회식 자리에 앉아 즐겁게 놀았고, 사람들에게 살갑게 굴었으며 그래서 눈에 띄었다. 어쩔 수 없지. 어쩌라고.
인생살이에 어쩌라고 배짱은 정말 중요하다. 이 진리를 너무 늦게 깨달은 나는 너무나도 괴로운 20대를 보냈지만, 어쩔 수 없지 뭐. 덕분에 30살에 마주한 아홉수가 데리고 온 불행에 당당히 "어쩔 수 없지"를 외칠 수 있게 된게 아닐까?
나는 로스쿨에 가려고 살았다. 20대 이후 내 인생은 로스쿨을 못 간 후회스러운 과거의 나와 언젠가 로스쿨에 가서 성공할 상상 속의 나로 이루어져 있었다. 모든 일은 로스쿨로 귀결 됐다. 금전적인 사정 때문에 로스쿨에 못 간 20대 초반의 내가 있었고, 미국 로스쿨을 돈 벌어서 가려면 한 세월이 걸린다는 걸 깨닫고 좌절하며 다른 진로를 찾는 20대 중후반의 내가 있었고, 너무 늙어서 이제 아무 데도 안 받아 주겠지? 라며 늙은 나를 한탄하던 30대 초중반의 내가 있었다.
생업을 내려놓고 약 2년간 반풀타임으로(프리랜서 업무로 생계는 이어야 했다) 로스쿨 준비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유튜브나 블로그에 미국 로스쿨 장학금 제도나 나이 들어서 진학하게 된 수기를 올린 사람들 덕분이었다. 돈이 좀 부족해도, 나이가 있어도 가능하다는 걸 그때 알았고 나는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약 2년을 준비하던 모든 게 물거품이 되고 나니 그제야 39살이 되도록 과거와 미래에 갇혀 살고 있던 내가 보였다. 생각해 보니 현실을 살아본 적이 없었다. 로스쿨이 정말로 물거품이 되어 날아가지 않았더라면 나는 평생 "로스쿨 가고 싶은 나"를 붙들고 살았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 포기할 수밖에 없는 이 상황이 차라리 잘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실제로 나의 아홉수 저주는 아직 끝나지 않았기에 출국을 못 한 것이 진짜로 잘 된 일이 되어 버렸는데... 다음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