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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함채원 Apr 19. 2023

4 왜 통역사가 되기로 하셨나요? 2/2

부기 자격증이 쏘아올린 것

대학 3학년이 되면서 같이 신나게 놀던 친구들이 하나 둘 진로 고민을 시작했다. 나는 취업을 할 생각이었다. 대학 3학년 2학기부터 이력서를 쓰기 시작했고 1-2주에 한 번쯤 면접을 보러 다녔다. 그나마 면접에 오라는 회사도 많지 않았다. 일본인 친구들이 하나둘 취업 내정을 받는 가운데 몇 달이 지나도 딱히 소득이 없었다.   


때는 2001년, 밀레니엄 운운하며 이제 막 글로벌화의 물결이 밀려오고 있었지만 내가 살고 있던 일본 지방 소도시에서는 아직 먼 나라 이야기 같았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북이냐 남이냐’고 물어보는 어르신마저 있었다. 근처에 북한학교가 있어서 더 그랬던 것일까. 한국이라고 하면 “정말 김치 많이 먹냐, 곧 북한과 전쟁 나는 것 아니냐, 전쟁 나면 한국에 바로 돌아갈 거냐” 같은 질문을 받는 일도 있었다. 의외로 당시에는 한국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었다. 한류의 시초 겨울연가 욘사마도 아시아의 별 보아도 아직 일본에 들어오기 전, BTS 형 라인이 아직 초등학생 저학년쯤 되던 시절이었다.      


내가 살고 있던 지역은 나고야 부근의 소도시. 토요타를 중심으로 한 보수적인 제조업이 주를 이룬 지역이었다. 외국인이 갈 수 있는 자리는 많지 않았다. 나는 게다가 딱히 기술도 자격증도 없었다. 당시에는 인터넷도 학교 컴퓨터실에나 가야 쓸 수 있었다. 기업에 메일로 문의를 하면 일주일은 더 있다가 ‘외국인 TO는 없다’는 답변을 받기도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4학년 1학기가 되었다.


“혹시 부기 자격증 있으세요?”


관심 있던 기업에 면접을 가게 됐는데 면접관이 질문을 했다.


'부기요? 제가요? 저는 비교문화학과에서 국제비즈니스를 전공했는데요. 아니 근데 부기가 왜 필요한데요? 그거 있으면 입사가 되는 건가요? 혹시 들어가도 부기가 필요한 부서에 가는 건가요? 국제비즈니스는 써먹을 수 있나요?'


속마음이 입 밖으로 나오려고 했지만 별 승산이 없을 거라는 것을 직감했다. '아뇨, 없습니다' 짧게 대답하고 면접장을 나왔다. 당연히 결과는 예상했지만 불합격. 학과 전공을 살려서 입사하는 일은 적다고 듣긴 했지만. 많이 동떨어진 느낌이 들긴 했다. 자격증이 있으면 없는 것보다 나은가 싶어서 학교에서 해주는 저녁 부기 특강 코스를 등록했는데 두 달을 다녀도 전혀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시켜만 주면 열심히 하겠다 주의지, 딱히 이런 부서에 가고 싶다는 열망도 없었다. 미래가 그려지지 않았다.     

 

당시 나이 만 22세. 22년 동안 나와 제일 시간을 많이 보낸 게 나 자신이지만 스스로에 대해 별로 아는 게 없었다.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 걸까. 나는 뭘 잘 하지. 나는 뭘 할 때 좋더라. 나는 어떤 사람일까. 10년 후에는 어떤 모습으로 살고 싶은 걸까. 이런 생각들을 쭉 해보니 ‘나’를 주체로 생각해 본 적이 별로 없었다는 것에 생각이 미쳤다. '이 나이대는 이걸 해야지' 같은 사회가 정해놓은 시선으로 나를 보고 있던 듯 했다. 학교를 졸업하면 회사에 들어가는 게 당연한 수순이라는 고정 관념에 얽매여서 취업 그 자체에 집착했다. 주변 친구들이 하나 둘 취업에 성공하면서 더 조바심이 났던 듯 하다. 그래서 정작 제일 중요한 것, 내가 뭘 하고 싶은지는 생각해보지 못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취업이든 뭐든 일단 하고 싶은 게 뭔지 곰곰이 생각해봤다. 요리를 하려면 재료가 있어야 하는 것처럼 직업을 선택하려면 무슨 직업이 있고 가능한 선택지가 뭔지를 알아야 하는데 아무 것도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무지했다. 우선 눈에 들어오는 사람들의 직업을 유심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TV나 신문, 잡지에 나오는 사람들의 직업에 나를 대입해보기도 하고, 서점이나 도서관에 가서 직업 인터뷰나 에세이 같은 것도 읽어 봤다. 그간 얼마나 무심했던 건지 주의 깊게 보니 직업이라는 게 상당히 다양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잘하는 것을 업으로 삼은 사람도 있었고, 좋아하는 것을 업으로 삼은 사람도 있었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일본어도 배울 기회도 있었고, 일본에서도 살아봤으니 일본 또는 일본어 관련 업무면 흥미 있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일본어는 일본에서 취직하려면 너무나 당연한 전제 조건이었지만 다른 분야에서는 어쩌면 강점이 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이중언어로 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을까 찾아보았다. 통역이라는 게 있었다. 도서관 잡지에서 동시통역사의 인터뷰를 본 기억이 떠올랐다.


대학을 다니며 종종 통역할 기회가 있어서 완전히 낯설지는 않았다. ‘전 통역이 제일 쉬웠어요’ 같은 본투비 통역사를 상상해본 적도 있지만 솔직히 그때 경험은 통역이라 부르기도 미안한 수준이었다. 그래도 누군가 부탁하면 빼지 않고 나섰다. 마침 그 해에도 자매학교 방문단이 일본에 왔을 때 교수님들, 학생들 앞에서 통역을 했는데 가슴이 쿵쿵쿵쿵 뛰었던 기억이 난다. 긴장인지 설렘인지 모르는 그런 느낌이었다. 사람들은 공포영화를 보거나 롤러코스터를 탈 때 느끼는 공포를, 사랑에 빠졌을 때의 설렘과 헷갈려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는데 딱 그런 류의 느낌이었다. 나는 발표 공포증이 있는 줄 알았는데 의외로 해볼 만 했다. 준비를 많이 하면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통역을 업으로 삼으려면 당시의 나 같은 사이비 언어능력으로 택도 없다는 것, 평생을 공부하고 단련해야 한다는 것을 이때는 몰랐지만 말이다.

     

학교 컴퓨터실로 가서 통역사가 되는 법을 검색해봤다. 통역사에도 여러 종류가 있지만 제일 전문적인 통역은 국제회의통역이고, 대한민국에서 국제회의통역사가 되려면 통번역대학원을 졸업해야 한다고 했다. 전문직이라는 문구도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IMF 외환위기 때 고등학생이었는데, 주변에 명예퇴직, 해고는 흔한 이야기였고, 아빠 사업도 직격탄을 맞았다. 친구네 아빠 회사는 갑자기 문을 닫았다고 했다. 전문직은 내가 기술이 있는 거니 해고나 퇴직에 대한 불안이 적을 것 같았다. 물론 그때는 아무리 전문직이라도 일감이 없으면 프리랜서들은 개점 휴업 상태와 같다는 점은 간과했었다.


어느새 계절은 여름의 끝에 와 있었다. 5월부터 시작한 진로 고민이 2학기 개강과 함께 끝이 났다. 이후 내 시계는 국제회의통역사가 되기 위한 시간으로 채워져갔다.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한 덕분일까. 20년이 지났어도 그 흔한 매너리즘 한번 없이 만족도 200%를 유지하면서 이 직업과 잘 지내고 있다.    


어떤 통역사들은 성장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통역사가 내 직업이라고 생각했다거나, 머리속에서 번개가 쳤다거나 하는 일들도 있다고 한다. 나는 운명적인 계시나 거창한 깨달음 같은 건 없었다. 그저 나와 내면의 대화를 열심히 했을 뿐. 부모님의 의견도 교수님이나 선배들의 의견도 중요하지만 결국 내 인생을 사는 건 나다. 부모님이 내 인생을 대신 살아주는 건 아니다. 내가 하고 싶은지, 할 수 있는지, 이렇게 살면 나는 행복할지, 이렇게 주어를 나로 바꿔야 한다.


대학원, 학부, 고등학교에서 진로 강연 요청을 종종 받는데, 진로를 고민하는 학생들에게 꼭 해주는 말이 있다.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고 탐색하는 시간은 필요하지만 그보다 선행되어야 할 것은 그 직업의 주체가 될 '나'를 이해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직업 선택의 4요소도 꼭 생각해보면 좋겠다. 좋아하는 일인가, 잘 할 수 있는 일인가, 사회에 필요한 일인가, 지속가능성이 있는가. 좋아하지만 노력해도 잘하기 어려운 일이라면 취미로 남겨두는 것도 나쁘지 않다. 아무리 피겨 스케이트가 좋아도 20대에 피겨를 배워 선수로 뛰는 건 한계가 있다.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일이라도 남에게 해를 끼치면서 내 잇속을 차리는 일은 안 된다. 사회적으로 아무리 유망하대도 정작 나 자신이 설레지 않으면 지속성이 담보되지 않는다. 앞으로 50년 60년도 함께 할 수 있는 직업을 고민하는 데 들이는 몇 개월, 몇 년은 시간 낭비가 아니다. 더 내면의 나와 마주하고 대화해보기를 바란다.


(사람마다 내면의 대화를 시작하게 되는 계기는 다를텐데, 나에게는 그 부기 자격증 질문이 큰 전환점이 되었다. 그로부터 이십 수 년이 지났다. 그 날의 면접관께 갑자기 감사한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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